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없고, 똥줄만 타는 인생살이에 끌려다니던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고는 하지만 막상 그것을 겪을 땐,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을 걷는 것 같아 매일 하루가 끔찍이도 절망적인 그런 시절 말이다.
그때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끊었더랬다. 아마도 수중에 갖은 돈은 오십만 원이 채 안됐던 것 같기도 하고 충동적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난 정신이 나갔던 게 분명하다.나름은 인생의 해답을 찾겠다는 심산이었겠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를 매몰차게 학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구태여 새벽 4시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끊을 리 없었겠지.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엄마 말을 빌려하자면) 겁대가리 없이 야심한 밤에 바르셀로나 시내를 방황할 수는 없었기에 차선의 선택으로 공항 노숙을 결정했다.
심사숙고 끝에 나름 안전해 보이는 구석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어 놓고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꿈인지 싶은 순간 멀쩡해 보이는 사내 하나가 내 가방을 노리고 앞을 알짱거리는 걸 봤었다.
'오기만 해 봐라 물어뜯어 버릴 거야.' 하는 눈빛으로 객기를 부리며 졸다 내 옆에 앉은 아이가 "이 여자 죽은 거 아니냐"며 날 흔들어 깨워서야 겨우 호스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작해야 5천 원인데 그걸아껴보겠다고 혼숙 방을 예약해놓고 일말의 도덕심도 없이 상의 탈의를 거침없이 하는 몰타에서 온 녀석들이 민망해 식당으로피해왔다. 얼떨결에 식빵 다섯 개를 입속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못내 아쉬워 식빵 두 개를 주머니에 더 넣고는 버스비를 아껴보겠다고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1월의 스페인을 온몸으로 겪었던 나는 몹시도 궁상맞았다.
그게 젊음의 패기라고 생각했는지 무식해서 용감했던 건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찌질함이 극에 달아 나 조차도 나 자신이 싫어질 때.
그때 눈 앞에 나타난 게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쇠창살에 둘러 쌓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던 빛나던 그것.
만지고 싶지만 닿을 수 없고, 빛났지만 가질 수 없었던 마치 내 미래 같은 그것 말이다.
결국 돈이 없어 성당 내부엔 들어가지 못해 성당 주변만여러바퀴를 돌고 그것도 못내 아쉬워 길 건너 공원 벤치에 앉아 호스텔에서 몰래 가져온 식빵 두 개를 씹으며 성당을 올려다봤다. 동경했고, 열망했다.
그래서 만약에 말이야. 다시 바르셀로나에 오게 된다면 그땐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하고 오고 말 꺼야. 그 사람과 두 손 꼭 잡고 성당에 들어갈 거야.다짐했었다.
모든 이십 대가 앓고 있는 열병을 나도 앓을 그쯤.
그때 그 시절 그렇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왜!!!!!!
그런 역사적인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된 이 순간에.
딸내미 너는 왜 눈물 바람을 하고 있는 것이냐!!!!
딸내미의 '눈물바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아침 일찍 서둘러 성당에 도착해 미리 준비해 간 예약 확인증을 직원에게 보여준 뒤 아이와 함께 성당을 둘러봤다. 사람이 많아 몸이 여기저기로 치이는 와중이었지만 실제 담쟁이덩굴과 똑 닮은 조각과 그 사이에 숨어있는 동물들을 찾는 건 흥미롭고 즐거웠다. 미리 읽어놓은 학습 만화와 성당의 파사드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시작은 순탄했다. 그러나 사건은 성당 내부로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성당 내부는 깊은 숲 속 같았다. 엇갈린 듯 겹쳐있는 기둥 때문에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서로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였고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촘촘한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같았다. 형체를 갖고 있는 생명처럼 살아 움직이던 빛이 어느 순간 아름다움이 폭발하듯 사방에 내려앉았다.
