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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nZ Feb 22. 2021

제로섬(zero-sum)에 갇혀

무능한 신입의 기분이란

제로섬(zero-sum): 한쪽의 이득은 곧 한쪽의 손실을 뜻하므로, 전체의 합은 0에 수렴한다.


입사를 한 지 2주 하고도 조금,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아니, 그전에 나는 내 할 일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인턴으로 있을 때의 방송국과 규모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이곳은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나왔고, 나는 출근 이틀 차부터 야근을 하며 퇴근시간까지 카톡 하나 확인할 여유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사수의 부재로 인한 인수인계의 부족, 그에 따른 업무 능률의 저하였다. 나는 고작 한 뭉텅이의 인수인계 서류만으로 한 달 동안이나 비었던 사수의 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러나 주어진 서류마저도 빠진 내용이 많았고, 심지어 컴퓨터에도 남아있는 선례 데이터가 없었다. 매일 새로운 공문들이 턱도 없는 기한을 달고 날아왔지만 제대로 하기에는 아는 게 없었고, 마음대로 처리하기에는 공문에 딸려 온 무시무시한 '벌금' 조항이 입을 벌리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나는 항상 과장님께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매일 야근을 도맡아 하시는 과장님께 신입사원이라는 혹덩이가 구원 요청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눈치 보이는 일인지 알 사람을 알리라. 그러나 어쩌겠는가. 혹덩이는 그저 대롱대롱 붙어 있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내 기분은 마치 지도 선생 없이 첫 도로주행을 하는 운전자의 느낌이었다. 최선을 다하지만 시야가 좁은 탓에 조만간 접촉사고를 내고야 마는 그런 초보운전자. 안타깝게도 초보운전자에게 관심을 주는 운전자는 아무도 없다. 그들이 관심을 줄 때는, 이미 사고가 난 후이다.     


그래서 외롭고 무서웠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었기에 윗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무언가, 획기적인 무언가를 요구해왔다. 신입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재촉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1월부터 자리를 비웠던 전임자의 밀린 일거리를 처리해 들고 가면, '이렇게 자료만 띡 보내지 말고 분석한 내용을 가져오라'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들이 말하는 '띡 보내진 자료'는 사실 야근을 해가며 겨우 정리해놓은 것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그런 주석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적응을 빨리 했었더라면.' 

   

그랬다면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느려서,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걸까. 마치 제로섬에 갇힌 것 같았다. 주어진 일을 고군분투하며 해내지만,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기에 의미가 없고 오히려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애쓰던 시간들이 손실이 되어 결국 성과는 0에 수렴하는 현실이 씁쓸했다.      


'사수만 있었더라면. 인수인계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아쉬움들이 몰려왔지만 곧 이마저도 관두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만큼 어리석고 의미 없는 일은 없다. 현실은 바꿀 수 없고, 적응은 어디까지나 내 몫이다.      


지금껏 방패가 되어준 '신입'이라는 꼬리표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될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입사 첫날과 다름없는 나는 속수무책으로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몸을 또 한 번 뒤척였다.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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