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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트 Oct 09. 2021

에드먼턴

추운데 따뜻한 도시

눈이 펑펑 내려앉은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밴쿠버에 도착해 짐을 찾고 에드먼턴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대기 중에 있다.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관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우리와 함께 온 Ted(테드)는 드디어 캐나다에 돌아왔다며 여행 후 집으로 가는 길을 만끽하신다. 그는 교회에서 한국 학생들과 인연이 깊어 새 자동차를 바꾸려고 모은 돈을 한국 여행 한 달을 위해 기꺼이 지불했다고 하신다. 한 시간여를 더 비행하여 도착한 에드먼턴은 이미 날이 저물었고 11월 초인데 벌써 눈이 내려 가득 쌓여있다. 공학 픽업을 와주신 테드의 지인이 누구셨는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서툰 영어로 땡큐로 답한 뒤 영미가 지내는 테드 집에 입성한다. 영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잠시지만 테드 집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고 영하 35도는 어떤 느낌인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illustrated by 반트 ( pink carnation* )

    Alberta(앨버타) 주에서는 새로운 이민자들을 위한 정착 혜택이 크다는 얘기는 카페뿐만 아니라 영미에게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토론토로 가기 전에 그녀랑 시간도 보내고 하면 좋겠다 판단하여 대충 6~8개월 정도를 테드네 머물면서 영어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테드에게 요리를 아주 잘하는 친구가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허락을 받아내다 보니 평상시 겨우 라면 끓이는 수준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초기 정착에 경제적, 정서적으로 큰 도움을 준 테드에게 최선을 다해 태어나 처음으로 만두도 만들고 동그랑땡도 만들기까지 하는 능력치를 올리고 만다. 캐나다 보통의 주택으로 지하,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으며 항상 테드가 TV 시청을 하는 썬룸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그곳에서 바라다보는 뒷마당이 아담하고 이쁘기 그지없다. 또한 울타리 없는 앞마당은 옆집, 그 옆집에 옆집도 비슷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겨울 내내 하루 종일 눈이 내리는 날도 허다한 이 도시는 추워도 너무 춥다. 토론토랑 비교해도 훨씬 더 춥다는 것이 결론이다.


    LINC (Language Instruction for Newcomers to Canada) 프로그램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시내에 위치한 지정된 센터에서 레벨 테스트를 봐야 하는데 영미가 미리 신청해 준 덕분에 훨씬 수월하다. 아직까지도 낮은 레벨의 수준이지만, 그 덕분(?)에 좋은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추억 또한 만들다 보니 추워도 따뜻한 기억이 덧씌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Roger(로저, 콜롬비아), Halina(할리나, 베트남), Rana(라나, 레바논), Hilda(힐다, 쿠바) 외 이란, 소말리아, 루마니아, 콩고,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 먼 곳까지 이민을 와서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영어를 배우러 온 학교는 시작점인 것이다. 토론토에서 비싼 학비를 주고 배웠던 ESL 수준 못지않은 고퀄리티 수업에 재미까지 덤이며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큰 걱정 없이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수업의 수준은 어렵지 않아서 과제하고 따라갈 수 있을만하고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굉장히 친절하게 또 편하게 진행하시는 것이 대부분의 나이 든 이민자들을 위한 고려라고 생각된다.


