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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트 Oct 10. 2021

미운실패

또 안 되는 거야?

이곳에 다시 왔다
다시 떠난다

먼저 지내야 할 집을 구해야 하고, 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하고, 영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교도 찾아야 한다. 토론토는 한인들이 아주 많은 도시다 보니 다양한 정보가 많아서 렌트를 구하는 데는 다행히 어렵지 않다. Sheridan Collage(쉐리던 컬리지)에 제출해야 할 포트폴리오 작업을 위해 소개받은 학원은 한국의 입시미술학원보다 좀 더 분위기가 자유롭지만 긴장의 상태는 비슷하다. 영어도 놓지 않고 병행해야 하니 하루가, 또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여유롭지 못한 토론토의 생활이 마냥 신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랜딩 후 에드먼턴을 가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왔다면 미운 실패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잠깐의 미련 섞인 생각을 가져본다. 이것도 지나고 나서 혹시나 그랬을까 싶은 안타까움이다.


illustrated by 반트 ( muscari* )

   한 달 렌트비($400)와 식비($300~$400), 교통비($90)가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이고, 한국의 대학 입시 요강처럼 정해진 구성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따로 비용을 들여 미술 학원을 가야 하니 많지 않은 돈을 쪼개서 쓸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영어 수업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Adult School(성인을 위한 학교)이 있어 이민자로서 과목별 수업료($15)나 교재비용(프린트물)은 따로 들지 않는다. 기본 주거비가 비싸다 보니 자연스럽게 쥐어짜는 생활이 될 수밖에 없지만 지난번 토론토에 왔을 때 알게 된 몇몇 언니들, 동생들이 있어 정서적 고립은 덜하다. 간간히 팀 홀튼의 프렌치 바닐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잠깐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영어가 부족하여 일을 하겠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살짝 주눅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에드먼턴에서 지낸 8개월 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아침에 영어수업을 2시간 듣고 도서관을 달려간다. 길거리에 비치된 Metro 신문을 펼쳐서 아는 단어보다 모르는 단어가 훨씬 많은 현실을 자각하며 다시 입시생 모드로 돌아간다. LINC 수업을 들을 때의 학생수보다 약 5배가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 이곳은 영어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이수하지 못한, 혹은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학을 가는데 필요한 점수를 위해 수학, 생물, 화학 등 다양한 교과 과정을 성인들에게 가르치는 학교다. 물론 영어 레벨이 이곳의 중3 정도의 과정(English 9)을 시작하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듯하다. 아마도 다른 과목에서는 현지 캐네디언들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수업 퀄리티는 English 10부터는 일반 고등학교 수업처럼 문학이나 에세이가 위주여서 따라가는데 더 어려워진다. 주제에 따른 자신의 의견을 긍정 혹은 부정으로 하나를 정해 서론을 쓰고, 그 주장에 뒷받침하는 세 가지 이유와 그 이유에 맞는 예제를 각각 제시해야 하는 본론이 이어지며. 다시 한번 주장하는 바를 나열하는 결론을 마무리 짓는 에세이는 많은 동의어를 알아야 하는 난위도 상인 레벨임에 분명하다. 일단 아는 단어가 적어도 너무 적다.


    한국의 입시미술학원 같은 역할을 해주는 개인 아트스쿨이 미시사가에 있다. 지하철을 타고 Kipling에 내리면 원장님께서 학생 몇몇을 픽업해주신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라도 수업 자체가 늦은 시간에 있다 보니 포트폴리오 준비하는 과정에서 길거리에 까는 시간이 꽤나 된다. 워낙에 큰 도시기도 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뚜벅이는 어쩔 수 없이 집에 오면 피곤함에 녹초가 되기 일수다. Life Drawing(인물 크로키)이란 것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 상황인지라 연습을 안 할 수가 없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토론토 시내에 있는 라이프 드로잉 스튜디오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 그들과 조인하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을 더 연습한다. 한번 갈 때마다 참석하는 아티스트들끼리 모델료를 나눠내는 방식이라 나쁘지 않다. 모델마다 가지고 있는 몸의 라인이 다르다 보니 그릴 때마다 다른 드로잉이지만 점점 탄탄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신난다. 원하는 학교의 애니메이션과를 가려면 입시요강에 맞춰 제출해야 하는 그림들이 있고 그중에서 어려웠던 라이프 드로잉이 잘되니 왠지 잘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포트폴리오를 챙겨 기차를 타고 Oakville(옥빌)로 향한다. 학교 재학생인 하원이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제출하고 결과는 길지 않은 시간에 받게 된다. 점수는 3.34/4.00(라이프 드로잉은 4.00 만점)으로 입학에는 충족되지만, 슬프게도 불합격이라는 마지막 레터를 받고 나니 그 허탈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포트폴리오는 나쁘지 않은 점수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학교 관계자가 말하기를 고등학교 교과 과정 5과목을 듣던지, 학교의 Foundation art 과정을 1년 들어야 한다는 요구만 반복한다. 친구들과 추측하기를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황에서 영어 번역 증명서의 오해(영어, 수학, 과학 등 일반고 교과 과정의 수업이 현저히 적어 Credit이 모자라다 여길수 있다), 즉 전문대졸이니 굳이 고졸 증빙을 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혹은 전문대(Colleage) 디자인과를 졸업했으니 그 또한 미술 기초 과정이 필요 없다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며,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었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는 추측일 뿐, 이유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 나에게 또 다른 실패를 안겨준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오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데...라는 질문을 아무리 던져도 원하는 학교는 바로 갈 수가 없다. 다시 또 노력하기엔 에너지도, 돈도 이미 바닥에 닿아있고, 머릿속은 원점으로 돌아온듯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Ted와 통화를 하면서 같이 흥분해주시는 위로에 감사하고 "다시 돌아가도 될까요?"하고 여쭸더니 아버지처럼 오라고 하신다. 그 말에 냉큼 이민가방을 다시 싸서 에드먼턴으로 돌아간다. 역시 안되나 봐~ 개꿈이었나 봐~




* 무스카리 (Muscari)의 꽃말은 '절망, 실의, 실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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