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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으고 잇고... 휘고, 쪼개고, 섞고

#연결거리 #연결 지능 #확산적 사고 #변형적 사고 #패러디

연결하려면 재료가 있어야지~

                                                  

도마뱀인가 용인가 -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의 명물.

 


 

, 시간과 아이스크림의 공통점이 뭘까?”

 

 

바르셀로나 시장통을 걷다가 스페인 출신의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가 떠올라 민 군에게 던진 질문.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년, 캔버스에 유채, 24 x 33cm, 사진 출처: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흐물흐물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시계가 인상적인 <기억의 지속>,

바로 그 작품 말이죠.

 

 

 



어리둥절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는 민 군.

 

“뭔데?”

 

“음… 우물쭈물 하다가는 놓친다?!”

 

‘무슨 그런 억지가 다 있냐’는 듯한 표정의 민 군.

 

아홉 살 아이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이야기였을까요?
 

 

“자, 이거 봐~ 달리라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인데, 여기 시계가 흐물흐물 녹아 내리고 있지? ‘영원한 건 없다. 절대적인 건 없다. 아이스크림도, 시간도…’ 화가는 어쩌면 그런 뜻으로 녹아 내리는 시계를 그려 넣은 것 아닐까?”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찾아 보여주며 더 풀어서 설명을 해 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물론, 달리가 실제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시계또는 시간?이라는 대상을 ‘태양 아래 녹아 내리는 까망베르 치즈처럼’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구엘 공원’에서.

사실 이번 한 달 여행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도 나도 이미 오래 전 방문 경험이 있지만 민 군과 다시 찾고 싶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건축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레우스 태생으로 17세에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7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곳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회사나 상품, 서비스의 이름을 짓는 일naming이나 강력한 ‘워딩 파워’를 지닌 명카피를 만들어내는 데도 이렇게 일견 관계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고 이어 붙이는 방식을 많이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Netflix는 극장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Net을 통해 영화Flicks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즐길 수 있게 한다는 핵심 가치를 담아낸 경우입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것들을 연결하고 변주하는 것으로도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결을 잘 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할까요?

 

당연히 지식이나 고민, 아이디어와 같은 ‘연결거리’ 즉, ‘재료’를 많이 갖고 있어야 유리하겠죠. 아는 만큼 빗대어 보고, 이어 볼 수 있는 거니까요. 결국 다양한 경험이 창의적인 연결의 밑바탕이 된다는 겁니다.

 

직접 경험에는 여행, 간접 경험에는 독서만한 것이 없죠.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하는 것도 긴 인생 여정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경험들로 쌓이게 됩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전자공학을 좋아하면서도 히말라야에 오를 만큼 선불교에 빠져도 보고, 캘리그래피와 폰트를 비롯한 디자인에 심취하고 했던 것처럼요.

 

서구 유명 대학들이 전공 과목 못지 않게 인문학, 철학 등을 강조하고, 고전을 읽고 토론하게 하는 것도 다 비슷한 이유입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


- 조정래(1943~), 소설가

 





 

‘연결 지능’과 확산적 사고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피카소는 프랑스 파리 등 다른 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그의 고향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주로 그의 초기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연결할 재료를 모으는 것만큼이나

연결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제 아무리 지식과 경험이 많이 축적됐다 해도 이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소용이 없겠지요.

 

창의력의 비밀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발달된 다양한 관점과 견해, 아이디어들이 서로 부딪히고 어우러지면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과정에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뇌과학자 등 전문가들은 뇌에서도 특히 ‘뇌량’이라는 부분에 주목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이 곳이 주로 담당하는 걸로 보인다는 거죠.

 

뇌량corpus callosum, 뇌들보은 좌뇌와 우뇌, 즉 대뇌의 왼편과 오른편을 연결해 서로 상호 작용하고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 세포 뭉치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뇌량이 더 두껍다고 하는데요,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해 내는 멀티 태스킹 능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대체로 앞서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결 지능’Connectional Intelligence,

“다양하고 이질적인 네트워크, 지식과 경험, 자원을 결합해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연결 지능을 높여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는 ‘확산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사고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가 있는데요.

  

확산적 사고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많아야 풀 수 있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형태로 탐색하고, 뻗어나가는 사고 과정입니다.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반면, 수렴적 사고는 그다지 창의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형화된 문제에 대해 이미 알려진 사실을 추리고, 정리해 하나의 , 결론을 도출해 내는 사고 유형입니다. 논리력이 필요하지요.

