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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Oct 15. 2024

불현듯 각성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삶의 회로는 기대와 희망으로 돌리는 거란다

조금씩 조바심이 나던 마음이 다시 가라앉는다. '될 대로 돼라.'의 마음이었다. 삶에서 두 손과 두 발을 다 떼어 놓았으니 남은 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뿐이었다. 시간과 삶은 닮아있어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저 어디로든 향하여 가고 있었고 최종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낯선 위치, 낯선 장소에서 발견되어진다. 그동안의 시간 안에 '내가'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도 낯설다. 자연스러움을 핑계로 삼아 방관 혹은 방임의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책 속의 글을 읽고 있었지만 또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무엇 하나를 선택하고 무엇 하나에 집중을 해야 하는 시간이 또다시 주어졌다. 불현듯 각성의 순간이었다. 


책임감과 부담감, 간절함과 절실함, 그리고 부채감이었다. 손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상으로 향하지 않았고, 바라는 것이 많아 무한의 욕심을 탐내지 않았고, 그다지 대단한 완벽함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인생에서 시간은 멈추어지지 않고, 쓸모없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쓸모없음에 대한 좌절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결국에는 사면초가, 바람 앞 등불의 순간이었고 그렇게 불현듯 각성의 순간이었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잉여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통 잉여 생산물들은 재고처리되어 떨이로 팔리거나 마지막까지 남아 덤으로 소진되거나 결국에는 폐기 처분되어 영영 소멸되는 생존의 주기를 가지고 있을 텐데 잉여인간의 생존 주기는 이와 얼마나 다를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생존 주기의 어디쯤에 도착해 있을까 궁금하다.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고,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삶의 회로는 희망과 기대로 돌리는 거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게으름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쓸모없음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에 무엇이든 하려 하는 건 존재의 증명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무엇이든 하려 하는 건 용감함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잊어먹고 있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불현듯 각성의 순간이었다. 




오늘 하루 당도 100%의 과도한 달달함을 만끽한다. 그다지 쓰지 않은 살아감이라 버텨보지만 몸도 마음도 달달함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이렇게 불현듯 각성의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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