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힘 #연결고리 찾기 #은유
뮤직 플레이어, 전화기, 인터넷 통신기기,
뮤직 플레이어, 전화기, 인터넷 통신기기,
뮤직 플레이어, 전화기… [환호성-박수 갈채]
이제 알아차리셨나요?
이것은 별도의 세 가지 기기가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An iPod, a phone and an internet communicator… An iPod, a phone…
Are you getting it? And these are not three separate devices - this is one device.
And we’re calling it iPhone!
- 스티브 잡스, 2007년 애플 ‘아이폰’ 프리젠테이션.
2007년 6월 29일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아이폰iPhone’의 탄생을 알리던 순간.
전 세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놓을,
스마트-모바일 혁명의 시작을
선언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훗날 잡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이미 세상에 있는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시켰을 뿐이라고 했죠.
어떻게 보면 얄미울 정도의 겸손이지만
그렇게 겸양의 미덕으로만 볼 일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연결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융·복합하고 ‘변주’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 것이었으니까요.
창의성은 앞서 살펴봤듯이 한마디로 말해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특성’, 또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창의성이 반드시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일 필요는 없어요.
잡스는 창의성을 그저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의 인생을
‘여러 점들dots의 연결’에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뇌과학자로 대중적으로도 인기 있는 카이스트의 정재승 박사가 <EBS 초대석>이라는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창의적인 뇌는 무엇이 다른가?’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뇌에서 창의성을 담당하는 특정 부분이 있는 건지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죽고 뇌를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특별할 게 없었다는…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 창의력이 발동되는 순간, 뇌의 어느 한 곳이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 여러 영역, 특히 평소에는 잘 연결 되지 않던 멀리 떨어진 부분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더라는 거에요.
정재승 박사의 추가적인 설명에 따르면 애초 우리 인간의 뇌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쪽으로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수십만 년 전 수렵, 채집으로 먹고 살던 그 옛날 원시 시대부터 우리 뇌는 어떤 즉각적인 위험을 감지하고, 민첩하게 대처해 어떻게든 살아남는 쪽에 더 맞춰져야 했겠죠.
‘예측 가능’한 상대 곁에서 함께하고 싶고 무리를 따라야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현재의 우리 뇌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 하면 뭐가 생각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해변, 갈매기, 고래 등 바다와 연관된 것을 떠올립니다. 나 혼자 ‘스컹크’ 하면 돌+아이 취급을 받는 거죠.
오래 전부터 생존에 유리하게 설계된 뇌가 지금까지도 ‘바다’ 가까이에 ‘해변’, ‘고래’와 같은 단어를 저장해 놓는 겁니다. 반면 ‘스컹크’나 ‘냉장고’ 같은 단어는 저 멀리 떨어트려 놓고요.
그런데 뇌과학자들이 볼 때 정작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는 건, 뇌 속에서도 평소 연결될 일이 없던 멀리 떨어진 것들을 연결하려고 시도할 때 나오는 것 같더라는 거죠.
물론 한 사람의 뇌 속에서,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서로 다른 역량, 서로 다른 재능, 성향,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구성원들로 하여금 팀을 이루고 협업하게 하는 거겠죠.
창의적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기보다 음악, 미술, 운동, 과학, 수학, 건축, 공예 등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레 자극을 받고 비범한 ‘연결의 계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부류의 사람만 만나면 늘 같은 생각만 하게 되니까요.
창의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다양한 재료가 계속해서 흘러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평소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읽거나, 하지 않던 일을 자처하고, 다른 분야의 사람과 만날 기회를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색다른 이야기를 들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그저 좋은 교양, 흥미로운 상식을 얻었다고 지나갈 게 아니라 내가 해결하고자 고민하고 있던 문제와 연결하고 접목했을 때 어떤 새로운 돌파구가 찾아질 수 있는지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 보는 습관을 가지면 더 좋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다양한 것들, 언뜻 관계 없어 보이는 것들을 일단 한 번 가볍게 연결해 보는 거에요.
오히려 관계가 멀어 보일수록 좋습니다. 보통은 비슷한 것들이 연상되기 마련이죠.
일부러 더 연관성이 없는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머리가 말랑말랑해 지고, 생각이 유연해 집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을 깨트려 ‘낯설게’, ‘불편하게’ 조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거리가 멀수록 연결의 효과는 커집니다. 예기치 못한 우연한 조합도 가능해 집니다.
