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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참새 꼬치구이는 어떤 맛일까!

천 년 고도 교토(京都) 투어(@사진: 청수사 본당)

by 꿈꾸는 시시포스

오사카에서 아침을 맞는다. 트윈 2층 침대의 상층에서 눈을 뜨서 머리맡의 커튼을 살짝 밀어젖혔다. 난바 역(難波驛)에서 남쪽으로 곧게 뻗은 텅 빈 요츠바시스지 거리와 빌딩 숲이 여명 속에서 덩그러니 눈에 들어온다.

교토(京都) 일일투어를 예약해 둔 터라, 가족 모두 06:30쯤 기상해서 채비를 했다.

일곱 시가 조금 지나 호텔을 나서서 투어 버스가 출발하는 츠루동탄(つるとんたん) 소에몬초 점(宗右衛門町店)을 향해 걸었다. 이십여 분 만에 출발 장소에 도착하니, 투어 버스들이 도로변에 길게 줄지어서 있다. 교토 등 오사카 외곽의 다른 도시로 일일투어를 떠나는 버스들이 출발하는 장소인 듯했다.


투어 참여자는 모두 한국인들로 대부분 가족 부부 연인 사이들로 보인다. 투어객 모두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자, 자신을 '피*'라고 소개한 가이드는 오사카성과 나라 교토 등 인근 도시의 역사, 오사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 도톤보리(道頓堀)의 글리코상(グリコサイン ), 일본인들이 신사 참배할 때 박수 두 번 절 두 번을 하는 의미 등을 맛깔나게 설명한다.

후시미이나리 신사로 가는 길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도리이와 여우 像

번잡한 오사카(大阪) 시내를 벗어나 약 한 시간 반을 달려, 교토의 첫 탐방지인 후시미이나리 신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교토는 우리나라의 천 년 고도 경주를 연상케 한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부터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시작된 1868년에 이르는 1100여 년에 걸쳐, 일본 천황의 소재지이자 수도로서 역할을 한 고도(古都)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여러 도시 중 비교적 피해를 덜 입어 각종 신사 고궁 사찰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높은 빌딩은 보이지 않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철길 건널목을 지나 비스듬한 언덕길을 따라 후시미이나리 신사(Hushimiinari Jinja , 伏見稻荷神社)로 걸어 올라갔다. 신성한 곳이 시작됨을 알리는 도리이(鳥とり居い)를 지나 비스듬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신사로 향하는 문 좌우에서 여우 동상이 탐방객을 맞는다.

711년에 처음 세워진 이 신사는 상업의 신을 모시는 이나리(稻荷) 신사의 총본산으로, 4만여 개의 사찰을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곡물 신으로 알려진 열쇠 보석 벼 등을 입에 문 여우의 동상이 곳곳에 서 있어 '여우 신사'로도 알려진 곳이다.

두 개의 기둥이 가사기(笠木)로 불리는 가로대로 연결된 수많은 주홍빛 도리이가 외배당(外拜堂)과 내배당(內拜堂) 뒤편 산록을 따라 터널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도 등장한 그 생경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이 일본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벽사(辟邪;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의 의미를 가진 주홍색으로 칠해진 도리이에는 기둥마다 기부자 이름과 기부 일자 등이 새까만 먹 글씨로 적혀 있다. 수많은 도리이 중 그 어떤 것은 이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해야 세울 수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신사를 둘러본 후 청수사로 향하는 길에 버스 안에서 가이드 피코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엔 좁은 도로에 주차하기가 용이한 작은 차량이 많다. 곳곳에 자판기가 있는 이유는 빈발하는 지진으로 비상 구호품 조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속도로 속도 제한은 시속 100km인데, 과속에 대한 제재가 엄격해서 벌금이 50만 원부터 시작한다. 운전면허 따기도 힘들어서, 합숙과 시험 등 면허 취득에만 30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일본 내 빠징코는 대부분 우리 교포들이 운영하는데, 그에 딸린 화장실은 누구나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지만 잘 알지 못했고 별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나라, 가이드가 틈틈이 들려주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관련 단편적인 정보에서, 유순한 듯 고집스레 자기만의 규칙과 생활태도를 고수하며 이어가지만, 체면과 과시보다는 실용과 내실을 중요시하는 일본인의 일면들을 엿볼 수 있다

청수사(清水寺)

주차장에서 내려 음식점과 기념품점 등이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기요미즈자카(清水坂) 비탈길을 따라 청수사로 향했다. 청수사(清水寺; 기요미즈데라; きよみずでら)는 일본 북법상종(北法相宗)의 대본산으로 나라(奈良)의 엔치이 스님이 '북쪽 깨끗한 물 있는 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속 백발노인의 말에 따라 지은 절이라고 한다.

