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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일과 여행의 경계에서

@사진: 태국 전통 춤의 하나인 라콘

by 꿈꾸는 시시포스

해외 여러 도시들 가운데 가장 많이 방문했던 곳은 단연 태국의 방콕이다. 2004년 북경에서 근무할 때, 처음으로 ‘천사의 도시’, '미소의 도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태국의 방콕을 출장차 방문했었다. 그 후, 파타야와 코사무이를 포함하여 예닐곱 차례 태국을 방문했는데, 언제나 처음처럼 이방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매력에 빠져들곤 했다.


방콕과의 첫 만남은 낯선 공기, 끈적한 열기, 입체적인 도로망과 빽빽한 교통,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황금빛 사원 등 생경하고 경이로움으로 가득했었다. 관광객과 현지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와불 주위를 돌며, 그 둘레에 늘어선 동전 항아리에 정성스레 동전을 하나씩 떨어뜨리던 왓 포(Wat Pho) 사원도 인상 깊었다. 길이 46미터 와불상은 그 크기만큼이나 태국인들의 믿음이 얼마나 신실하고 깊은 지를 말해 주고 있는 듯 보였다.

태국 방콕 왕궁 야경
짜오파라야강/에메랄드사원/전통 춤

그로부터 팔 년 후의 5월에는 태국 남부의 코사무이 섬에서 열린 아태지역 회의에 참석했었다. 짧은 회의와 필드 트립으로 구성된 일정은 섬을 둘러싼 그림같이 아름다운 천혜의 바다와 섬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 주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흰모래 해변, 손에 맥주잔을 든 채 바다를 향해 누워 있는 사람들, 해 질 무렵, 물소싸움 경기를 구경하며 환호하는 사람들, 해변의 만찬과 천등을 하늘로 띄워 보내며 저마다의 소망을 기원하는 전통 행사,... 기억 속에 그림엽서처럼 남아 있는 장면들이다.


그다음 해 6월 야생동물 및 자연환경 보호 단체가 주관하는 회의 참석차 다시 방콕을 찾았다. 쓰쿰빗(Sukhumvit) 거리 숙소 근처는 관광객과 현지 주민들로 붐벼 좁아 보이는 골목, 온몸으로 엄습하는 뜨거운 열기, 빼곡히 늘어선 거리의 음식점과 노점상들,... 빈부격차가 극심한 도시, 방콕은 화려함 뒤의 고단함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 맛본 현지 맥주 ‘창(Chang)’은 열대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 주었고, 길거리 허름함 식당의 국수와 홍안(紅柿) 주스는 더위에 지친 허기를 달래기에 적당했다. 드넓은 강폭의 넘실대는 차오프라야 강에서의 배 투어는 숨통을 트이게 했고, 배를 타고 둘러보는 시내 외곽의 수상 시장 체험 또한 방콕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방콕 근교의 담넌 사두억(Damnoen Saduak) 수상시장
방콕 시내 에라완 사당(Erawan Shrine)

2015년 3월 방콕을 방문했을 때에는, 유엔 건물 국제 회의장 너머로 현대적인 방콕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다. Siam Paragon, MBK, Terminal 21 같은 대형 쇼핑몰들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태국의 젊은 세대들로 가득했다. 열대의 열기와 사람들의 온기로 들끓는 거리와 달리, 냉방이 된 건물 안은 딴 세계처럼 냉기로 싸늘했다.


같은 해 10월, 다시 방콕을 찾았다. 그때도 UN에서 일하는 중국인 친구 닝을 만나, 매콤한 그린 카레, 쫄깃한 얌운센, 망고 찹쌀밥 등 현지인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진짜 방콕의 맛을 체험할 수 있었다. 저녁에 초청받은 선상 만찬에서 대형 유람선은 천천히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흘렀고, 불빛에 빛나는 활금빛 사원의 실루엣은 물 위에서 어른거렸다. 방콕은 여전히, 밤에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도시였다.


그보다 앞선 어느 방콕 출장과 2019년 마지막 방문기간 중엔 파타야에서의 일정이 포함되었었다. 거대한 리조트와 휘황찬란한 불빛의 밤거리, 그리고 눈을 사로잡았던 게이쇼(Cabaret Show). 화려한 무대 의상에 매혹적인 분장을 한 무희들의 대담하고도 매혹적인 춤과 퍼포먼스는 정신을 아찔하기에 충분했다.

태국 내 대표적 휴양지 중 한 곳인 코사무이

파타야 해변에는 유럽인 관광객들이 현지 주민보다 더 많아 보였고,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선 식당과 마사지샵, 기념품 가게들은 이국적 활기로 가득했다. 그 속엔 휴양지 특유의 자유로움이 넘치지만, 어딘가 모르게 ‘군중 속의 고독’이 짙게 배어 있었다.


사원의 불상 앞에서 느낀 경건함, 쇼핑몰 속의 시끌벅적함, 길거리 음식의 진한 향과 맛, 그리고 밤거리의 자유로움까지—극과 극을 오가는 이 도시의 얼굴은 매번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방콕은 친절한 국민성과 관광 중심 도시 이미지로 인해 '미소의 도시', 수많은 운하와 수상시장이 있어 '동양의 베니스'로도 불린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도시,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긴 지명 중 하나인 방콕의 풀네임에 이 도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사의 도시, 위대한 도시, 에메랄드 불상의 거룩한 수도, 난공불락의 도시, 아유타야 신의 영원한 수도, 위대한 궁전의 세계, 하늘의 집, 재탄생한 신들의 도시, 비슈누가 만든 도시”


익숙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곳, 서랍 속 여기저기 숨어 있는 사진처럼 기억의 창고에 흩어져 있던 방콕과 태국의 인상과 기억들을 이참에 가지런히 정리해 본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난 몸이니, 언젠가 업무가 아닌 진정한 여행자로서, ‘천사의 도시’ 방콕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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