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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트 Oct 05. 2021

남은선택

이민 말고는 방법이 없네

일단 신청해보면
알게 되겠지

2002년 6월 28일 이후부터 캐나다 이민법이 바뀐다고 하니 무조건 그전에 독립이민 신청을 해야 했다. 아무리 이리저리 점수를 따지고 계산해봐도 이번에 신청하지 않으면 이젠 기회조차 없을 것이기에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기도 했다. 나이, 학력, 영어, 경력, 전문기술, 배우자 점수 외 선택적 추가 점수를 통합 산정해서 70점이 넘으면 통과된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어찌 억지로 그것도 영어점수를 '중'이라고 했을 때 가능성이 있는 점수가 되었다. 부족한 전문인력을 이민자로 채우기 위한 독립이민, 그 외에 다른 이민 종류도 많은 이민자의 나라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이민밖에는 없었다.


illustrated by 반트 ( rose geranium* )

    처음에는 캐나다 유학 관련 카페를 가입하고 정보를 얻다 보니, 열심히 돈을 모으면 혹시? 왠지 총기 소지를 하는 위험한 미국 대신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그냥 기웃댄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또래들이고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고자 하거나 어학연수를 떠나고자 하는 대학생들이 많고, 이미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자 모임에 참석을 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두 손 가지런히 무릎에 올리고 경청하며 메모하더니 어느덧 몇 개월의 카페 활동으로 누군가에게 아는 척 정보를 공유하는 내공까지 생긴다. 카페 생활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정보만 듣고 모으는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회원들과 오프모임을 하면서 친해지다 보면 친목 활동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운 좋게도 몇몇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인연이 이어질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이어 이민 관련 카페도 여러 개 가입한다. 이런 모임이 있지 않았다면 과연 이민을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 시도는커녕 혼자라 할 수 없을 것이라 포기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IMF 사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회사가 부도나면서 40대 가장들은 새로운 나라로 이민을 선택하는 것이 슬픈 유행처럼 번진다. 하물며 캐나다 마니토바주 이민은 홈쇼핑 상품에도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넘쳐나는 이민 정보는 동생이 지나치듯 던진 말 한마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유학의 꿈을 우회하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다. 당시 '엔채널' 사이트에 있는 캐나다 모임 '단풍나라'는 TV에서 이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까지 방송되고, 그 안에서 여러 개 소모임 중 싱글 이민자들 모임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이민은 정말 또 다른 세계다. 대부분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어학연수 등 이미 캐나다에서의 경험으로 이민을 더욱더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잠시 그들은 친구처럼 서로 도우며 정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의지도 하게 해 준다. 모두가 이민에 성공하거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정보를 공유받기 위해 모여서 각자의 목표와 상황에 맞추다 보면 누군가는 캐나다로, 또 다른 나라를 선택하기도, 혹은 한국에 남기도 한다. 불안정한 직장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각자의 자구책으로 이민을 선택하지만 부모님의 세대와 달리 더 이상 정년퇴직을 맞이 할 수 있는 직장은 점점 사라지고, 하루의 절반을 몰두해야 하는 직장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 판단하는 젊은 세대들이 이민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필요한 서류 준비뿐만 아니라 모두 영어로 번역하거나 영어로 된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니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이주공사에 전화 문의를 하니 600만 원 정도 필요하다고 한다. 큰돈이다. 그만한 여유는 없다. 혼자서 수많은 자료들 속에서 모르는 영어 단어 찾아가며 헤매고 정리하고를 반복하여, 제출해야 할 서류들을 만들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도움받아서 2001년 11월에 캐나다 영사관으로 우편 발송하여 제출한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지고 앞으로는 그냥 기다리는 일만 남은 것이다. 얼마 후 파일 넘버가 적힌 편지가 집으로 날아오니 실감 난다. 드디어 진짜 접수되었구나 하고 말이다. 영어 점수를 낼 수 있으면 좋지만 불가능하다 판단한 상황에서는 무작정 인터뷰까지 대략 2~3년이 걸린다고들 한다. 영어 점수를 제출한 친구들은 대부분이 접수 후 1년 정도 걸려 이민 통과가 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하니 부럽지만, 사실과 먼 거짓말 하나를 보태어 겨우 점수를 맞추다 보니 이민 또한 자신 있다 말할 수가 없다. 그래도 '까짓 꺼 일단 해보는 거지, 밑져봐야 본전 아니겠어.'라고 무식하게 들이민 서류들이지만 나름의 고생으로 6개월 넘게 준비한 것이니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적어도 후회가 남지 않는 노력이라고 섣부른 도전의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그사이 이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인 싱글들끼리 자주 모임을 갖으며 나중에 캐나다에서 이어가야 하는 인연이라 여기며 친목을 더욱 다지게 된다. 때마침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고 그 분위기에 같이 동참하는 20~30대 젊은 모임인지라 시청 앞 광장에서, 뙤약볕 아래 한강공원에서, 목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외치고, 승리의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응원하고 동시에, 캐나다에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토론한다. 현재 그 모임이 지속되고 있진 않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몇몇은 페이스북을 통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 몇몇은 간혹 연락을 취하며 안부를 묻기도 한다. 물론 90%의 사람들의 근황은 이제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격려 덕분에 할 수 있던 도전이고 큰돈 들이지 않고 혼자서 해낼 수 있던 이민 신청임에 틀림없기에, 어디에서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희망하며 어떤 선택의 자리에 있든지 만족하고 있을 인생이길 응원한다. 그중에서도 에밀리 황, 캐빈 방, 알렉스 김은 엄청난 힘이 된 친구들로 기억하고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고마움을 전한다. 가장 유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한 그 선택이 지금의 자리를 만들고 뜨거운 그때 열정을 마음껏 불사를 수 있게 불씨를 준 것 또한 사실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ONLY WAY이었기에...




* 로즈 제라늄 (Rose Geranium)의 꽃말은 '선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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