꿈같은 순간이었다. 성당 안에 있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쪽 가슴에 손을 얻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벅차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탄식을 쏟아 내기도,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건 나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숲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더니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빛이 닿는 곳에 발을 들이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오가며 폴짝거리는 아이 뒤로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 시선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예상치 못한 행동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민망했고 난감했다.
아이의 행동을 멈춰야 했다.
"그만! 여기선 뛰는 거 아니야. 조용히 사뿐사뿐 다녀야지!"
"싫어! 엄마는 왜 맨날 엄마 마음대로만 해?"
"싫다는 말이 왜 나와? 성당에서는 원래 뛰는 거 아니잖아."
그때였다. 눈을 부릅뜨고 손녀딸에게 레이저를 쏘는 딸이 못마땅했는지, 울기 직전의 손녀딸이 안쓰러웠는지 부모님이 아이를 대변해 한 마디씩 했다.
"에그....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왔다 갔다만 하는 건데 좀 봐주지. 애 혼을 내고 그러냐."
"그래,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좋으면 그러겠어. 그냥 한 번 봐줘라~"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성에 힘을 얻은 걸까? 엄마의 혼꾸녕에 눈물을 꾹꾹 참고 있던 아이가 억울하다는 듯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 손녀딸의 편을 들어준 부모님도 이해가 안 됐지만 용케도 그걸 알고 분풀이하듯 울어 대는 아이에게도 화가 났다.
내가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니었는데.....
사랑하는 너와 함께 두 손 꼭 잡고 감동만 하고 싶었는데.
' 내가 이러려고 널 여기 데려온 게 아니었는데.....'
인생사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했던가. 울음을 그칠 생각이 눈곱 만치도 없는 아이 때문에 난 결국 광년이가 되고 말았다.
" 어느 누가 성당 안에서 지 기분 좋다고 뛰긴 뛰어! 스페인까지 와서 한국 망신시킬 일 있어? 엄마 아빠도 그래. 손녀딸이 고집 피우면 안 되는 거라고 말을 해줘야지 애 버릇 나빠지게 역성을 들면 어떻게 해. 그럼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우기기만 한다고."
"그리고 너! 이노무 기지배. 뭘 잘했다고 울어. 여기가 놀이터야? 운동장이야? 왜 돌아다녀 왜! 그리고 잘못했으면 미안합니다. 안 그럴게요 하면 끝날 것을 뭘 억울하다고 울어? 울긴?"
부모님은 혼이 난 게 손녀딸이 아니라 당신들인 듯 내게 눈을 흘기며 서운해했다. (매정한 년이라고 욕도 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 기분 좋아 팔짝이던 아이를 가우디 성당보다 더 흐뭇하게 보셨던 부모님이셨다. 그런 손녀딸이 갑자기 눈물 바람에 훌쩍이고 있으니. 이유가 어찌 되었든 할머니 할아버지 입장에선 속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안 되는 걸 된다고 할 수 없단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중엔 외국인에게 커피를 쏟고는 외국어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흔한 '쏘리' 조차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관광지에서 소리 지르는 아이를 방관하는 사람도 있고,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 시설을 내 개인 공간인 마냥 사용해 갈등을 빚는 사람이 있다.
'뭘.... 여기까지 왔는데, 그 정도는 괜찮겠지.'
여행 왔다는 이유로 기분에 취해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관대해지고 모든 행동에 너그러워지는 사람.
내 아이를 그런 철부지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의미 깊은 장소라고 해도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갈 수는 없었던 거다. 나도 아쉽다. 하지만 어쩌랴.
다행히 아이는 할아버지의 위로 아래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고 우린 극적으로 화해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난 내 젊은 날의 추억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어졌지만괜찮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이곳은 더 이상 나의 찌질한 이십 대를 기억하는 곳이 아닌 한바탕 눈물 바람을 일으킨 내 아이의 훈육 장소로 기억될 것이니 그걸로 되었다. 충분히 되었다.
추억은 또다른 추억을 만들고 그렇게 쌓인 추억은 살아갈 이유를, 또다시 이곳에 오게될 이유를 만들어 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