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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 Mar 17. 2021

아무도 보지 않는일본의 비밀

리뷰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전쟁을 치르다 왕이 야반도주하고 민중은 왕의 궁궐을 태웠다. 불세출의 장수와 백성들이 침입을 물리쳤다. 적敵은 두 차례로 나누어 쳐들어 왔으나 그 우두머리가 병으로 죽자 싸움을 그치고 스스로 물러났다. 야반도주했던 왕은 돌아와 어버이로 떠받들던 큰 나라에 도움을 청해 외적을 물리쳤으니 가장 큰 공은 자신에 있다고 외친다. 1592년부터 8년간 조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처참하게 짓밟히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조선의 왕과 양반들은 칼날을 벼릴 겨를도,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결기도 없었다. 명이 무너지고 청이 들어서자 만주에서 불어온 매서운 북풍은  또 두 차례 조선의 땅과 강을 피로 물들였다. 조선의 임금은 세 번 엎드리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어떤 치욕과 분노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자들이 그 후로도 300년간 조선에 군림했다. 그리고 이번엔 나라를 통째로 적의 입 속에 바쳤다.  45년 후 얻은 해방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는 300년의 시간 동안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묻는다. 메이지 유신 후 군국주의 길로 들어선 일본이 스스로 '양이洋夷'가 되어 조선을 그들의 밥그릇으로 만든다. 사쓰사-조슈라는 동맹이 '유신'이란 미명 하에 일왕을 옹립하고 에도 바쿠후를 권좌에서 몰아냈다는 것쯤은 얼핏 이나마 역사 시간에 배웠다. 이토 히로부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데자뷔인 점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하기는 막막했다. 이 책의 저자 조용준은 고대 그리스 비극보다 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임진왜란과 300년 후의 한일병탄의 악연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이 책의 빌런은 셋이다. 사가, 조슈, 사쓰마... 죠슈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 남단 규슈에 위치한 번番이다. 에도막부 말기 일본은 270개 번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었다. 이 3개의 번은 270개 중 3에 불과하다. 정치의 중심인 에도 혹은 교토를 중심으로 보면 변방 중에 변방이다. 이 변방들이 무슨 힘으로 에도 막부를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책은 집요하게 이 의문을 파고든다. 


더 눈여겨볼 지점은 150년 전 시작된 국군주의 DNA를 가진 권력이 아직도 일본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의 외조부가 A급 전범이었던 조슈 출신 기시 노부스케란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도 방위청 장관을 지낸 정치인으로 사쓰마(가고시마) 출신이다. 21세기 일본의 최고 권력자 2명이 사스마와 조슈에 연고를 둔 것이 그저 우연일까?    


좀 더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430년 전 조선을 침략한 선봉이 서일본, 특히 규슈 출신이라는 점은 무엇을 말할까? 동일본에 비해 단지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조선을 침략했을까? 300년 후 정한론을 앞세워 한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것도 단순한 지정학적 요인 때문일까?  


역사는 수많은 우연이 겹쳐지며 인과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1543년 가고시마 남단 다네가시마 섬에 명으로 가던 포르투갈 선박이 표류한 것은 우연이다. 이 배에 실려있던 화승총-조총-두 자루는 50년 후 조선을 침략하는 근거가 된다. 힘이 균형이 깨질 때 전쟁은 필연이다. 

우키요에 <운양함병사조선강화도입도> 1875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후 일본에 끌려 온 10만의 조선인 중 수 천의 도공이 포함된 것 또한 필연이다. 조선의 도공들은 조선과 다른 대우를 해주는 일본에서 미친 듯 가마를 짓고 도자기를 구워냈다. 그리고 조선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그릇을 만들어 유럽 귀족을 사로잡았다. 세상의 은이 모두 일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넘쳐나는 돈으로 총과 대포, 군함을 샀다. 돈과 세상의 중심은 규슈였다.  또다시 힘이 균형의 무너지자 전쟁은 필연이 된다. 청이 굴복했고 러시아도 손을 들었다. 조선은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보다 쉬웠다. 한 나라의 왕비는 제 나라 궁궐에서 칼로 난자당하고 왕은 남의 나라 외교 관저로 도망친다. 이런 데자뷔가 또 없다. 납치한 조선 도공의 도자기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무기를 샀고, 그 무기는 조선의 목젖을 겨누는 칼날이 된다.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은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 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아무도 알려하지 않고, 보고도 눈을 감았던 공공연한 비밀에 대해 말한다.  


더 쉽고 자세한 이야기...

   https://youtu.be/ARZao948T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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