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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트 Oct 11. 2021

뒷이야기

하나, 둘, 셋!

돌이켜 보니 추억이다

무슨 일이 되었건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 일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 담대함과 각오는 꾸준한(?) 실패를 통해 굳은살로 박힌듯하다. 물론 골라골라 가능한 일을 찾을 성격이기에 크게 불만 또한 잘 갖지 않는다. 그래도 처음 하는 일에는 실수와 어처구니없는 일, 혹은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어서, 그때는 진지했고 나중에는 웃으면서 썰을 풀 수 있는 뒷이야기로 친구들에게 늘어놓기도 한다. 교도소에서 일하게 될 거라는 상상은 한 번도 못했지만 그곳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생기기도 했고, 일식당에서는 함께 일을 하던 동료, Candy의 도움이 컸으며, 소소한 사건들에 항상 그녀가 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을 써볼까 한다.


illustrated by 반트 ( sweet pea* )

    하나,

교도소 건물에 있는 모든 승강기와 문은 건물의 중앙조정실에서 감시 카메라를 통해 사람이 직접 컨트롤한다. 이곳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큰 교도소가 아니라 임시 수용을 하는 곳이기에 건물 외관만 보면 일반 사무실 건물처럼 보인다. 지하 1층  ↔ 1층의 왕복을 제외한 모든 층은 죄수들도 이용하기 때문에 건물에 근무하는 어느 누구라도 원하는 층이 있을 때는 승강기의 업다운 버튼 대신 콜버튼을 누르게 되어있다. 하여 캔틴 근무 중에는 지하에서 캔틴이 있는 꼭대기층까지, 혹은 죄수들의 물품 신청서를 가져와야 하는 회계팀이 있는 1층에서 꼭대기층으로 콜버튼으로 승강기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승강기 이용자가 많다 보니 조정실 근무자는 아마도 콜버튼 울리는 소리가 항상 거슬려서인지 "Where to go?"라는 질문에는 늘 짜증이나 위압적인 목소리가 섞여있어 저절로 위축된 작은 목소리로  "Canteen", "Basement", 혹은 "First floor"로 대답을 하게 된다.

어느 날이다. 캔틴층 승강장 앞에서 1층이라 답하고 10분을 넘게 기다린다. 다시 버튼을 누르니 아무 반응 없이 올라온 승강기를 지하층으로 보낸다. 이는 식당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1층이라고 말한 걸 잊어버린 것이다. 1층으로 다시 올라가 회계팀으로 들어가는데 평소 자주 보던 담당자(정말 친절한 엄마 같은 캐네디언인데 이름이 생각나질 않네)를 보자마자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오면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고야 얼마나 당황하셨을까나 싶지만 손짓 발짓 섞어가며 안 되는 영어로 서러운 사연을 폭발하고 만다. 그녀가 놀라면서 책상에서 일어나 안아주듯 어깨를 감싸며 조정실로 데리고 가신다. '아~ 이거까지는 아닌데~'라고 속으로 말은 하고 있지만 이미 그녀가 조정실 문을 열고 있다. 안에는 2명의 건장한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아마도 울어서 눈물을 훔치는 여자 하나와 함께 그녀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각각 가리키면서 "누구냐? 누가 그랬더냐? 앞으로 또 그러면, Kick your ass!"이라고 해서일 것이다. (더 길게 얘길 했지만 확실히 알아들은 것만...) 

영어가 짧아 힘겹게 버티던 자존심에 상처남과 눈물까지 보인 상황이 이게 그렇게까지 울 일인가 싶은 창피함과 동시에 웃기기도 하다. 그녀가 그 서러움을 농담 섞어서 진지함으로 풀어준 것이다. 승강기를 기다리던 가녀린 여자 하나에게 했던 불친절이 그들뿐 아니라 조정실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이 사건이 공유된 모양이다. 그날 이후 모든 상황이 변했다. 승강기 콜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Hi Canteen girl!"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너무 상냥한 목소리로 되려 "Basement? 1st floor?"하고 물어주시고, 또 닫혀있는 문 건너 죄수들이 있지 않는 한 모든 문은 가까이 가기만 해도 열리는 자동문이 되어 너무도 편하게 교도소 근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감사히 여겨 가끔씩 캔틴의 탄산음료나 과자, 초코바 등을 조정실에 조공하며 캔틴걸로 유명해져 본의 아니게 편리한 교도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교도소에서 일했어요." 하면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왜요?"라고 묻지만 즐거웠다 말한다.


