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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Feb 12. 2024

초겨울의 수리산

초겨울 여섯 해 만에 다시 찾은 수리산. 그해 여름에는 수리약수터에서 시작하여 가파른 비탈길에 고전하며 기진맥진 관모봉에 올랐었다. 한 해의 마지막 달 첫째 주말 아침 공기는 신선하고 하늘도 오랜만에 높고 맑다.


이번엔 성결대학 교정 뒤로 뻗어 내린 산줄기로 접어들어 외곽순환도로 산본 IC 옆 능선을 지나는 코스를 잡았는데 힘겹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뾰족하게 솟은 바위로 된 관모봉 꼭대기에는 예전처럼 국기 깃대에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관모봉에서 태을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말 편자처럼 ㄷ자로 휘돌아 수암봉으로 뻗어간다.


뚜껑 열린 병처럼 산에 둘러싸여 한쪽만 뚫린 지형의 '병목안'은 예전엔 더없이 적막했을 터인데 외곽순환도로가 수리산 두 산줄기를 산적꼬치 꿰듯 터널로 뚫고 지나가면서 순환도로에 노출된 능선길은 통행차량의 소음으로 시골장터에서 울리는 확성기처럼 시끄럽다.


수리산 최고봉인 태을봉을 지나면 스테고사우르스 등 마냥 불쑥불쑥 날카로운 갈퀴를 세운 병풍바위가 산객들에게 우회하라 위세를 떨고 건너갈 때 서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칼바위는 커플 등산객의 애정도를 테스트하는 길목이다.


슬기봉은 군사 시설이 차지하고 있어 아쉽지만 그 바로 아래로 잘 닦아놓은 우회 목책 길은 수암봉까지 이어진 산줄기와 지나온 태을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 포인트다.


산 비탈길 목책은 사람과 자연을 보호하는 고마운 존재인데 간혹 일부 산객은 목책을 넘는 일탈을 하기도 한다. 일상에서도 주어진 역할과 본분을 망각한 일탈은 그 자신을 위태롭게 하고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분노와 지탄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산 아래에서 능선에 들어선 군시설까지 이어진 경사진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수암봉으로 가는 산 허리 길로 들어서면 평탄한 산책로처럼 아늑하다.


봉우리 전체가 바위로 된 수암봉에 오르니 산정과 그 아래쪽에 설치된 조망대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방으로 장쾌하게 펼쳐진 풍경을 조망하며 추억을 담고 있다.


수암봉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가 푸른 솔이 기품 있게 늘어선 하산하는 너른 능선길은 크고 작은 마을들을 품은 지맥들로 갈라진다.


병목안 마을로 내려와 시민공원 자연학습장 캠핑장을 지나 돌을 꼼꼼히 쌓고 다듬어 닦아 놓은 관모봉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산 중턱까지 올랐다.


능선을 한 바퀴 돌아 들머리로 회귀하는 오늘의 산행도 여섯 시간이 훌쩍 넘어 막바지다. 산행 시작점 방향으로 휘돌아 늘어진 3부 능선길을 따라 수왕 약수터와 개나리 숲을 지나 청소년수련원 쪽으로 내려서며 수리산의 품을 빠져나왔다.


지난 주말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눈이 내렸는데 산행길 곳곳에 여전히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은 지나가는 가을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 듯하다.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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