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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관문,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photo 새벽녘의 타슈켄트

by 꿈꾸는 시시포스

황금빛으로 빛나던 계절의 색깔이 바래가는 11월, 사마르칸트로 출장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의 우즈베키스탄 항공 창구 앞, 거대한 짐가방을 끌며 줄을 선 현지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와 직항 편이 생기고 교류가 잦아지면서 먼 서아시아의 나라 우즈베키스탄까지 오가는 전문적인 보따리상들이 생겨난 것이다.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는 ‘보따리상’이 많았었다. 일본에서 소니 카세트 플레이어나 야마하 전자 키보드 같은 고가의 가전제품과 악기를 들여와 국내에서 웃돈을 붙여 되파는 일이 하나의 직업군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대열에 올랐다. 새로 개항한 인천공항을 주름잡던 중국의 ‘다이궁(代购; dàigòu)’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중앙아시아 출신 보따리상로 대체되어 갔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한국 제품을 구매해 본국에 되파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들은 젊은 여성층이 많고, 장기 체류자 또는 한국 내 취업자와 연계되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공동체 단위 생활형 무역’이라는 점이 중국계 ‘다이궁(代购; dàigòu)’과 다른 점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등은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동방의 비단과 문물’이 이곳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다. 고대 실크로드의 서쪽 끝자락, 그곳에서 낙타를 끌던 대상(隊商)의 후예들이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실크로드의 동쪽 끝 한국을 오가며, 비단 대신 화장품이나 전자제품 등을 나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출국장에서는 출장 동행인 P를 만나 9시 20분 발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에서 마주한 옆자리 승객은 사마르칸트에 산다는 젊은 여성이었다. 비행 내내 말 한마디 없이 서로의 공간을 지키다가, 착륙이 가까워져서야 어색함이 무뎌지며 처음으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타슈켄트 공항은 작고 단출했다. 수하물은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고, 통관 수속도 느리고 지루했다. 도착 시간 앞당겨져 우리 일행을 맞아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빠져나오자 타슈켄트의 하늘이 이방인을 환영하듯 맑았다. 택시를 잡아 시내로 향했다. 킬로미터 당 1달러라는 요금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흥정할 틈도 없이 기사는 택시에 우리 짐을 실었다.

타슈켄트의 아미르 티무르 광장과 아미르 티무르 동상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오래되고 육중한 외관의 ‘호텔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의 권위주의적인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건축물로 보였다. 오후 늦게 호텔 로비에서 유럽과 러시아에서 온 회의 참석자들과 조우하여, 이름만 알던 사람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저녁 일곱 시 반경 시작된 공식일정은 타슈켄트 지역 부관리관의 주관으로 열린 환영 만찬이었다. 낯선 언어와 얼굴들, 익숙지 않은 음식, 그러나 잔을 부딪치며 건배가 이어지면서 어색함은 무뎌지고, 서로가 조금씩 마음을 트며 이국의 밤이 깊어갔다. 이처럼 회의에 앞서 첫날부터 만찬을 가지는 것은, 개최국을 바꿔가며 일 년에 한 번씩 모이는 회의 특성상, 이기회를 빌어 CIS 회원국 간 우의를 다진다는 의미로 관례처럼 이어오는 듯했다.


타슈켄트의 아침은 낯설고도 평온했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했다. 아침 일정은 회의 대신 ‘아미르 티무르 기념관(Amir Timur Museum)’과 전통 재래시장인 초르수 바자르(Chorsu Bazaar) 방문이었다.

원형 돔형 구조의 웅대한 기념관 건물이 1370년 샤흐리사브즈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건국하여 러시아 남부, 중앙아시아, 이란, 이라크, 인도, 터키, 시리아 등에 걸친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티무르 대제의 업적을 대변하고 있다.


그에 비해 초르수 시장은 활기찬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다. 둥근 돔 형태의 지붕 아래로 사람들의 발걸음과 흥정이 분주히 오가고, 향신료 냄새는 코끝을 자극하고, 원색의 과일들과 견과류들은 탐스럽게 쌓여 있었다. 점심식사는 시장 근처 전통 식당에서 이뤄졌다. 양고기를 곁들인 볶음밥 ‘쁠로브(Plov)’와 토마토 샐러드, 달큼한 빵이 상 위에 놓였고, 우즈베크식 따뜻한 홍차가 곁들여졌다. 식사 후 돌아오는 길, 자동차 창문으로 들어온 늦가을 바람이 피곤함을 살짝 씻어냈다.