    둘,

일식당의 이름은 'Japanese Village', 2, 3층은 전체 테이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기에 각 테이블(8인용 ㄷ자)에 단체손님이 아니면 다른 일행들과도 함께 앉아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일찍 온 손님인 경우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테이블에 어느 정도 손님이 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우선 테이블 안내를 해드리고 착석하면 메뉴를 건네고 잠시 시간을 드린 뒤 음료 주문을 받는다. 원래는 트레이닝 기간 동안 Bar에서 음료 제조 트레이닝도 받아야 하는데 매니저의 실수로 하지 못해 술의 종류를 미처 알지 못한 상황에서 서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몰랐다. 하지만 다시 해주지 않았기에 매번 바에 근무하는 Candy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소주, 맥주, 막걸리, 매실주 등 겨우 몇 개의 수입 맥주들 정도만 아는 지식이다 보니 Rum & Coke는 이곳에서 처음 들었고 간혹 술의 브랜드를 섞어 얘기할 때는 들은 영어를 한글 발음으로 써서 캔디에게 물어서 알게 되기도 한 것이다. 캐나다의 맥주 중 보편적으로 판매되는 'Canadian(캐네디언)', 'Coors light(콜스 라이트)', 'Kokanee(코카니)'외 다수들이 있는데 이는 한국의 '카스', '하이트' 같은 것이다. 맥주병에 각 이름이 크게 적혀 있다 보니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편이라 실제 브랜드를 알지 못한 것이다. 

반복되는 주문이기에 식당의 맥주 이름 정도는 충분히 다 알고 있다고 여긴 어느 날이다. 손님이 "I'd like to have Molson Canadian."이라신다. 아뿔싸... 몰슨은 머지? 아직도 모르는 맥주가 있단 말인가 하고 캔디에게 달려가 물었다. 캐네디언은 아는데 몰슨 캐네디언은 또 뭐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캔디가 미소를 머금고 맥주병을 들고 손가락으로 콕 찍어서 한 자 한 자 읽어주신다. "Molson Canadian." 세상에 "OB Cass"인 것이다. 이런 똥 멍청이를 봤나. 병에 그대로 적혀있는데 그걸 읽으려 한 적이 없다는 뜻이니 또 영어로 부끄러운 실수를 보태고 마는 것이다. 워낙에 착하고 친절한 캔디가 아니었다면, 이 일로 무시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이후로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술을 주문하는 손님이 있을 때는 그냥 "Sorry, give me a second." 하고는 캔디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그녀가 술 주문을 받게 하는 뻔뻔함도 겸비하게 된다. 

캐나다에는 각 주별로 이름은 다르지만 모든 술 종류를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 한국처럼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술은 모두가 무알콜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Liquor Store에 가면 와인부터 맥주, 보드카까지 엄청난 종류와 브랜드의 술들이 각 섹션별로 자리하고 있어, 알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집어 들기엔 모르는 맛을 감당할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려면 엄밀히 "Serving It Right"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온라인으로 오픈북 시험이라 공부를 조금만 하면 어렵지 않게 딸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이다. 주된 내용은 과도한 음주를 엄격히 통제하는 나라라는 것을 새삼 알게 해 준다. 손님들이 술로 인해 과한 언행과 행동이 있을 시엔, 술을 더 이상 판매할 수 없고 손님이 직접 운전하지 못하게 택시를 타고 가는 것까지 봐야 하는 규칙도 알려준다. 만일 손님이 음주운전을 했다가 사고가 나면 식당의 책임도 묻는다고 들었다. 이때 서빙한 웨이트리스에게도 얼마의 책임이 있다고 한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나라다 보니 한국처럼 길거리에 무너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있어도 신고로 바로 이어져 경찰과 구급차등이 쏜살같이 달려온다. 이건 좋다.


