움직임을 포착하는 예술의 진화
1870년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 릴랜드 스탠퍼드는 경마장에 놀러 갔다가 "말은 어떻게 달리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사로잡혔습니다. 당시 빠르게 질주하는 말의 움직임은 인간의 눈으로는 정확히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의 네 다리가 동시에 공중에 뜨는 순간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궁금증은 당시 화폐 가치로 2,500달러(현재 약 8천만 원)에 달하는 내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스탠퍼드는 풍경 사진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1830~1904)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머이브리지는 이 도전을 통해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 실험을 시작하게 됩니다.
머이브리지가 고안한 해결책은 '연속사진촬영(Sequential Photography)'이라는 획기적인 기법이었습니다. 1878년, 그는 말이 달리는 경로를 따라 12대의 카메라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말이 지나갈 때마다 실을 끊어 자동으로 셔터가 작동하는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 연속된 12장의 사진은 말이 달릴 때 실제로 네 다리가 모두 공중에 뜨는 순간이 존재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기법이 움직임을 '순간의 정지'가 아닌 '연속된 시간의 흐름'으로 기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었죠.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 문명의 등장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미래주의(Futurism) 운동은 속도와 움직임, 기계의 역동성을 예술의 핵심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 맥락에서 툴리오 크랄리(Tullio Crali, 1910~2000)는 주목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회화라는 정적 매체 안에서 움직임의 역동성을 표현합니다.
크랄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모노플레인(Monoplane)'(1932)은 조종사의 시점에서 비행기의 움직임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화면 구성을 통해 마치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시각적 착시를 만들어냅니다. 푸른색에서 주황색까지 이어지는 색채의 흐름은 속도감과 함께 공간의 깊이를 표현합니다.
이처럼 분할된 구도는 기계에 대한 움직임을 찰나의 이미지들로 중첩시켜 표현하고자 했던 점에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연속촬영 기법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이 미래주의(Futurism)에 속하지만 기술과 기계를 창조적 영감의 중요한 원천으로 삼아 자신의 이미지 속에 담아내면서 현대 세계에 대해 품은 열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개인의 서사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의 곡예(Acrobazie in cielo)'(1932)에서는 비행기의 측면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보여주는 다시점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머이브리지가 시간 축을 따라 연속적으로 포착한 움직임을, 크랄리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공간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크랄리가 활동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1차 대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2차 대전이라는 또 다른 비극이 닥쳤고, 항공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전쟁의 공포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크랄리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예술적 접근 방식에 있습니다.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엔리코 크리스폴티(Enrico Crispolti)는 크랄리의 작품이 "기계에 대한 공포를 줄여줘서 대중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크랄리의 전시회는 전쟁 중에도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툴리오 크랄리는 1920년대 비행에 대한 열광적인 분위기부터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기까지, 그는 독특한 관점으로 그 시대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하늘을 나는 조종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며, 일반 사람들이 비행기와 항공에 더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불러모으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크랄리의 예술 세계는 예술과 건축, 역사와 감정, 열정과 스타일, 현대적 감각과 혁신적 기술, 그리고 비행이라는 주제가 모두 어우러진 종합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탈리아 예술가의 비행에 대한 수많은 습작과 드로잉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한 개인의 작품 전시를 넘어서 비행 항공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예술적 성취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https://youtu.be/DUii2 sdGQ9 U? list=PLtBVpysV-z6 fCADt3 K5 N4 OHkkhTLU7 MD1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에서 크랄리의 미래주의 회화로 이어지는 흐름은 기술 발전이 예술 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줍니다. 사진술의 발명이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했다면, 회화는 그 분석된 움직임을 감정적, 미적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현재 AI 시대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AI가 이미지 생성과 편집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예술가들의 역할과 창작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화가가 붓과 물감으로 작업했다면, 이제는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제는 '화가'라는 직업은 '예술가'라고 하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가 될 수 있음도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요.
머이브리지가 말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했던 1870년대부터 크랄리가 기계 문명의 아름다움을 회화로 표현했던 20세기 초반, 그리고 AI가 창작 도구로 자리 잡은 현재까지, 그들의 예술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예술의 본질적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크랄리의 작품이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듯이, 예술은 여전히 불안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정서적 안정을 제공합니다. AI와 함께하는 새로운 창작의 시대에서도, 예술가의 역할은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