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푼 친절은 온전히 타인을 위한 선행일까
버리다
명상의 효과는 무심코 깨닫게 된다.
유도명상의 잔잔함과 평화로움에 끌려 명상에 임하게 되었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다 한다고 하니 일단 계속 지속해 왔다.
내가 명상을 시작한 건 어느덧 한 일 년 가까이 된 것 같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서는 늘 의심투성이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문득 명상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명상을 하면서 매일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명상을 하다 보면 숱한 잡념이 왔다 간다.
평소에 생각 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 명상을 할 때면 왜 그리 머릿속을 노크하는지 알 수 없다.
명상의 핵심은 바로 그런 잡념들을 인지하고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호흡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잡념의 바다에서 호흡을 타고 다시 명상하는 순간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불필요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 명상의 쓰임 중 하나이다.
많은 것들에 이끌려 다니는 내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문득 깨달은 오늘의 아침명상 교훈에 감사하다.
에고의 덫, 무조건성의 포용
에고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단어이다.
에고이즘은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꾀하는 것을 일컫고,
에고이스트는 이기주의자를 말한다. 에고가 강한 사람은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로도 쓰인다.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을 통해 에고의 덫에 걸린다.
친절에 대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친절하면 타인도 내게 친절하겠지',
'내가 한만큼 생각해 주겠지' 하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선행의 목적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과시와 자랑을 위한 '친절'도 SNS의 발달로 지극히 만연해있다.
타인을 위한 친절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느끼기 위한 에고의 덫에 걸린 것이다.
나르시시즘으로 대변되는 요즘 사회에 에고의 덫에 걸렸지만 이를 자각하지 못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에고의 덫에 걸려 독선적인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결정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되돌아보면 부끄러울 지경이다.
작년 나의 만다르트 목표 중 하나는 ‘기대하지 않기’였다.
목표는 지켜지지 않았다.
타인의 칭찬과 존경, 때로는 연민까지 기대했으니 말이다.
행동과 감정 컨트롤러를 타인이 쥐고 있으니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깊게 생각한다는 것은 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다.
얕은 생각의 중심에는 내가 없을 것이다.
더 깊은 생각의 심연으로 들어가 진짜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들여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