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트 Oct 11. 2021

고로렌고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보고 싶었어
에드먼턴

익숙했던 썬룸의 그 자리! Ted가 일어나는 것이 보이고 현관에서 "Welcome back, Lauren!"이라고 반겨주신다. 집으로 돌아온 딸을 위로하듯 꼭 안아주시는데 눈물 나게 좋다. 이미 2층 방에는 침대와 서랍장, 책장과 테이블을 셋업 해주셔서 편하게 짐을 풀기 시작한다. 정말 멀리 여행 갔다가 집에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1층에서 테드가 "Supper's ready!" 하시니 예전 생각이 절로 나고 오케이를 외치며 후다닥 내려가 잘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서 못다 한 토론토의 썰을 풀고 또 푼다. 유능한(!) 아티스트를 받아주지 않은 몹쓸 놈의 그 학교를 함께 씹으면서 걱정 말라고 "Go! Lauren Go!"를 외치며 응원해주시니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illustrated by 반트 ( rose mose* )

   학교 준비를 위해서 가지고 있던 돈은 대부분이 쓰고 얼마 남지 않은 잔고를 걱정하며 일자리 찾기에 나선다. 친구가 일하고 있는 Edmonton Remand Centre(ERC)의 Kitchen과 Canteen(군대 매점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 포지션을 소개해 주겠다 하니 너무 고마운 일이다. 일단은 인터뷰를 기다리면서 대기 중인데 2주가 지나도록 답이 없으니 조금은 답답하다. 그렇다고 계속 물어보는 건 미안한 일이라 시내 나가는 길에 Metro 신문에 테판야끼 일식당의 'We are hiring!' 구인 광고를 보고 바로 찾아가 본다. 1층엔 일반 초밥을, 2, 3층은 예약제로 8인용 ㄷ자 철판 테이블에서 셰프의 요리를 직관하는 재미로 손님들에게 꽤나 알려진 힙한 식당이다. (오래전 한국에서 한때 유행한 철판볶음밥 식당에서 본적 있다.) 친절해 보이는 일본인 여자 사장님은 항시 구인을 하고 있고, 최대 일주일에 4일 스케줄을 줄 수 있다며 우선 트레이닝을 받으라고 하신다. 의외로 수월하게 일을 구하니 제대로 한 것이 맞는지 잠시 의아했다. 앨버타주에는 늘 일자리가 넘친다는 이야기가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영어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조금은 나아졌고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에 부딪히니 되긴 한다.


   한편, 며칠 뒤 매니저가 인터뷰하자고 한다며 친구의 연락이 온다. ERC는 시내에 위치한 작은 교도소로 죄수 수용은 약 400여 명 정도이고, 바로 옆에 위치한 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기 전이나, 혹은 임시로 머물게 되는 죄수들을 수용하는 곳이라고 알려준다. 인도에서 온 매니저(유일하게 좋은 기억의 인도인)가 일하게 될 곳은 죄수들의 식사를 요리, 준비하는 지하 식당과 맨 위층에 있는 캔틴두 장소에서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는 포지션이라 한다. 매니저에게 오전 학교 수업이 끝나는 대로 출근하는 일정을 받고 인터뷰를 마친다. 주중 4시 전까지 캔틴에서 죄수들이 작성한 '간식 외 물품 신청서'를 취합하여 영치금이 있는 죄수들의 신청서를 골라 계산하고 영수증을 붙여 준비해두는 작업을 끝내고 나면, 식당으로 내려와 컨베이어 라인에 각자 줄을 서서 요리가 끝난 음식들을 담아내는 작업(식품 공장처럼 계속 움직이는 컨베이어 위에 식판이 나란히 움직이면, 그 위에 각 요리의 담당자가 정해진 칸에 음식을 담아내는 일)이다. 일 시작 후 초반에는 겨우 커피와 포크, 나이프를 담는 일인데도 컨베이어 위에서 빨리 떠나버리는 식판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마지막 라인의 Hanna(한나/레바논)가 "로렌, 얄라 얄라"하며 아라빅어로 빨리하라고 소리 지르지만 단순 작업은 곧 몸이 익숙해지면서 적응해간다. 소위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 힘은 들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근무지 밖을 나가면 하나도 없이 사라진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영어는 꾸준히 해야 하는 상황이라 토론토에서와 같은 교과 과정 코스를 등록한다. 시내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듣는 코스라 위치상 학교-교도소-(학교)-일식당의 동선은 완벽하다. 또한 영어, 수학, 컴퓨터 등 3과목을 풀타임 수업으로 들으면 앨버타 주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오니 하지 않으면 바보인 거다. 적지 않은 돈, 한달에 약 $700 이기에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아침 8시 수업이니 집에서 늦어도 7시 20분에는 나와야 지각을 면한다. 다만 쓰리잡이나 다름없어 1교시는 매일 졸기 일수다. 그것도 영어 문학에 대한 수업인 날은 하품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그나마 한국 수학 수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수학이지만, 영어 같은 수학을 너무 재밌게 하다 보니, 왜 한국 아이들이 조기유학을 하면 뛰어난 수학 점수를 받는지 알게 될 정도로 수학 성적은 클래스 탑이다. 고1, 2 과정(한국의 중1, 2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을 들으면서 선생님은 각 문제의 답 풀이를 학생들 이름을 부르면서 시키는데 마지막까지 못 푼다 싶으면 여지없이 "로렌"을 부르시니 잠을 잘 수가 없다. 다행히 한 번도 엉뚱한 대답을 하지 않아 선생님의 미소에는 수학을 잘하는 학생으로 인식된 듯 보인다.


    주중에 매일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2교시, 화목은 3교시까지 수업이 있고 끝나고 나면, 달려 교도소로 출근해 유니폼을 갈아입고 캔틴으로 올라가 죄수들의 물품 신청서 작업을 매일 한다. 4시가 되면 식당으로 내려와 바쁘게 죄수들의 식판을 채운다. 어느덧 죄수들의 빈 식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모두가 돌아가면서 식기세척실에서 식판을 세척기에 넣거나 빼는 작업을 끝내고 정리하면 7시 퇴근시간이 된다. 토요일이 되면 집에서 점심을 먹고 일식당으로 출근을 한다. First Person(3시) 혹은 Last Person(5시 근무 시작)으로 웨이트리스가 처음 테이블을 받거나 마지막 테이블을 받는 방식으로 Last Person이 되면 마지막 팁 계산까지 마쳐야 한다. 주중에도 팁 계산을 하는 스케줄을 받으면 새벽 1시가 되어야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다. 2개월 동안 7일 내내 일을 하니 너무 힘들어 교도소에 살짝 거짓말을 하고는 금요일은 캔틴 근무만 하고 4시에 바로 퇴근하여 일식당으로 달려간다. 가장 바쁜 금요일, 토요일에 일식당 일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일요일은 집에서 쉬면서 집안일도 하고 테드와 시간을 보내드리기도 하면서 휴식한다. 평일 점심은 교도소 출근 전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쌀국수를 먹거나 교도소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것이 보통이고, 겨울 동안 너무 추워 에너지 소모가 큰 이유도 포함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지도 모른다. 이렇게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세 가지 일로 정신없는 시간이 흘러갔고 절망하고 슬펐던 기억은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이민가방을 보며 '다시 짐 쌀까?'라고 물어본다. 제대로 된 길 위에 서있기는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허기가 진다.




* 채송화 (Rose Mose)의 꽃말은 '가련함'이라고 한다.

이전 15화 미운실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