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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뇽스 Nov 18. 2023

사라진 가을

계절을 맞이하는 방법

서늘한 바람이 곧장 뼈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추위가 있다. 걸치고 있는 옷 따위, 내 살가죽,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찬바람이 스산하게 깊이 스며들어 온몸을 흔들어대는 그런 가을의 추위가 있다.


그런 초가을의 추위가 시작되던 날 새벽. 그녀는 오랜 투병생활을 뒤로한 채, 고통 없는 세상 속으로 떠나갔다.


내게 가을은 아직도 ‘그녀와 이별한 계절’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눈 부시게 빛나는 봄 햇살도, 그와 이별한 그날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흐릿해졌지만, 그날의 향기와 색채는 여전히 나의 어둠을 끌어내곤 한다.


나에게 봄과 가을은 여전히 그렇게 기억된다.




크리스마스, 바캉스, 핼러윈, 단풍놀이, 벚꽃축제, 스키장, 해변, 패딩재킷, 비키니.

계절을 수식하는 키워드들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소매업 매출은 크리스마스와 신년에 정점을 찍고, 여행업은 여름장사로 일 년을 유지한다. 수많은 키워드들은 마케팅을 위해 기획되고 매출전략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는 종종 몇 가지 고정된 이미지로 서로 다른 계절을 기억하고 떠올린다.


하지만, 같은 계절도 모두에게 다르다.


A군은 여름에 죽을 뻔한 경험을 하였고, B양은 가을에 원하던 직장에 취직하였다. A군은 올라가는 기온에도 위기감을 느끼고, B양은 떨어지는 단풍만 보아도 흐뭇하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운 일들도, 누군가에게 한없이 잔인하게 다가올 수 있다.


기력이 쇠해가며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었던 엄마에게는, 온갖 미디어를 도배하던 먹방이 불편했다. 섭식에 장애가 있는 이들 따위는 아랑 곳 없이, 야속하게 산해진미를 먹어 대던 그들에게서 잔인함마저 느꼈다고 한다.




가을이 사라졌다. 지난주는 덥더니, 이번 주는 한파라고 한다.


슬프고 우울한 느낌 외에, 특별할 것 도 없었던 가을이다.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을이 특별한 누군가에게는 절망적인 일일 것이다.


요란하지 않게 차분한 마음으로 바뀌는 계절을 맞이하려 한다. 애초에 계절은 우리에게 은밀하게 다가오고 은근하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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