    오전 8시 30분 즈음 시작된 수업은 점심을 먹고 나서 2시 정도에 끝나간다. 대부분 결혼을 해 아이들이 있는 어른 학생들이라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고 몇몇은 끝나고 커피타임 정도의 시간을 내어 짧은 영어로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너무 늦지 않게 귀가를 해야 테드가 걱정도 안 하고 지루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여 낮은 울타리 대문을 열다 보면 썬룸에서 담요를 덮고 거의 누운 자세로 TV를 보고 계시는데 이는 지내는 동안 90% 이상 보던 귀가 때 테드의 모습이다. 딸내미가 온 것처럼 손을 흔들어 주시기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지정석에서 주무시기도 한다. KFC 마스코트 할아버지와 매우 닮은 테드는 저녁 먹기 전 오늘 무엇을 공부했느냐, 과제는 어떤 것이냐 등 아빠가 초등학생 딸에게 물어보듯 하신다. 이것 또한 영어를 늘리는 자투리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테드는 학교 교장선생님을 오랫동안 하셨기에 그의 직업병이기도 하다. 처음 한국에서 만났을 때는 그냥 미소 외엔 리액션해드릴 게 없었다. 알아듣지를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늘어가는 뻔뻔한 영어도 느껴지긴 하지만 영어란 녀석은 정말 감당해내기가 힘든 아이다.


    몇 년 전 갔었던 토론토의 기억이 회색 같다면 훨씬 추운 에드먼턴은 하늘색 같다. 1년의 절반은 눈이 덮여 있는 도시이고 여름은 겨우 3개월 정도 아주 반짝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짧은 날들을 사람들은 짧고 굵게 여름 즐기기를 한다. 물론 외곽으로 트래킹, 캠핑등을 다양하게 하긴 하지만 해가 길고 긴 여름은 누가누가 속살을 보여주나 내기라도 하듯 패션에 거리낌이 없다. 실제 온도는 한국의 초가을 정도임에도 분명 여름은 여름이다. 11월에 도착하여 6월에 토론토로 다시 가기까지 약 8개월을 머물면서 완전한 여름을 겪지는 못했으나 겨울은 확실히 알고 떠나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루 종일 눈이 내려 집 밖을 나가기가 힘들고 집 앞 눈쓸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으며 지하에 있는 와이파이 모뎀은 2층의 방까지 닿는데 너무 어려워 한국 포털 사이트의 맨 위 로고 절반이 보이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리다 보니, 중도 포기하고 잘 보지 않게 되어 한국어를 접하는 경우가 점점 사라진다. (영미도 영어로 대화하길 원하지만 수준이 한참 떨어져 말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영어가 더 늘게 된 건 부정할 수가 없다.


   분명 추운데 따뜻한 이유는 역시나 사람들이다. 우선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신 테드는 가끔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지만 선뜻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지금도 전화 통화할 때마다 '에드먼턴 언제 올 거냐? 10월에 내 생일 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와야 하지 않겠니?' 라며 독립한 딸에게 말씀하듯 하신다. 그다음으로는, 서른다섯이 되어 오래간만에 연애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연하 외국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미 6월엔 떠날 계획을 하고 있었기에 이 시나리오는 전혀 없었는데 아무도 앞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모처럼 떨리는 설렘을 즐겨보기로 한다. 초반이니 언어 문제는 전혀 없다 착각할 정도로 신나고 좋다. 어린 녀석이 착하고 사랑해주는구나 느껴지니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곧 떠나야 할 아련함으로 더 애(愛)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토론토로 떠나는 전날 서로 펑펑 우는 씬은 아이고야 무슨 20대 청춘인 줄 알겠다. (녀석은 20대였구나!) 아무튼 어쩔 수 없는 롱디까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으로 캐나다에서 연애를 해본 것도 경험 중에 하나다. 또한, 가장 친하게 지낸 할리나는 겨우 22살의 어린 신부다. 남편이 베트남 방문 중에 알게 되어 호주 유학을 포기하고 캐나다까지 시집온 것이다. 클래스에서 가장 활달하고 진취적인 그녀는 처음 친해진 친구고 아직까지도 소식을 주고받는 유일한 친구기도 하다. 나중에 비즈니스 우먼으로 커리어 빵빵한 그녀가 될 줄은 이때는 몰랐다. 테드, 그 녀석, 할리나가 에드먼턴의 기억을 아주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어 추워도 따뜻하다.




* 분홍 카네이션 (Pink Carnation)의 꽃말은 '잊지 않을게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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