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산에서 자랐다. 수산 쪽 일을 하니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울산에서 왔으면 고래 먹어봤겠네?"라는 질문은 내게 단골 질문이다. 나는 보통 "저도 고래고기 안 먹어봤어요."라고 싱겁게 대답할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고래를 보면 예쁘고 신기하지 단백질원이나 식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고래에 대해서 늘 드는 의문 중 하나는 왜인지 사람들은 고래에게 깊은 애착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들은 바다에 살지만 고등어나 갈치와는 다르게 신비로운 감정이입의 대상이다. 왜일까? 나에게도 고래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의미를 가졌다. 나는 공부하다 막히거나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을 감고 바닷속을 수영하는 상상을 한다. 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왜인지 고래는 같이 헤엄치는 친구 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가까이서 만난 건 바닷속이 아니라 차가운 수술대 위였다. 나는 졸업을 하면 뭘 먹고살지가 영 근심스러운 학생이었고, 방학 때마다 닥치는 대로 여러 진로를 체험해 보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울산에 있는 고래 연구센터에서 진행되는 고래 해부 실습이었다. 여름방학 기간에 가는 실습이라, 날씨가 좀 덥긴 할 테지만 재미있어 보였고 나는 공고를 확인하자마자 실습을 신청했다. 실습은 며칠간 진행되었다. 실습을 통해서 계속 얼굴을 마주하니 해양 포유류, 해양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아무래도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실습의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어떤 진솔한 대화는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때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새에 깊어져있었다.
"고래고기 이제 먹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판매 금지돼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연구관님이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부수어획되어 죽었다는 돌고래들의 푸르뎅뎅한 비린내 사이에서는 있던 입맛도 떨어질 지경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울산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요. 고래고기 먹어봤냐고. 근데 울산에서도 그렇게 흔하지 않잖아요. 굶는 시대도 아니고.." 왠지 나는 투덜거리는 투로 말했다.
"음.. 최근에 주변 초등학교에 특별활동 수업 같은 걸 갔다 왔는데, 해양포유류에 대해서 설명을 했어요. 왜 애들은 동물 좋아하니까요." 내 얘기를 들은 연구관님이 말했다.
"네." 나는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몰라 집중하려고 했지만 이내 신경은 비린내에 쏠려있었다.
"어떤 애가 고래고기를 먹는 게 나쁜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부모님이 고래고기 식당을 한다더라고요. 몇 대째 물려받은 뭐 그런 건가 봐요." 그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아이가 질문하는 모습이 그려져서 내게도 당혹스러움이 전해왔다.
"대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연구관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도요. 대답 못하겠는데요." 탈룰라와 생명존중 사이에서 어느 쪽을 고를지는 당시 연구관님의 몫이었겠지만 나 자신도 이런 종류의 질문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고래고기의 수요가 계속 줄어들고 언젠가 아무도 찾지 않으면 식당은 문을 자연스럽게 닫아야 하지 않을까? 십 년? 이십 년이 걸릴까?
"마냥.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고 야생동물도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게 누군가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특히나 애한테."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은 가끔 누군가가 대를 이어 살아온 방식과 정 반대의 선상에 놓여있다. 나의 이상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는가? 100년 후, 200년 후에 비난받지 않을 수 있을까?
"왠지 좀 슬프고 찝찝하네요." 어느 쪽을 선택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 고래와 아이의 딜레마는 너무도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니면 환경과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니면 생명존중이라는 거대한 진리로 간주되는 사상의 그림자에 가려져있는 부분에 잠깐 강한 전등을 켰다 끄는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잠깐 불을 켜서 그곳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나와 너무도 같은 가족들과 아이들이.
나는 실습을 하면서 소형 해양포유류인 상괭이, 돌고래의 사체를 해부하는 순서와 방법을 배웠다. 대부분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본과생이라서 해부 실습 경험이 있지만, 해양생물을 해부하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많은 부분이 생소했고 처음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얼어있던 사체를 녹이고 호수로 물을 쏘아가며 표피와 근육, 장기들을 확인했다. 부수어획으로 인해 생긴 상처들도 보았다.
나는 왜 내가 고래나 돌고래에게 애틋함을 느끼는지 조금은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크기가 사람만 해서인지 우리처럼 피부와 뇌, 폐, 뼈, 근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은 척추를 따라 해부를 하다 보니 작은 뼛조각이 나왔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뼛조각이 이상한 위치에 붙어있었다. 퇴화한 골반뼈였다. 해부 실습 기간 동안 보았던 돌고래 중 하나는 새끼도 배고 있었다. 아주 작지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작은 생명이 나를 슬프게 했다. 어미의 혈류를 따라 흐르던 산소의 농도가 줄어들며 꺼져갔을 그 작은 게 아프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