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서의 2박 3일
몰타(Malta),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지중해 어딘가의 휴양지가 떠올랐다.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이탈리아 시칠리아 남쪽 약 93km 지점 지중해 한가운데 자리한 인구 50만 명 남짓의 섬나라. WCO 산하기구 서유럽 사무소 주관으로 몰타에서 열리는 2박 3일간의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은 십여 년 전 가을이었다.
선사시대 유적부터 페니키아인, 로마인, 아랍인, 노르만 왕조, 그리고 몰타 기사단까지, 몰타는 수천 년간 지중해의 요충지로 끊임없는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섬 곳곳에 남아 있어 이 작은 나라를 하나의 살아있는 박물관처럼 느끼게 한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거쳐 몰타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었다. 공항은 작지만 정갈했고, 해 질 녘의 부드러운 햇살이 창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픽업 차량을 타고 수도 발레타 북쪽 약 7km에 있는 세인트 줄리안(St. Julian's) 근처의 호텔로 이동했다. 수도 발레타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약 13,000명으로 관광객과 어학 연수생이 뒤섞인 이 지역은 밤이 되니 더욱 활기를 띠었다. 좁은 거리 사이사이로 바닷바람이 밀려오고, 돌로 지어진 건물은 낮 동안의 햇살을 머금은 채 밤공기 속에서 따스함을 풍겼다.
도착 다음날부터 시작된 이틀간의 회의는 서유럽 회원국 대표들의 이어지는 발표와 토론으로 팍팍했지만, 회의장 너머로 보이는 바다 풍경은 그 긴장을 다소 덜어주었다. 회의를 마치고 난 저녁시간과 둘째 날 오후에 주최 측에서 마련한 몰타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필드 트립 일정은 겉핥기식으로나마 몰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ta)는 1565년 오스만 제국의 침공 이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몰타 기사단의 대수도장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Jean Parisot de Valette)에 의해 건설되었다. 몰타의 르네상스 및 바로크 양식 건물들은 해양동물 화석과 조개껍데기 등으로 생성된 몰타 산 석회암(Maltese limestone)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과 석회암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투명한 지중해의 햇살에 은은한 반사광을 만들며, ‘기단의 도시’ ‘요새 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몰타 기사단이 남긴 성당과 요새 등 몰타의 주요 건축물은 모두 이 석회암으로 건설되어, 도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석회암 조각처럼 보인다.
발레타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항구마을 마르사실로크(Marsaxlokk)가 자리한다. 아랍어로 ‘항구(Marsa)’와 시칠리아에서 불어오는 남동풍 ‘슐록(Scirocco)’의 합성어로 ‘슐록 바람이 부는 항구’라는 의미의 이 어촌 마을은 몰타 전통의 루주(Luzzu)라는 낚싯배로 유명하다.
배의 눈 모양은 고대 페니키아 전통에서 유래된 것으로,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어부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배들이 코발트빛 수면에 일렁이는 풍경이 이방인의 눈에는 낯설고 황홀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평범한 일상이다.
‘침묵의 도시(The Silent City)’ 또는 ‘노블 시티(The Noble City)’로도 불리는 음디나(Mdina)는 중세 몰타의 수도였던 곳으로, 몰타 섬 중앙 내륙 고지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인구 300여 명의 고요한 마을이다. 돌담과 곡선의 골목, 작은 성당, 그리고 마을을 둘러싼 성벽 위에서 바라본 마을 밖 평원 풍경은 마치 시간이 과거에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몰타 섬 정중앙에 자리하는 모스타 로툰다(Mosta Rotunda) 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돔을 가진 성당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투하된 폭탄이 돔을 관통했음에도 폭발하지 않아 ‘기적의 성당’으로 불리는데, 경건함과 경이로움이 감도는 성당 안에 그 복제 탄두가 전시되어 있어 이채로웠다.
각국 대표들과 함께 둘러본 발레타의 성 요한 대성당은 외관의 소박함과는 달리 내부는 압도적인 장식미로 가득했다. 바로크 양식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금박 천장의 그림과 대리석 무덤, 그리고 카라바조의 걸작 '성 요한의 참수'가 이 성당의 중심을 이룬다.
그곳에서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를 만나 알게 된 것은 기대치 못한 기쁨이었다. 초기 바로크 회화의 극적 명암대비 기법, 즉 테네브리즘(Tenebrism)의 창시자인 그의 작품들은 성서 속 인물들을 거리의 빈민, 거지, 죄인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고통, 갈등, 죽음, 신앙 등 인간의 내면을 강렬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1606년, 로마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몰타로 피신한 카라바조는 성 요한 기사단(Knights of St. John)의 후원을 받으며 작품 활동했다고 한다. 이곳 발레타의 성 요한 공동대성당(St. John’s Co-Cathedral)의 《성 요한의 참수(The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 1608년》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해가 진 뒤, 해변가 식당에서 이탈리아, 벨기에, 사이프러스 등 서유럽 여러 나라 대표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특별한 몰타의 밤을 맞았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특별한 곳에서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유대감을 느끼는 듯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호텔 인근을 산책했다. 영국 식민지의 역사를 갖고 있는 몰타는 영어가 공용어이고, 날씨도 좋고 치안도 안정적이어서 많은 청년들이 이곳에서 언어를 배우며 여름을 보내는 어학연수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 곳곳에는 학원, 쇼핑몰, 바와 클럽들 등이 줄지어 있다. P와 함께 찾은 중국 식당은 의외로 제대로 된 정통 중국식 요리를 내놓아 이날의 저녁을 풍성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몰타는 흔히 알려진 휴양지 이상의 얼굴을 지닌 나라였다. 끊임없는 침략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켜온 역사, 유럽과 아랍문화가 만나는 독특한 문화, 돌과 바다 위에 세운 성당과 거리, 그리고 현대적 삶이 조화롭게 섞인 작은 도시들.
길지 않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자투리 시간을 아껴서 겉핥듯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에메랄드빛 지중해의 물빛과, 햇살을 머금은 라임스톤의 부드러운 감촉으로 몰타는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반짝일 것이다. 1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