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던 공무원이 됐다
먼 나라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고 있던 나는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주인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드리곤 했다. 할머니는 항상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셨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말벗이 되어드리다 함께 뉴스를 시청했다.
매일마다 증가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주마다 바뀌는 새로운 규제로 매일 같이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거나 뉴스 앞에 앉아 동태를 살피곤 했다. 뉴스를 시청하던 중 중동지역 레바논 국가의 베이루트라는 항구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는 테러도 아니고 부두 창고에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이 폭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전직 선박 기관사였던 나는 중국을 종종 드나들곤 했던 선박에 승선 당시 2015년에 발생한 중국 텐진항의 폭발사건이 떠오르면서 만약 계속해서 배를 탔다면 지금 저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폭발에 휩쓸린 사상자 중에 한 명이 내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해기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면 채용에서 가산점을 받거나 특별 경력채용을 진행하는 공무원 직렬이 몇 있다. 그중 나는 위 사건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자식이자 어느 한 가정의 가장을 위해 내가 배운 기술이 사용될 수 있다면 평생 열정적으로, 타성에 젖지 않으며 살 수 있을 것만 같아 소방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러 일 년을 채 채우지도 않은 채 소방공무원의 꿈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복학 후 학업과 공시를 병행하며 소방공무원 최종 합격을 이뤘다.
사실 공무원은 내가 기피하던 직종 중에 하나였다. 쥐꼬리만 한 월급과 안정된 고용으로 잘리지 않으니 대충 일하며 타성에 젖어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집단. 내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훈련하며 갈고닦아 내 것으로 만든 기술로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살아가며 또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 그 이상 하나만 가지고 다른 공무원이랑 다를 것이라 생각하며 시험을 준비하며, 호기롭게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때까진 몰랐다. 이 일로 인해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길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