초르수 바자르(Chorsu Bazaar)와 상인들

오후 세 시경부터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장 안에는 우즈베크을 비롯해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지역에서 온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차분한 논의와 자료 발표가 이어졌고, 러시아어를 중심으로 때때로 통역이 섞인 대화 속에 여러 언어들이 한 회의장 안에서 교차했다.

만찬은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에서 다시 열렸다. 이번엔 전통 음악과 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긴 회의로 굳었던 몸과 표정들이 점차 풀어졌고, 한 명씩 돌아가며 건배를 제의했다. 공연 무대에 오른 춤꾼들은 화려한 의상 속에 율동을 실어 보냈고, 이내 식당 전체가 박수와 음악으로 들썩였다. 누군가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고, 참석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어우러지며 저녁이 무르익어 갔다.


밤늦게까지 이어졌던 환영 만찬의 여운은 아침까지 남아 있었다. 알람 없이도 눈이 떠졌고, 피곤한 몸을 이끌어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타슈켄트의 아침 공기는 싸늘했지만,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대감이 그 공기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동행인 P에게 아침을 거르겠다는 짧은 전화를 남기고, 서둘러 짐을 챙겨 일곱 시, 호텔 로비에서 일행과 합류했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차량 안은 조용했다. 짧은 인사만 오간 채, 모두들 각자의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오전 8시, 사마르칸트를 향해 출발한 고속열차는 구소련 시절의 흔적과 현대적 열망이 뒤섞인 채, 황톳빛 들판을 가르며 사마르칸트를 향해 부지런히 달렸다.


두어 시간 뒤, 사마르칸트 역에 도착했다. ‘시간이 멈춘 도시’라는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티무르 제국(Timurid Empire)의 창건자로 중앙아시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복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 1336~1405) 대제가 야망과 예술혼이 깃든 도시에 발을 디딘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통과하던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동서 문명이 교차하며 “동방의 로마”, “이슬람의 정수”라 불리며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구석구석에 두꺼운 세월의 때를 켜켜이 이고 있었다.

사마르칸트의 아미르 티무르 동상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과 구르 에미르 영묘

우리 일행 가운데 영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소수만 따로 모였는데, 한국에서 6년을 살았다는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이끌었다. 그의 유창한 한국말 어투에는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 묻어 있다. 거대한 돔과 정교한 타일, 기하학적 문양들로 장식된 아미르 티무르가 잠든 묘역을 시작으로 고대 성곽과 타슈켄트 게이트, 비비하눔(Bibi-Khanym) 모스크, 그리고 시장 바라르(Barar)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사마르칸트 북동부, 아프로시압 언덕 기슭의 샤히진다(Shah-i-Zinda;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 묘역에는 타일 장식의 청록색 돔을 가진 왕족과 귀족들의 웅장한 묘역을 배경으로 평민들 무덤 비석들이 빼곡히 어우러져 있다. 강렬한 태양이 길 위에 내 그림자 하나를 그 비석처럼 드리운다.


점심 즈음, 가이드는 우리를 시장 근처의 작은 주류 상점으로 안내했다. 라벨에 술 향기가 배어있을 듯 보이는 저렴한 타슈켄트 산 코냑과 사마르칸트 산 위스키를 한 병씩을 샀다. 오후 다섯 시, 일행은 타슈켄트행 열차에 올라 귀로에 올랐다. 사막으로 멀어져 가는 대상의 행렬처럼 차창 밖으로 사마르칸트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져 갔다.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압 언덕 기슭의 샤히진다 묘역

오후 일곱 시 반경, 타슈켄트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 새도 없이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어제와 비슷한 구성의 전통 음식들, 그리고 빠지지 않는 보드카와 포도주가 곁들인 또 하나의 만찬이다. 건배 제의가 끊이지 않았고, 그 사이사이로 춤과 노래가 이어졌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당시 전 세계를 뒤흔들던 K-팝 ‘강남스타일’의 익숙한 전주가 흘렀다. 음악은 전 세계의 공통어라고 했던가! 떠들썩한 환호성과 함께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말 춤을 추며 서로 어우러졌다. 순간, 언어도 문화도 국경도 모두 허물어진 듯 보였다.


그날 밤, 깊은 만찬이 끝난 자리에서 각국의 대표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러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몰도바, 우즈베크… 날이 새면 이국의 밤하늘에 떠 있던 별처럼 이방인들의 모습도 하나둘 희미해질 것이다.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사원과 무덤의 화려한 타일처럼 반짝이는 추억을 남긴 채.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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