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과 열등의 냄새
얼마 전 생일이었던 내게 중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한 오빠로부터 축하전화가 왔다.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너 그럼 사원인가?"
"응 그렇지."
"난 사장인데ㅋㅋㅋ 아무것도 안 해."
"오.. 그게 좋은 거지 뭐. 편한 게 최고야."
"너 말투가 무슨 자본주의에 찌든 말투로 변했냐."
편하게 일하는 것과 자본주의가 어떤 부분에서 맥을 통하는지는 몰라도, 그는 내가 자본주의에 굴복했다며 비웃었다.
"아무튼 치킨 쿠폰 고마워. 먹을 때 인증한다."
"이야 우리 반 1등께서 후기를 다 남겨주신다니ㅋㅋㅋ 영광이네요"
누가 봐도 비꼬는 말투에, 생일 선물은 고마웠지만 안받으니만 못한 기분이었다.
취업 소식은 이리저리 전해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응원과 축하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알곡들 틈에는 동창 오빠에게서 들은 것과 같은 가라지도 섞여 있었는데, '대학생활 내내 쉬지도 못하다가 바로 일하네. 불쌍해.'라는 동정에서부터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 언제든지 그만둬.'라는 회사에 대한 암묵적인 평가까지, 사회초년생을 위한다는 그들의 완곡한 발언은 사실 직설적이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들이 뱉어내는 문맥의 밑바닥에서 질척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우월과 열등의 냄새였다.
생선 가판대에서 태어나 누구보다 향에 예민했던 <향수>의 주인공처럼,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성적 경쟁을 하며 생존해 온 나는 우월과 열등의 냄새에 유독 민감했다. 동시에 그 냄새에 크게 흔들리는 것도 나였는데, 이는 나 또한 일말의 비교의식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정말 불쌍한가.'
나는 고민했다. 현재에 만족한다기엔 더 성공한 사람들이 많으니 자기 합리화를 하는 듯했고,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엔 그들 또한 나와 다를 바 없는 짧은 인생 경험의 소유자들이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현실에 최선을 다하기'였다. 누구의 말이 맞을지는 살아보면 알 것 아닌가. 누구도 내 인생에 값을 매길 수는 없었다. 이 논제가 맹점 투성이임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현재의 가치판단을 미루기로 결심하자, 이번에는 문득 두려운 감정이 들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저 냄새가 혹시 내 말과 행동에도 배어 있지는 않을지. 상대의 선택과 기회를 기뻐해주지는 못할망정, 장난스러운 말투와 곱게 접힌 눈웃음으로 독 묻은 비수를 꽂는 저 사람의 얼굴이 내 거울은 아닐지.
그래서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기로 했다. 그렇게 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취업 한 지 한 달도 채 안된 시점, 가깝다고 생각했던 지인들에게서 더 가까운 진심을 보았다. 그 진심은 생각보다 씁쓸하고 쓰라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