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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트 Oct 08. 2021

꿈과도전

비상구가 보이다

다시 시작하면 돼

이민의 탈을 쓴 유학이든, 유학을 가장한 이민 생활이든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틈이 날 때마다 계속해서 학교 정보를 수집하고 카페의 다른 이민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수 배우며 캐나다에서 살아가야 할 연습을 시작해본다. 한국과 달리 학기 시작이 9월이라 2006년 가을 입학을 목표로 한다면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영미가 있는 에드먼턴에 먼저 가서 LINC(Language Instruction for Newcomers to Canada)를 듣고 토론토로 옮기기로 한다. 머릿속으로는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글로 보는 정보인지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꿈과 도전은 이제 시작되었고 저쪽에 보이는 비상구 문만 열면 된다 믿고 있다.


illustrated by 반트 ( blue rose* )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는데 두 달째 월급이 안 나온다.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는데 사장의 태도는 참 정 떨어지게 하신다. 1년을 넘게 한솥밥 먹고 일한 사람한테 이러시면 안 되지요. 가만히 있으면 바보 취급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할 수가 없다 모지게 마음먹어본다. 경란 씨가 함께 하자 한다. 당연히 지급해야 할 임금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다들 꺼리고 힘들어하는 체불임금 신고를 하고 가압류까지 하는 과정은 받아야 할 임금이 무슨 부채 받듯 해야 하니 감정 소모가 크다. 가압류 편지를 받은 회사는 다소 놀랐던 모양이다. 다급하게 과장이 이메일을 보내왔고 월급을 보낼 테니 가압류를 풀어달라 하신다. 이렇게 줄 거면서 왜 진즉에 하지 않았냐 싶으니 더 화가 난다. 독하게 한 번 더 따지고, 보기 딱 좋게 표로 만들어 이자에, 수수료까지 요구한다. (독한 년이 걸렸다 싶었을지도...) 적어도 사업을 하시고 싶다면, 다음부터 직원들 월급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해주고 싶었고, 예전의 경험에 의하면 좋은 직원이면 더 나쁘게 대하는 사장들이라 같이 나쁜(?) 직원이 되려 한 것이다. 압류 딱지를 붙이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겨우 월급 몇 푼이라 5분도 안돼 다 붙였다 하신다. 복사기 1대, 컴퓨터 몇 대면 끝났을지 모른다. 두 사람 월급 모아도 별거 없다. 허무한 마음도 잠시... 통장에는 2개월 월급, 미지급 기간 동안 이자, 그리고 소송 수수료가 요구대로 입금된다. 한국은 직장에 쏟아붓는 정서가 너무 크다 보니 당당히 받아내었음에도 마음 한편은 씁쓸하다.


    가기 전까지 무엇을 하면 되는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막상 눈앞에 실체가 드러나니 막막함도 기대감도 동시에 들고,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우선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학교에 대한 정보도 더 많이 조사해야 한다. 8개월의 토론토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를 잘해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시험을 치르지 않고 이민이 되었지만, 공부와 실생활 영어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삼육 어학원 등록부터 한다. 역시나 아직까지는 주입식 교육이 좀 더 부지런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새벽 회화반도 듣고 유명한 '50 English' 강의도 듣는다. 몰아치기를 하지만 실력이 쑥쑥 느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지난번 토론토의 짧은 연수는 환경적 느낌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경험임에 틀림없다. 멀고도 먼 여정이니만큼 영어정복을 위해 마음을 다부지게 다져본다. 한참이 지난 이후에 영어란 녀석은 결코 녹록지 않고 생존 영어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실 현재도 게으르다 못해 나이 탓으로 변명한다. TV에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5년도 안 살았는데 완벽하게 구사하는 상황을 보면 '한글'의 위대함을 새삼 또 느낀다. BTS부터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 게임까지 세계가 난리인데 그냥 한국어를 세계 공용어로 해주시면 안 되나요?


    20대에는 돈이 좀 없어도 하고자 하는데 뜻이 있으니 열정 가득한 마음이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도 한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현실에 좀 더 눈이 뜨고 돈이란 녀석이 얼마나 불안감을 감소시켜주는지도 알게 된다. 캐나다에 가서 꿈을 이루려면 언어와 돈의 능력치는 높을수록 좋다. 가지고 있는 능력 수치는 참으로 암담하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눈 부릅뜨고 싸워왔으니, 이 또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단짝 쑤기와 오피스 IN 오피스 형태의 책상 임대로 프리랜서 일을 함께 시작한다. 영주권 취소가 되지 않으려면 신체검사를 받은 날짜로부터 1년 안에 랜딩을 해야 하니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하여 가기 전에 조카를 계속 보고 싶다는 핑계 아닌 핑곗거리를 만들어, 엄마와 함께 염치 불고하고 동생네 집에 거주하기로 한다. (제부는 천사야~ 단 한 번도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어! 제부~ 쵝오! 너무너무 감사해요. 항상~) 장모, 처형까지 생활하려면 참으로 불편했을 텐데 하며, 한쪽 마음은 고맙고 미안하지만, 짧게나마 조카에게 좋은 이모 노릇하고 싶고, 다음에 은혜를 갚으면 되지 싶어 두꺼운 낯짝을 하고는 지내본다. 이러저러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소위 정착자금이란 걸 모아 본다. 물론 정착하기엔 아주 부족한 금액이지만 짧은 기간 밤낮으로 일하면서, 당장은 굶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금을 마련한다.


    어느덧 계획한 입국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엔 비자 문제도 없이 삶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것이라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가 가득 차있는 것도 사실이다. 떠나기 전 6개월을 함께 했다. 엄마랑 조카(당시 3살)랑 보낸 그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추억들로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조카랑은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있듯 끈끈해서 너무 감사하고 좋다. 어찌 되었건, 베이비시터를 엄마랑 함께 한셈이니 동생과 제부에게 미안함은 조금 덜었다 위로도 해본다. 이민가방에 별거별거 다 싸 넣고는 우르르 온 식구가 공항을 향한다. 패킹 리스트까지 기록한 꼼꼼함이 현장에서 어그러진다. 수화물당 32kg 기준이 그새 바뀐 것이다. 결국 급하게 박스 하나를 구입해서 짐을 나눠 넣고 나니 정신이 혼미하다. 여유 있게 식구들과 커피 한잔하면서 배웅 모드를 즐겨보려 했건만 시간이 촉박하여 아쉬운 상황이 되고 만다. 웃으면서 잘 가라, 잘 있어라 인사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쁜 이모~"(이렇게 부르게 조기교육을 시킨 철없는 이모)하고 조카가 '이모 어디가' 하는 듯 부르는데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아~ 어쩌지... 눈물이 터져 나오니 주체가 안되고 엄마도, 동생도, 쑤기까지 울고 난리다. 그들을 뒤로하고 게이트를 들어가지만 비행 내내 담요를 뒤집어쓰고 울고 다. 이렇듯 계획을 세워도 실제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펼쳐지니 사뭇 더 기대가 된다 싶다. 서른 살 후반부는 어떨지~  자! 가보자! 가보면 알겠지! 




* 푸른 장미 (Blue Rose)의 꽃말은 '기적, 도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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