 

                                                  

사고의 유형 - ‘확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 요즘은 이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둘 모두를 적절히 병행해 활용하는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가 필요하다고도 한다. 이미지 출처: 실비아 덕워스 홈페이지(https://sylviaduckworth.com)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렴적 사고가 논리적, 비판적 접근에는 도움을 줄 지 몰라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만들어 내는 일은 그것만으로는 어렵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지식을 쌓고, 시험을 보는 데 필요한 능력은 대개 수렴적 사고와 관련된 것입니다. 글을 빨리 익히고, 수에 밝은 아이들이 보통 이 수렴적 사고를 잘하지요.

 

그런데, 확산적 사고는 그런 지능지수IQ하고는 그렇게 큰 상관이 없어요.

 

즉, 국영수에 강하고 시험 성적을 잘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창의성이 높은 아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특히나, 21세기 우리가 마주한 중요한 문제들은 단지 좋은 머리로 초.초.초집중하고, 몰입, 골몰한다고 해도 해결책이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 복잡다단한 것들이 많습니다.

 

무언가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보다도 다소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대상에 두루 관심을 두고 하나의 아이디어를 다른 범주, 다른 분야로 끌어다 붙이고 연결해 확장하는 연결 지능이 더 중요해진 거죠.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연결거리를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 그게 비결입니다.

 

 

 

“내가 ‘호기심과 직관’에 따라서 한 일들이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대학을 6개월만에 중퇴하고,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는 정규 과목이 아닌 호기심과 직관에 이끌렸던 ‘서체 과목’을 배운 것이 10년 이후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중략)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러분들의 ‘경험’, ‘사건’, ‘지식’, ‘사물’ 등을 연결해서 관계성을 갖게 하라는 것입니다. 앞만 보면서 여러분의 경험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보면서 경험을 연결할 수 있죠, 그러나 그 경험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말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연설 중 한 부분입니다.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축사이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다시 찾아보는 전설적인 연설이죠.

 

그의 말을 보면 단지 단편적인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삶의 궤적을 이루는 여러 경험, 사건, 지식, 사물이 결국엔 다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잡스가 말했던 ‘점’들은 만나서 관계를 맺는 사람과 사물, 여러 가지 사건과 그 과정에서 겪는 감정, 이런 모든 것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의미 있는 점들은 ‘이게 나중에는 이렇게 엮여질 거야’ 하고 미리 내다보고, 계획해서 찍어 둔 건 아닐지 몰라요.

 

모든 걸 그렇게 치밀하게 미리 계획할 수도 없고, 인생이 항상 의도한 대로만 펼쳐지라는 법도 없죠.

 

일부러 그렇게 할 수도 없거니와 잡스도 말했듯, 항상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아… 이게 이렇게 연결되려는 거였구나’ 하고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에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직간접적 경험을 더 많이 하고, 또 그것들을 연결하고, 그 결과로 나타날 것의 영향implications까지 헤아려보고, 미래를 그려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

 

일상에서 이런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대상을 보든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커서도 무엇을 보든, 어떤 일을 대하든 자신의 주된 관심사로 ‘깔대기’처럼 연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잡스는 애플 신제품 공개 행사를 할 때 ‘LIBERAL ARTS’(인문학)와 ‘TECHNOLOGY’(기술)란 표지판이 교차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삼곤 한 데 대해 “창의성이 발생하는 건 교차점이다. 다빈치는 그것의 궁극(ultimate)이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 <중앙일보> 2019년 2월 15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관련 기사 중







 

휘고, 쪼개고, 섞고…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 연못 건너편에서 촬영.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1882년부터 130년 넘게 건축 중인 가우디의 역작. 2026년 완공 예정.

 


 

“긍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없고,

부정적인 사람은 한 게 없다.”


-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PYH 대표

 


 

‘한계’와 ‘한 게’, 한 끗 차이의 비슷한 발음이지만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대조를 만들어냈네요.

 

사실 이런 언어 유희는 단어 안에서 어느 한 부분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무릎을 탁’ 칠 정도의 멋진 비틀기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아요.






팬텍의 ‘베가 아이언’ 광고를 패러디한 ‘팔도 왕뚜껑’.

