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 달콤한 석류즙의 기억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쳐 자리한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입니다. BC 7세기 그리스의 식민지로 개척된 후, 로마와 오스만 제국을 거쳐,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앙카라로 수도가 이전되기까지,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배한 여러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십일 년 전 1월 바레인에서 귀국할 때, 그다음 해 5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갈 때 등 두 차례 이스탄불에서 각각 하룻밤을 스탑오버했었습니다.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의 이름에서 따온 이스탄불의 관문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해서,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시내 중심가로 이동했습니다.
'이스탄불'이라는 지명을 처음 접한 것은 영국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2)가 1934년 발표한 추리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에서였을 것입니다.
*파리~이스탄불을 연결하는 오리엔트특급 열차는 1882년부터 1977년까지 운행되었습니다.
이스탄불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 Muder on the Orient Express, 2017)'을 비롯한, '007' 시리즈, '인페르노(Inferno, 2016)', '테이큰 2(Taken II, 2012)', '고양이 케디(Kedi, 2016)' 등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인 때문인지, 시내 곳곳 명소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호텔에서 15분여 거리의 아야소피아 성당과 6세기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만든 거대한 지하 물 저장소인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nıcı; 예레바탄 궁전) 내부, 그랜드 바자르 시장, 예배가 진행 중인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의 외관 등을 훑어보았습니다.
예레바탄 물 저장소는 지하 궁전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각지의 신전에서 가져온 336개의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이 내부를 지탱하고 있어, 그 모습이 흡사 궁전을 연상케 하기 때문입니다. 기둥들 가운데 메두사의 머리 문양의 받침을 한 기둥 두 개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동행은 뉴욕타임 誌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00곳' 중 하나로 꼽은 터키식 옛 공중목욕탕을 체험해 보기로 했고, 나는 호텔 부근의 터키(현 튀르키예) 전통인형과 양탄자 공방 등을 둘러보고, 길거리 케밥도 맛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전통인형 공방의 전시장에는 이슬람 수피즘 종단이 수행의 방법 중 하나로 여기는 수피(Sufi) 춤을 추는 수행자 인형도 보였습니다. 무아지경으로 빙글빙글 돌며 회전하는 몸동작은 춤이라기보다는 춤과 음악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영적 체험을 하는 종교의식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 성당을 둘러보고, 귈하네(Gülhane) 공원을 거쳐 갈라타 다리(Galata Köprüsü)와 그 건너편 갈라타 탑을 찾았었습니다.
티르키예어로 '장미 정원'이라는 의미의 귈하네(Gülhane)는 토프카프 궁전(Topkapi Palace)의 바깥 정원이었는데, 1912년에 일반인에게 공원으로 개방되었다고 합니다. 공원에서는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urk, 1881-1938) 동상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접한 금각만(金角灣; Golden Horn) 위에 걸린 갈라타 다리를 건넜습니다. 다리의 인도교에는 낚싯줄을 바다에 담근 채 난간에 두어 개씩 낚싯대를 걸쳐 놓은 낚시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다리 건너편 언덕 위에서 528년 비잔틴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에 의해 처음 세워진 높이 76미터 갈라타 탑이 맞이합니다. 원통형 탑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 관광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습니다. 탑 위의 전망대까지 작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지라 오르내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탑 위의 전망대로 올라서면, 보스포루스 해협, 갈라타 다리, 귀하네 공원 등 주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갈라타 다리 옆 페리 터미널 근처의 길거리 생과일 즙 판매점에서 즉석 석류즙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즉석에서 착즙기에 넣고 눌러서 짜낸 시큼하고 달큼한 석류 액즙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석류 즙 한 잔의 가격은 일 년 사이에 2리라에서 5리라로 2.5배 껑충 뛰어 있었습니다. 그 해에 석류 농사가 흉년이 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격이 훨씬 더 올랐지 않았을까요?
기후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석류 재배에 이상적인 튀르키예는 세계 5대 석류 생산국 중 하나입니다. 최근 연간 생산량은 약 70만 톤, 연간 수출량은 15~20만 톤으로 수출액 상위 10위 안에 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튀르키예산 석류로 만든 농축액 등 다양한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그랜드 바자르(bazzar; 지붕이 덮인 시장)에 들렀습니다. 시장 내부에는 온갖 종류의 잡화를 파는 가게와 과일을 원료로 한 젤리 등 달달한 먹거리를 파는 상점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느 기념품 상점 벽면에는 우리나라의 천 원 짜리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지폐가 핀에 꽂혀 있어, 세계적 관광지로 이름난 도시들 중 하나임을 실감케 했습니다.
자투리 시간이나마 허투루 생각지 않고 부지런을 떠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적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