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움'에 대하여
무거운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몇 명의 마음을 아프게 하셨나요? 오늘 내뱉은 말들에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상처 입게 하는 내용이 있었나요? 감히 예상컨대,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혹은 유별난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럴 일은 드물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던 누군가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의식하지 못했거나, 버릇처럼 뱉은 말들에 누군가가 상심하지는 않았을까요?
온라인상에서의 익명성에 기대어, 보기도 힘든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 악플들을 발견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는 미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더욱더 슬픈 사실은, 종종 오프라인에서도 상식 밖의 행위들을 목격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대체로 스물에서 스물둘 사이인 전우들은 서로 형제처럼 허물이 없고, 페르소나가 아직 불완전한 경우가 많아서, 사회에서보다는 빈번하게 그런 실수와 잘못을 목격하게 됩니다.
한국인 여성 유튜버가 유럽의 한 나라에서 지나가던 현지인 남성에게 갑자기 위협을 당하는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많은 분노의 댓글들이 달렸고, 저 또한 분개했습니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끔찍한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되돌아봅니다. 우리는 과연 인종차별에 있어 떳떳할까요? 아직도 저는 ‘흑형’, ‘흑누나’라는 단어를 많이 듣고 그들(주로 겉모습)에 관한 저열한 농담들이 재밌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봅니다. ‘글로벌 사회’라는 지금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번 더 눈길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도계 한국인인 후임의 “익숙해서 괜찮습니다.”라는 말에 담긴 고통을 가늠할 수 없어 슬픕니다.
유니세프에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정기후원을 해오고 있어서, 2021년 달력을 부대로 보내주셨습니다. 군부대로 온 택배는 행정반에서 간부님 입회하에 개봉을 해야 합니다. 달력 또한 마찬가지였고, 달력 앞면에 새겨진 피후원아동을 보고 선임인 당직병이 한마디 했습니다. “아니 웬 니거 새끼가 있어 ㅋㅋ. 저번에 티비 보니까 진흙쿠키 먹방 오지게 하던데 ㅋㅋㅋㅋ 군침이 싹 도노!” 저는 후임이라는 이유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고, 행정반에 있는 사람 중 이 말이 불편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는지 몇은 심지어 웃기까지 하더군요.
저는 걸그룹 멤버들이 불쌍합니다.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는 멤버는 예쁘기에 평생 듣지 않아도 될 욕된 말들을 듣습니다.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예쁘다는 이야기를 덜 듣는 멤버는 거의 죄인, 아니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TV에 나온다는 이유로 이러한 말들은 너무도 당연해지고, 여기에 불쾌한 사람은 유별난 “씹선비”가 됩니다. ‘여군’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이고, 이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반말과 하극상, ‘삼일한’, 그리고 성욕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제가 지금 2020년에 사는 것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의 비하와 모욕들이 난무합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이 주로 하지마는, 글로 적기 민망할 정도의 말들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오가는 것을 봅니다.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특히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잔인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비단 군인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편견과 고착관념이 팽배하고 이로 인한 피해들이 만연합니다. 이야기를 꺼내는 저 또한 생각 없이 말을 뱉고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줄 때가 많습니다. 일례로,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CF 중에 어떤 축구 클럽을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레알 마드리드가 더 ‘남성적인’ 스타일이라 좋다는 답변을 해서 여자친구를 크게 실망시킨 일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그 친구가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저 말을 뱉을 당시의 제가 그랬듯 여러분은 ‘틀린’ 생각을 가지신 겁니다.
전 어릴 때부터 덩치가 컸습니다. 지금도 대중교통을 타면, 졸업사진들 속의 제가 그렇듯이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큽니다. 저는 또, 감수성이 예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혹여라도 그런 모습을 남에게 비추게 되면 ‘덩칫값’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제가 ‘틀린’ 줄로 알고 거의 평생을 ‘고치려’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때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부스러기들은 퇴적되어 결국 우울증이 되었습니다.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것조차 ‘덩칫값’을 못하는 꼴이었기에 더욱 자책했고, 그래서 더욱더 어렵게 극복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외형적인 모습에 고착된 관념은 누군가에게 정말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잠시 딴 길로 샜네요. 위에 말했듯이, 아픔을 가진 저도 의식하고 있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같은 상처를 주곤 합니다. 어렵겠지만 우리가, 특히 세계 평화에 일조하기 위해 인생의 소중한 18개월을 바치는 우리 대한민국 군인들은 더더욱, 조금만 더 의식적으로 ‘프로불편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는 말이 나의 품격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받는 대우는 우리가 결정합니다. 여러분의 지난 인생, 전우들의 18개월은 그 무엇보다 빛날 수도 있고 하찮아질 수도 있습니다. 전우들의 품위를 저하시키는 사례들을 소개하게 되어 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만, 경각심을 고취하자는 뜻으로 적은 글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보다는 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내일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