 

“메탈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물불을 두려워 않고 뛰어드는 용기와 어떤 시련에도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 … (중략) …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뚜껑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뜨거운 김을 두려워 않고 견뎌내는 인내와 어떤 시련에도 맛을 지켜내는 책임감 … (중략) … 단언컨대 뚜껑은 가장 완벽한 물체입니다.”

 

 


기본적으로 ‘패러디parody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텍스트를 절묘하게 변형시킴으로써 관심을 끌고, 재미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광고 기법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예능이나 개그 프로그램에서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 흔한 비판이나, 풍자에도 종종 쓰이죠. 비틀기는 보통 비유적 표현이나 패러디에 활용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큰 효과를 냅니다.

 

우리가 흔히 ‘사이다’ 발언이라고 하듯이 어떤 것은 통쾌할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죠.

 


 

시니어를 위한 잡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실린 배달의민족 광고.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익히 알려진 표현을 살짝 비틀어 배민 특유의 위트를 만들어 냈다.

   


단순한 모방을 넘어 창조적인 상상을 하는 데는 한 가지 생각 도구로는 충분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문제를 규정하고, 들여다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할 때 단 하나의 관점과 접근법으로만 골몰하기보다는 관찰, 유추, 연상, 과장, 단순화, 의인화, 감정 이입 등 가능한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어떤 한 영역에만 치우친 사고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죠.

 

‘변형transforming이나 ‘변형적 사고transformational thinking는 그렇게 여러 생각 도구가 어우러지면서 나타나는 결과물이자 창조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는 미술이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관측 결과를 정밀하게 스케치했다. 사진기가 등장하기까지 과학자는 자신이 관찰한 결과를 그림으로 기록해야 했다. 그린다는 것은 대상의 공간적 구조를 자신의 마음 속에 내재화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과학이다.”


- 『뉴턴의 아틀리에』(김상욱, 유지원, 민음사, 2020)





누군가가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정보, 깨달음을 그 분야의 배경 지식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려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줘야 할 필요가 생기는데 이 때도 역시 변형과 변형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다들 제 입장에서,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언어로 번역해 줘야 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어떤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서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책골을 넣은 상황에 비유하거나,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에 빗대어 설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문제를 놓고도 화가가 바라보는 관점과 건축가가 이해하는 방식, 물리학자나 의사, 변호사가 접근하는 방법이 다 다를 겁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분야의 여러 사람들이 협업할 때 변형적 사고의 토대가 마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과학자이면서 건축가이기도 하고, 화가이기도 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다재다능한 르네상스 맨이라면 혼자서도 제각기 다른 여러 생각 도구를 다 동원해서 입체적이고 다채롭게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겠지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70~BC 495)는 어느 날 시장을 걷다 우연히 들은 대장장이의 망치 소리에서 음의 높낮이에 대한 비밀의 단서를 찾은 일화로 유명합니다.

 

물체의 크기, 길이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걸 들은 피타고라스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 서로 다른 종들을 매달고 실험을 하게 되죠. 크기가 클수록 낮은 음이, 작을수록 높은 음이 난다는 점뿐 아니라 종의 크기가 2배일 때 같은 음의 다른 옥타브 소리가 난다는 점, 나아가 듣기에 좋은, 조화로운 화음의 법칙까지 알아냅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비율을 통해 여러 악기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음악적 법칙을 천문학에까지 대입해 봤어요. 별과 별 사이의 거리, 행성의 움직임과 같은 하늘의 법칙에도 음악적 원리가 깃들어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거죠.

  

                                    

특히 시와 음악, 미술과 음악 사이의 상호 변환 가능성은 이미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에서 실현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는 바이올린 협주곡 협주곡 <사계>(Four Seasons, 1725)를 만들면서 한 장면의 풍경과도 같이 시상詩想을 떠올린 게 틀림 없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소네트Sonnet, 소네트라는 형식의 시로 <사계>에 붙여진 것 중 ‘봄’의 1악장을 보면,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흐르는 냇물과 산들바람, 천둥, 번개 등 봄 날씨와 자연을 묘사한 시의 구절 구절이 한 폭의 그림처럼 비발디의 음악과 절묘하게 일치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숭어> 등 슈베르트의 가곡들도 시에 곡을 붙인 것이 많지요.

 


화가 파울 클레가 바흐의 음악을 이미지화 한 것. (사진 출처: 『Spark of Genius』 영어판)


 

반대로, 음악을 이미지로 변형한 시도도 있어요.