함께 공존할 수 없을 듯한 것들, 상호 배타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잘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것들일수록 제대로 연결되면 시너지가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코로나19 검진 방법으로 세계가 격찬한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선별 진료소.
급증하는 검진 대상자에 비해 진료소는 턱없이 부족했던 문제를 패스트 푸드나 커피 전문점의 드라이브 스루 개념을 가져다 연결함으로써 풀어낸 창의적인 해법이었지요.
누군가 만들어 낸 참신한 아이디어는 사후적으로 보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을 처음으로 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정재승, 뇌과학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 구경을 간 날은 날이 잔뜩 흐리고 비까지 내린 터라 우산을 받쳐든 인파 때문에 가까이 붙어서 좋은 사진을 찍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민 군은 작은 몸으로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가 철창 맨 앞 줄에서 볼 수 있었다.
올려다 본 하늘, 태양 주위를 둘러싼 구름의 모양에서 가뭄으로 말라 비틀어져 여기저기 갈라진 땅을 떠올리고 연결시킨 민 군의 표현입니다.
이미 아는 지식으로부터 떠올린 비슷한 것에 기초해 다른 어떤 것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추analogy’나 문학 등 예술 활동의 원천이 되는 ‘은유metaphor’는 언뜻 관계 없어 보이는 것들의 ‘연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A는 B이다’의 형태를 띄는데요, 훌륭한 은유의 조건은 어떤 특정한 면에서 ‘닮았’으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낯선’ 것들의 연결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비슷한 것들을 연결하면 그리 좋은 은유가 못됩니다.
유추 역시 단순한 ‘닮음’과는 다릅니다. 낙하하는 사과를 보고서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둘 이상의 복잡한 현상들 사이에서 기능적 유사성과 같이 내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작가, 교육자이자 사회복지 운동가인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우리가 어렸을 때 위인전으로 많이 접한 인물 중 하나죠.
태어난 지 19개월,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하다 간신히 살아났지만 그 여파로 청각과 시각을 잃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켈러는 어떻게 세계를 이해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유추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촉감을 느낄 수 있었죠. 다른 사람이라면 시각, 청각으로 얻을 바깥 세계의 정보들을 그녀는 후각, 미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고 그 감각들 사이의 유사성을 찾아 연결하고, 연상하는 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했던 겁니다.
여기엔 가정 교사 애니 설리번Annie Sullivan 선생님의 도움이 컸죠.
그녀는 갈증을 달래줄 ‘물’이나 손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불’처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헬렌 켈러가 욕구, 공포 등에 대해 시각,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들을 통해 느낌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연상해서 표현하도록 끊임 없이 연습시켰습니다.
나중에는 남이 연주하는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그 진동을 통해 곡을 상상하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 하네요.
- 헬렌 켈러,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2008)에서 재인용
유추와 은유가 제약을 극복하는 데만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 예술적 활동, 평범한 일상에도 유추와 은유는 창의적인 생각 도구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은유가 될 수 있고, 유추 없이는 창조가 불가능하다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유추와 은유 능력을 키우려면 평소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서로 연결 지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사과를 두고 ‘이것은 사과다’라고 말하는 데만 그치기보다 그것이 때로는 ‘건강’이 되고, 때로는 ‘유혹’이 되는 것처럼 ‘OO은 OOO다’의 빈칸을 채울 뭔가 색다른 것들을 찾아 무한한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창의성 자체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오래 전부터 두 가지 사뭇 다른 접근이 있어 왔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창의성을 ‘전구’에 빗대 말합니다.
번개가 내리치는 폭풍우 속에서 연을 날리다가 불현듯 전기를 떠올린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의 예처럼 번쩍하고 갑자기 불이 들어오듯 순간적으로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거지요.
반면, 어떤 이는 창의성이 오히려 ‘씨앗’과 같은 거라고 해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꾸고, 결실로 맺어진 열매를 수확하듯 오랜 시간 배우고, 연습, 훈련한 끝에 얻을 수 있는 후천적 능력이라는 측면을 강조한 거지요.
‘타고난 천재성’을 강조하는 입장일수록 ‘씨앗’보다는 ‘전구’에 빗대어 창의성을 설명하기를 좋아하겠죠.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은유의 기술이 결코 배우고 익힌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타고난 능력이라고 했다죠?
노력만으로 대단한 시인이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타고난 천재성을 노력으로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해 버리고 말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노력해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