절의 이름은 주변의 언덕의 오토와 폭포에서 본당 뒤편에 세 갈래로 갈라져 떨어지는 물줄기(音羽の滝; 오토와노타키)에서 유래했는데, 각각의 물줄기는 건강, 사랑, 학문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왕문을 지나자, 계단 위에 삼중탑(三重塔), 수구당(随求堂), 진수당(鎮守堂), 북종문(北総門) 등이 보이고 그 뒤로 기요미즈데라 본당도 눈에 들어온다. 십일면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당은 노송나무껍질을 얇게 만들어 촘촘하게 붙인 지붕과 못을 사용하지 않은 건물로 유명하다. 교차하는 높은 목재 축대 위에 자리한 본당의 테라스 격인 부타이(舞台; 무대) 위에 올라서면 산에 둘러싸인 교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그 경관이 가히 천하일품이라 할만하다. 이곳은 한자의 날인 매년 12월 12일에 일본의 ‘올해의 한자’를 발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청수사 아래 상점가의 식당에서 소바로 점심을 들고 교토의 북쪽 언덕 위에 자리한 금각사로 이동했다.


금각사(金閣寺; きんかくじ; 킨카쿠지)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 1358-1408)가 1397년에 지은 절로,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 녹원사)이지만,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전인 금각이 있어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벽면 외곽이 찬란한 황금으로 금박 된 금각은 1층은 헤이안 시대의 귀족 주거 양식인 신덴즈쿠리(寢殿造), 2층은 사무라이 저택 주거 양식인 부케즈쿠리(武家造), 3층은 선종 사찰 양식인 부츠덴즈쿠리(佛殿造)를 따른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1467년 오닌의 난(応仁の乱)으로 불타 재건된 후, 1950년 견습 승려 하야시 쇼켄의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1955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금각 전면에 너른 마당을 대신해서 너른 교코치(鏡湖池, 경호지) 연못이 자리한다. 눈앞의 금빛 찬란한 금각과 쌍둥이 마냥 또 하나의 금각을 연못의 잔잔한 수면 위에 거꾸로 띄워 놓은 모습이 비현실적이고 생소해 보인다. 그 광경은 인물이나 풍경 등을 화려하면서도 정치하게 담아낸 우키요에(浮世絵; うきよえ) 그림 한 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청수사에 비할 바 없이 규모가 작은 금각사의 뒤쪽의 후원을 잠시 둘러보고, 교토 시내 서쪽에 자리한 아라시야마(嵐山; あらしやま)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금각사의 금각(좌)/아라시야마의 죽림(竹林)과 가츠라 강 계곡(중, 우)
아라시야마의 도게츠 교(渡月橋)

아라시야마의 중심부를 가쓰라 강이 지나고 그 위에 도게쓰 교가 걸려있는 이 지역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귀족의 별장이 모여 있던 곳으로, 지금은 벚꽃과 단풍이 특히 아름다운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하루 일정의 투어는 가츠라 강 위의 도게츠 교(渡月橋), 산록의 차쿠린(竹林;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좁은 산책로, 정원이 아름답다는 텐류지(天龍寺), 인연의 신을 모신 곳이라는 노노미야 신사(白峰弁財天), 후후노유 온천(風風の湯)과 족욕탕 등 아라시야마의 명소들 중 몇몇 곳만을 둘러볼 수는 시간을 허락했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갈색의 도시, 건물 높이가 교토타워 보다 낮게 제한된 지붕이 없는 고도, 원자폭탄을 피해 간 도시, 유카타나 기모노를 입으면 사원 출입이 무료인 도시, 정이 많은 상업의 도시인 오사카와 달리 수다쟁이와 변덕쟁이가 많은 도시, 참새 꼬치구이 파는 가게가 있다는 도시,... 오사카 난바의 월세 120만 원 3~4평 숙소에 기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색소폰 연주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28세 청년 가이드 피코, 그의 설명으로 교토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나마 해갈해 본다.

시나브로 투어 일정이 모두 끝나자 아라시야마를 뒤로하고 오사카로의 귀로에 올랐다. 어느새 오에야마(大枝山), 코시오야마(小塩山) 등 교토 서부를 감싼 산줄기 위 하늘의 구름이 붉은빛으로 노을 지며 하루를 마감할 채비를 하고 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浮世絵) <후가쿠 36경; 富嶽三十六景> 중 '甲州石班澤'

다소 지친 기색의 가이드는 아직도 에너지가 남았는지, 오사카 난바 부근 종류별 맛집을 단톡방에 공유해 주며 설명을 곁들인다. 오사카에 도착해서 저녁을 들러 가이드가 소개해 준 회전 초밥 식당을 찾아갔다. 빌딩 4층에 있는 식당 밖 로비에는 대기 번호표를 뽑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몇 보인다. 난카이 역사 앞을 지나 호텔로 복귀하면서 패밀리마트에 들러 샌드위치와 기린 아사히 등 일본산 캔맥주, 그리고 조각 치킨 등을 샀다. 오사카에도 교토처럼 참새 꼬치구이를 파는 가게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 패키지여행의 뒤풀이 삼아 가족이 호텔방에 둘러앉아 서로에 대한 아쉬운 점과 서로의 속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가졌다. 세대 차이인지 서로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탓인지, 여러 면에서 생각의 틈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이라는 사실과 함께 온 가족이 좁은 방에서 함께 잠을 청하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밤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 시간이기도 하다. 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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