 

스위스 태생, 독일 국적의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독일의 철학자이자 평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무척 아꼈다는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1920)라는 작품으로 유명하죠.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여러 예술 조류에 영향을 받은 클레는 당시 교육 기관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에서 강의를 하던 중 바로크 시대의 대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다성음악(多聲音樂, polyphony, 독립된 선율을 가지는 둘 이상의 성부로 이루어진 복잡한 음악)을 몇 장의 추상적 이미지로 변형하기도 했습니다.






변형적 사고의 가장 큰 혜택은 비발디나 클레의 예처럼 각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구분을 흐릿하게 만들어 자칫 하나에만 갇힐 수 있는 사고 방식을 열어준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도, 의식하지는 못했을 지 몰라도, 일상 생활에서 이런저런 변형적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을 ‘태정태세문단세…’로 첫 글자만 따서 외는 약어법, 익숙한 장소에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입혀 외는 연상법, 운율을 붙여 암송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기억법mnemonics도 일종의 변형적 사고가 적용된 예입니다.

 

언론 보도나 연구 보고서에 많이 쓰이는 통계 등 각종 수치 자료는 활자로만 제시됐을 때보다 더 쉽고, 친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표와 그래프, 인포그래픽 등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 재가공됩니다.

 

멜로디나 리듬 등 음악적 요소나 회화, 조각 등 미술 작품도 얼마든지 글이나 그림, 심지어 숫자 같은 형태로 변환될 수 있고 그 반대 방향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라디오나 팟캐스트 같이 ‘듣는’ 매체에도 다큐멘터리 장르가 있고 명작들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

 

보통 TV 등 영상물로 접하는 자연, 동물 다큐멘터리를 떠올려보면 ‘생동감 있는 시각적 요소가 없이 어떻게 다큐가 가능할까?’ 싶지만, 몇몇 작품들을 실제 들어 보면 시각 대신 청각을 극대화하는 등의 전략을 통해 얼마나 몰입도 높은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BBC, NRK 공동 제작 다큐멘터리 팟캐스트 <Death In Ince Valley> (이미지 출처: BBC, NRK)

예를 들어, BBC의 2018년 팟캐스트 다큐멘터리 <Death in Ice Valley>는 1970년대 노르웨이에서 발생해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한 여성의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를 추적해 나간 작품인데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같은 효과음, 미스테리 영화에 쓰일 법한 음악, 나래이터와 여러 현존 인물의 인터뷰를 통한 생생한 육성 목소리까지 음산한 분위기 속에 진실을 탐사해 나가는 묘한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죠.






때로 음악은 단지 듣는 것만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되고 요리는 꼭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 ‘듣고’, ‘만지고’ 그렇게 느끼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천체물리학자가 자신의 연구 자료를 음악으로 표현해 본다든지, 로봇공학자가 무용을 통해 기계의 움직임에 영감을 받는다든지, 항공엔지니어가 수영을 하던 중 유체 역학적 원리를 깨닫는다든지, 추상화 화가가 역사적 인물의 내면적 갈등을 그려 본다든지…

 

이렇게 뭔가를 원래와 다르게 변형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의 또 다른 특성과 용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변형의 방식이 독특할수록, 과감할수록 더 놀라운 통찰, 더 참신한 창조가 가능해지죠.

 

눈을 감고 촉각만으로, 후각만으로 뭔지 알아맞히는 놀이는 오감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상을 상상하게 하는 좋은 연습입니다.

 

시를 낭독하거나, 그걸 넘어서 간단히 멜로디를 붙여 불러 본다거나 연극, 음악 발표회에 참여하고, 영상물을 만들어 발표해 보는 것, 자신이 겪은 일이나 읽은 책의 내용을 신문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변형적 사고를 연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문제들은 단 하나의 방법으로, 단 하나의 정답만 찾는 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변형과 변형적 사고를 잘 하게 되면 어떤 사안을 볼 때 자기가 선 자리에서만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더 입체적으로, 종합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아이가 단 하나의 재료만 갖고, 같은 방식으로만 만들기보다 색다른 재료를 가져다가 휘고, 섞고, 쪼개고, 뒤섞고, 구부리고, 비틀고, 이어도 보고, 떼내 보기도 하고, 그렇게 변형하는 과정에서 대안을 찾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민 군에게 처음 보여 준 정열의 ‘플라멩코Flamenco’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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