    셋,

어느 정도 식당일이 익숙해져서 큰 문제없이 일을 하고 있다. (아참! 지난번에 익숙하지 않던 3층 근무를 하다 보니 동선 문제인지 신발 문제인지 홀의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만화처럼 미끄러져서 궁둥이를 바닥에 내리찍고, 들고 있던 접시를 와장창 깬 사건이 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 않았으니 하늘이 도운 것이지만 엄청 창피했다. 보는 사람마다 괜찮냐 물어보시니~) 가끔은 단체로 손님들이 오시기도 한다. 어느 회사의 직원들 회식 같은 경우도, 가족들 혹은 친구들의 생일파티도, 테이블을 2~3개씩 예약을 해서 세프들의 요리를 직관하는 재미와 결코 싸지 않은 스테이크를 즐기는 특별한 그들의 날인 것이다. 그때는 술 주문도 많아 정신이 없어 당연히 캔디가 많이 도와줘서 미안하고 고마운 날이다.

어느 토요일, 8명 일행으로 테이블 하나가 예약된 날이다. 술 주문도 많고 하다 보니 기본적인 음식 값뿐만 아니라 여러 번 시킨 술값이 보태지면 한 테이블의 영수증엔 큰 숫자가 찍힌다. 대충 그들의 영수증엔 술과 음식을 포함해 합계 $700 정도가 나온 모양이다. 손님들에게 디저트까지 서빙을 하고 나면 그들은 가기 전까지의 남아있는 음료를 즐기다가 계산하고 가신다. 그렇게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영수증을 줄까 하고 물어봐서 그들이 원하면 갖다 주는데, 이날은 다른 테이블 서빙도 바빠서 미쳐 챙기지 못하고 있지만 캔디가 알아서 척척 서포트를 해준다. 그들 중 술이 꽤나 취해 기분이 엄청 좋은 남자가 지갑을 열며 캔디의 서비스나 음식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완벽했다 칭찬하며 음식값을 지불한다.

그 손님들이 다 가고 나서 캔디가 다급하게 부른다. 대체 어떻게 서비스를 했냐며 미소를 짓지만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당황한 나머지 왜 무슨 일인데? 무엇을 잘못했냐? 되물으니, 캔디가 보여준 것은 영주증에 찍힌 팁의 숫자다. $300이다. 허걱 놀라면서 아니 뭐가 잘못된 건가 의아해 캔디를 쳐다본다. 보통 한 테이블에 $100 정도의 팁이 나와도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아무리 음식값이 $700 정도고 보통의 20% 팁을 감안해도, $150이 최고치일 텐데 그 두배를 주고 간 것이다. 하여 캔디가 장난스레 물어본 것이다. 아마도 술에 취한 손님이 지폐를 잘못 보고 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지만 그날 근무한 웨이트리스들은 로렌이 팁 하이를 깼다고 웃으면서 신나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팁 문화지만, 음식값+세금+팁까지 하면 실감하는 음식값이 꽤나 비싸게 느껴진다. 하지만 웨이트리스 일을 하고 나서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없어지고 서비스의 질에 따라 팁의 차등을 줄 정도가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식당에서 음식값을 지불할 때는 팁을 남기게끔 카드결제 시스템이 되어있다. 팁을 몇 %, 혹은 몇 $로 줄지를 정하는데 평균 15~20%의 팁을 준다고 한다. 간혹 8인 이상의 단체 손님일 경우는 영수증에 고정된 서비스 이용료로 팁이 17~20%로 포함되어 나오니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정한 적정선으로 테이크아웃을 제외하고는 12~15% 정도가 감당할 수 있는 팁이다.




* 스위트피 (Sweet Pea)의 꽃말은 '이 시간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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