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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호 Jun 24. 2024

자유는 어떻게 실재하는가 2

헤겔의 자유의지

 저번 글을 통해서는 칸트의 자유의지를 탐독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그렇다면 헤겔은 자유가 어떻게 실재한다 논하는가에 대해 바라볼건데, 헤겔의 주된 칸트 비판은 바로 '주관적이성과 객관적이성 사이의 변증적 관계를 논외시'했다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헤겔에게 있어 추상적 개념들이 현전하기 위해서는 구체성과 특수성의 계기들로 포섭되어야 하는 동시에 보편성과 무한성의 계기 또한 잃으면 안돼요.

 자유는 자아가 자기 자신으로 들어가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순수히 생각하는 계기입니다. 즉, 의지가 아무 내용도 없는 순수한 무규정성의 장으로 들어가서 지속적으로 나에 대해 반성적 사유를 하는 것이 자유라는 거에요.(『법철학』§5) 우리가 현실을 살아갈 때 우리를 규정하는 수많은 억압적 테제들, 사회적 규제들을 뿌리치고 '나'에 대해 사유할 수는 없죠. 헤겔에게 있어서도 자유란 '무언가로 부터의' 자유에요. 그것들에서 빠져나와 '순수한 나'를 사유하는 것이 바로 자유의 제1성분임을 지목하고 이 과정을 '무한으로의 추상'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자유롭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어요. 왜냐면 사회적 소여태들과 억압기제들을 부정하고 순수한 나로 향하는 무한으로의 추상 과정의 기본적 방법론은 바로 '부정'입니다. 즉, 현실적 관계들 속에 현전하는 나를 부정하고 순수한 나로 나를 정립한 상태는 그저 '부정'만을 일삼는 자기파괴적인 주체라고 규정해요. 예컨대 자유롭고싶어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부정하고, 학생인 나를 부정하고, 남성인 나를 부정만 하다 보면 나 자체가 소거되어 버린다는 원리죠.


 그렇기에 이 순수한 자아, 즉 보편적 자아는 다시 특수성으로 현실세계에 현전해야해요. 자아는 다시 "뮤규정성에서 구별이나 한정이나 특정한 내용과 대상의 정립으로 이행(§6)" 하는데 이 과정을 '특수로의 구체화'라고 부릅니다. 아무런 규정이 없는 보편적이고 순수한 자아를 다시 내가 규정하여 나를 정립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비규정에서 다시 규정으로 나아가는거죠.

 여기서 헤겔은 '의지'의 문제를 논해요. 의지라는 것은 그것만이 존재할 때 실현되지 않고 항상 '무언가'가 함께 존재해야 된다는 거에요. '~을 의지해'에서 '~을' 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나의 의지가 실현되는 것 처럼 의지의 실현에 있어서 나를 다시 재규정함으로써 의지의 현전을 논하는거죠.

 이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마주하는 양태입니다. 예컨대 나는 나를 철학전공자라고 규정하고, 남성이라 규정하고, 누군가의 아들이라 규정하고, 누군가의 친구이자 애인 이라고 규정해요. 이렇게 자아는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 특정한 하나를 지목하여 우리를 규정하는데, 여기서 또 '의지'만이 존재한다면 이는 자유를 실현시킬 수 없는, 부자유의 증거로 전락합니다.

 예컨대 어떠한 이론을 공부하다보면, 또는 어떤 전공을 공부하다보면 그 특수 의지에 빠져 그것과 보편적 나 자체를 동일시하려는 독단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오직 내가 규정한 그것만이 내 전부인 것 처럼 행위하고 사유하고 말하는 것은 특수를 통해 자유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특수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억압하고 제한하기에 부자유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는거에요.


 그렇기에 헤겔은 이 두 가지의 과정(무한으로의 추상, 특수로의 구체화)이 결코 각각이 절대화되면 안된다 생각하고 이 둘이 유기적으로 합쳐져서 '개별자'라는 나의 모습을 잉태해야 된다고 논합니다.("의지는 이상 두 요소의 통일체로-즉 특수성이 자체 내로 반성, 복귀하고 이럼으로써 보편성으로 되돌려진 것으로-다름 아닌 개별성이다." §7) 그리고 이 과정의 끝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자기규정'이라 불리는 변증적 과정이자 결과물인데, '나'라는 무한한 보편적 일자인 자유의 주체가 '자기규정' 즉 규정된 현전으로써 자유가 가능하도록 이를 현실태에 내보인다는거에요.

 다시 말해 '보편적 나'와 '특수적 나'가 서로서로 반성하며 규정하고 상호의존적으로 관계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행해지냐면 내가 규정한 자아(특수한 자아)에 무관심한 태도로 다시 한번 그것에 대해 성찰과 비판을 할 계기를 마련하는 무한자적 운동으로 가능합니다.

 예컨대, 보편적 자아가 나를 철학전공자라고 규정했어요. 그러면 개별자인 나는 '철학전공자가 보편적 나를 대변하기에 적절한가?' '만약 아니라면 더 좋은 철학전공자가 되는 방법은 뭘까?' '이것 말고도 다르게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규정된 나를 부정하고 비판하고 성찰하고 회의한다는거에요. 이러한 태도로 나는 특정한 하나의 '특수성'의 독단에 빠지지 않고 모든 언표들이 개방된 채 특수한 자기규정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특수한 자기규정을 담지하여 보편적 일자로 나아가는거에요.


 보통 헤겔을 논할 때, 혹은 유기체론을 논할 때 '보편이 특수를 억압하고 보편이 특수보다 우위에 선다'라고 고 말하지만 헤겔은 특수가 보편을 억압하고 보편을 독단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거에요. 동시에 특수성에 입각한 나는 그 속에서 내가 규정한 특수성이 올바른 특수성인지 끊임없이 사유하고 반성하기에 '무한'의 운동인 것이고, 또한 동시에 이를 통해 보편적 자아(순수한 자아)가 지속적으로 세상에 드러나지고 보여짐에 따라 자유는 실존하고 현전하는 개념으로 자리하는 것 입니다.

 자유는 객관화되고 실현되어야 해요. 즉, 보편적인 것은 특수성을 지닌 채 현전해야 합니다. 헤겔은 자유의 발전 단계를 기술해가며 이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그 단계는 이러합니다. "스토아적 자유" 이는 현실의 관계와 제도를 뿌리치고 온전히 '나'로 들어가서 사유 속에서의 나만을 긍정해요. 그렇기에 이는 실현되지 못한 자유이기에 허구적 구안물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로는 이보다 조금 더 나은 "회의주의적 자유"를 논해요. 이 단계에서는 사회와 관계하며 적극적으로 로자유가 실현되긴 하지만 회의하는 자기 자신만 빼고 모두 비판하는 부정적 태도이기에 올바른 자유 실현이 불가능하다 논하죠. 마지막으로는 또 이보다 조금 더 나은 "불행한 의식"단계에요. 이는 기독교적 의식으로 현실속에서 자유를 깨닫게 되지만 현실을 총괄적으로 부정하고 금욕하며 이 또한 '관계 속의 자유'를 실현시키기에는 부족함을 논합니다.

 헤겔의 자유의지를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자유는 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일 것 같아요. 칸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실패했다는 것이 헤겔의 진단이죠. 칸트의 경우 '보편적 나 → 특수적 나'만을 무한히 반복하고 그렇기에 이 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개별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자기규정을 통한 변증적 자유의지는 끝나지 않고 무한히 이뤄져요.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자 동시에 결과이며 끊임없이 현실과 관계하는 '나'가 보편적이고 순수한 '나'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거기에 여러 양태들의 확장을 통해 다가가는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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