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끝이라는 감격의 순간
기어이 떠나온 여행인데 간혹 후회가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짐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감당이 되지 않을 때.
운동을 모르던 나의 몸땡이가 하루 평균 2만보로 아팠을 때.
결국에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사무칠때.
오늘, 여행을 하는 순간의 마음을 고쳐먹는다. 불평과 불만, 후회를 버리고 여행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음이 그렇게 바뀐 걸 느낀다.
다시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오전 9시 53분 호시우 역 도착. 오전 10시 01분 신트라행 기차 출발.
사람이 많아서 혼잡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트라행 기차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정석은 아니기 때문에 자리가 있으면 앉아서 갈 수 있다. 아침 일찍 나온 보람이 있다.
Portela de Sintra 역에서 내리면 안 되고 한 정거장 더 가서 Sintra 역에서 내려야 했다.
비가 올 듯 말 듯 한 날씨였기에 우산을 챙기긴 했지만 덕분에 가방이 무거워졌다. 신트라 역에서 내려 페나성까지 버스를 탈 계획이었지만 계획대로 되는 것도 쉽지 않다. 구글 지도에서 도보 1시간을 알려주기에 걷기로 한다.
그런데......
어째 구글이 알려주는 길이 죄다 산 길이다. 안개가 자욱한 산 길로 계속 올라가는데 비가 내린다. 나의 신체가 비와 땀에 절여지기 시작하면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굳이 왜 걷기를 선택했을까?
오래전 이탈리아 친퀘테레가 생각났다. 기차로 5분 거리를 산을 넘어 1시간 30분 만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지금 처한 힘듦을 이겨내지 못하면 나의 여행도 완성시키지 못할 것 같아서 버텼다. 결국에는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안개 낀 비 오는 산 길은 당연히 편하지 않았지만 그 끝에서 만난 페나성의 전경을 보며 긴 한숨을 내어 쉬고 보니 뭔가 뿌듯함이 올라온다. 잘 버텼고 잘 올라왔다. 눈앞의 풍경이 괜히 더 웅장해 보인다.
그런데 내일 하루는 필히 좀 쉬어야겠다. 너무 피곤하다.
페나성을 둘러본다. 성은 관광객들로 둘러싸여 어디 한 곳 틈이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서서 성 아래의 풍경을 본다. 비와 안개가 어우러진 스산함이 조금씩 물러나고 하늘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날 저녁 동행들과의 만남을 생각한다. 퇴사 후 나를 찾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비슷했지만 한껏 젊음으로 무장한 그들에게서는 나에게는 없는 희망 혹은 기대감이 보였다. 앞으로의 계획들이 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언가 할 일이 있는,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들이 서려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단 하루여서, 더 이상은 볼 수 없어서 더 좋은, 나에게는 이번 여행에 기운을 불어넣어준 만남이었다.
페나성을 내려왔다. 신트라 역까지는 434번 버스를 탄다. 434번 버스는 리스보아 카드가 적용되지 않는다.
10분 정도 후 신트라 역에 도착했고, 바로 1253번 버스를 탄다. 나는 지금 지구의 서쪽 땅끝 Cavo da roca로 가는 중이다. 1253번 버스도 리스보아 카드가 적용되지 않는다.
Cavo da Roca의 풍경에 마음이 동한다.
리스본에서의 나의 최종의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현실 같지 않은 기분이다. 지구 서쪽의 땅 끝으로 불리던 곳에 결국은 도착했다. 몇 년 동안 꿈꾸던 곳에 도착했다. 내가 리스본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도달했고 그곳에 서 있는 내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원하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는 법이다.
Cavo da Roca에서 카스카이스행 1624번 버스를 탄다. 이번에도 리스보아 카드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고지대 산 동네를 지나 카스카이스까지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북대서양의 바다를 볼 수 있는 카스카이스의 해변은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난다. 해변 옆 가게, 식당의 골목골목들은 너무 예쁘다. 본래는 하이냐 해변에만 잠시 들렀다 리스본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골목들이 너무 예뻐서 여유롭게 한 바퀴 돌아본다.
바닷바람이 조금은 차가워졌고 나의 감기 기운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한국음식으로 기운을 북돋워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