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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트 Oct 07. 2021

인터뷰날

웰컴 투 캐나다

띵똥
번호 대신 이름을 부른다

드디어 인터뷰 날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만, 딱히 상상은 되지 않는다. 지금은 없어진 캐나다 영사관 내에는 대기실 앞쪽으로 여러 개의 문을 통한 방들이 있다. 그리고 번호표 순서대로 호출이 되면 그 방문 위 번호판에서 호출번호가 띄워지고 그 방으로 들어가 인터뷰를 본다고 알고 대기 중이지만, 오전 8시 30분 즈음 다른 쪽 방향에서 어떤 여자분이 걸어오더니 이름을 호명하고는 따라오라 하신다. '어라? 이거 뭐지? 큰일 났네! 이건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그나마 어제 외웠던 예상 질문과 답이 뭐였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고 식은땀만 삐질난다. '아! 몰라. 어찌 되겠지...'


illustrated by 반트 ( calladium* )

    토론토에서 돌아와 재취업을 해보려 애쓰지만 30대 여자는 나이가 많다고 인식한다. 지역 케이블 방송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오라길래 신나서 갔더니, 하시는 말씀이 "합격을 하시면 상사가 나이가 더 어린데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히 괜찮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직장 생활을 했던지라 중요하지 않다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회사라면 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을까? 외모 체크 말고는 이유가 없다 믿고 있다. (쏴리~ 견적이 너무 많이 나올 거 같아서 못했습니다. 당신이 비용 댈 것 아니면 체크하지 맙시다.) 잠시만 머무르기로 한 동생의 신혼집에 무려 4개월 동안 밥을 축내고 있다. 동생의 마음도 제때 이해하지 못하고 신세만 지고 있음을 알지만, 너무 뻔뻔하게 버티고 있으니 참으로 철없는 언니로서 미안하기 그지없다. 임신으로 예민했을 텐데 티 내지 않은 동생과 처형에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한 적 없는 착하디 착한 제부의 배려와 응원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다시 일을 찾는다. 지난번 회사에서 함께 일을 했던 경란 씨가 새 직장에 근무하는 줄 몰랐다. 그녀에게 사장이 "혹시 이분 아세요?"라고 물어봤고 같이 일했었다고 얘길 했다며 그녀의 전화가 왔다. 그녀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재취업이 가능했을까 싶다. 아직도 인간관계는 어렵지만 특히나 일 관련해서는 어떤 사람을 어떤 자리에서 또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니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직장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할 때 즈음, 영사관에서 편지 하나가 도착한다. 이제 인터뷰를 보란다.


    모임의 많은 사람들은 영어점수를 같이 제출하고 이민이 통과되었다는 결과를 받는데, 그렇지 못하거나 어떤 미흡한 점이 있을 시에는 대부분이 인터뷰를 요청받거나, 혹은 그전에 거절의 편지를 받기도 한다. 접수 후 꽤나 긴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각자의 상황이 바뀌기도 하여 변수가 생기기도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가득 메운 그들의 인터뷰 후기들을 매일 같이 읽고 또 읽으면서 기다린다. 앞으로 닥쳐올 일이기에... 어떤 깐깐한 영사관은 인터뷰 볼 때 영어 테스트를 한다더라는 후기엔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물론 성공과 실패 중 어떤 후기를 쓸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남들의 인터뷰 경험들이 도움을 주기도, 마냥 부러움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과연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지라 불안하고 떨리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예상 질문지를 찾아서 읽고 외우고를 반복한다. 기본 질문으로 "당신은 왜 캐나다에 살려고 합니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애니메이션 공부하고 싶어서요."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캐나다의 OOO들이 좋아서 살고 싶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이민, 즉 이주의 목적에 맞는 답이라 하겠다. 그 외에 캐나다 역사, 문화 등의 일반적인 질문들은 마치 세계사 캐나다 편과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예상 질문지와 답은 생각보다 많고 외운다고 바로바로 답변을 못할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안내받은 쪽으로 간 곳에는 한 영사관의 집무실이다. 커다란 백인 캐네디언이 자신의 높이에 맞게 모니터를 한껏 올린듯하고 책상 위에는 서류 파일을 펼쳐 놓고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맞은편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왜 영어시험을 보지 않았냐고 질문한다. 흠짓 당황한 기색이 보여서인지 본인이 답을 대신하신다. "Are you scared?" 자신감 결여된 목소리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YES."라고 답한다. 영사관은 떨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하시지만 예상했던 상황이 아닌지라 외웠던 질문지의 대답은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어가는 질문들로 지금 일은 하고 있냐? 급여는 어느 정도 되냐? 캐나다에는 얼마나 있었냐? 등이지만 단답형의 대답으로 일관하고 숫자를 말해야 하는 급여 금액은 어리바리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다. 하긴 수준 이하의 영어가 8개월 잠깐 캐나다 있었다고 질문을 알아들은 것만으로도 대견한 거지 그 이상은 당연히 무리인 것이다. 드디어 Leo에게서 받은 Job Offer에 관한 질문을 한다. "이거 뭐지?" "It's simillar like a job offer." 그는 연신 타이핑을 하면서 들은 그대로 정보를 입력한다. "Leo는 시민권자야?" "Yes, he is a citizen."이라며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지만 캐나다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그렇겠지 하고 추측한 대답이다. 잠시 뒤!


    "It's yours!"라며 신체검사 요청 서류를 내게 건넨다. '아~ 이거 니꺼래. 진짜 이제 이민 통과된 거구나!' 순간 지난 2년 반의 시간이 스치듯 지나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마음속 깊숙이 이것이 마지막이라 여기어 간절히 원했던 거 같다. 여건이 안되지만 애니메이션을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이민 신청은 했지만, 부족한 능력 탓과 현실이 어떤 것인지 알아버린 탓에 이민이 안된다 해도 실망하지 말자 다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기회가 생긴 것이고, 이제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생각해서인듯하다. 울고 있어 티슈를 주는 줄 알았던 그는 손은 뻗어 명함을 건넨다. 혹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라면서 친절하게 얘기해주신다. 감사한 마음에 가방에서 동생이 준 합격기원 엿을 꺼내, '이거 드세요, 한국 전통 캔디예요'라며 순수하게 내민다. 다만 예의를 차린 것인데 '엿 먹어라.'가 된 것은 아니겠지? 아뿔싸!' 그는 친절하게도 엘리베이터까지 배웅 나오면서 "Welcome to Canada!"하고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신다. 약 10여분의 짧은 인터뷰로 이민이 통과되고 믿기지 않은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탄다. 진정되지 않은 떨림으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통과되었다 소식을 전한 뒤 미쳐 알아차리지 못한 그 간절함이 가슴 깊숙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 칼라디움 (Calladium)의 꽃말은 '환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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