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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pr 08. 2024

해부실습을 하지 못하면 유급!

  입원해 있던 말괄량이 초딩 시절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후 나는 해부 테이블 앞에 여섯 명의 친구들과 모여 앉아있었다. 실험 전에 마취에 대해서도 배우고 실험체를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들었는다. 하지만 처음 실습에 들어가는 터라 왠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었다. 실습 전에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시는데 머릿속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몇몇 동기들이 방혈하고 전처리를 한다고 실습 며칠 전부터 준비를 했다.



  실습은 오후에 시작했다. 실습이 끝나는 시간은 유동적인데 교수님 마음이라고 보면 된다. 학생들이 주어진 실습 과제들을 끝내고 교수님의 구두 테스트를 통과하면 집에 갈 수 있는 구조였다. 교수님은 어려운 문제들을 내어서 학생들을 자정이 넘도록 집에 보내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해부 실습을 진행할 강아지들은 여느 멍멍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차가웠지만 부드러웠다. 우리 개는 하얗고 갈색 얼룩이 있었다. 그리고 말랐다. 옆조의 개는 좀 컸다. 진돗개보다 조금 작은 정도? 우리 조 친구들은 좀 큰 개를 골라야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무색하게도 학기가 끝나 갈 때즈음에 커다란 개들이 먼저 썩었다.



  나는 피부를 절개하고 얇디얇은 지방층을 파고들어 근육을 보고 신경다발을 봤다. 우리 개는 너무 말라서 불쌍했다. 반면 떼내야 할 지방들이 적어서 지방을 걷어내는 트리밍 작업 시간이 비교적 짧았다. 그 작업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는데, 우리 조는 거의 생략하다시피 했던 작업이라 전체 실습이 빨리 끝났다.



  수의대 학생들은 그렇게 해부 테이블에 눕는 동물들을 위해서 매년 수혼제를 지냈다. 가운을 입고 모여서 고사를 지내고 묵념도 했다. 그걸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는 늘 의문이었다.



  해부를 하면서 구조물을 살펴보고 이름을 외웠다.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들이 끝나면 책을 찾아보면서 근육들의 이름과 뼈의 크고 작은 구조물들의 이름을 외워야 했다. 뼈들은 울퉁불퉁한 자리마다, 매끈한 자리마다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을 외우는 건 제법 힘들었다. 왜냐하면 당시 의학용어들을 한글용어로 순화하느라고 만든 우리말 용어가 있었고, 원래 사용하던 한자용어와 영어 용어가 있었다. 근육으로 예를 들자면 운동하시는 분들이 키우고 싶어 하는 광배근은 넓은등근이라는 두 가지 이름 모두 외워야 했고, latissimus dorsi muscle이라는 영어 이름도 외워야 했다. (의학용어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많이 따왔다고 하는데, 영어에서는 새로운 이름으로 쓰지 않으니 얘들은 하나만 외우면 돼서 부럽기도 했다.)



   실습이 끝나고 해부학 용어들을 열심히 외우고 나면 조원들은 테스트를 받았다. 눈을 부라리고 선 교수님과 덩치 큰 해부실의 실험실원 선배가 압박 면접과 같이 구두 테스트를 진행했다. 여섯 명의 조원 중 한 명이라도 버벅거리면 우리의 순서는 맨 뒤로 밀렸다. 10개 조 정도가 있었으니까 한 번 틀려버리면 집에 가기까지는 두세 시간이 밀렸다. 그리고 테스트를 하다가 너무 잘하면 문제가 갑자기 어려워지거나 틀릴 때까지 문제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너무 그러면 의욕 고취가 안되니까 중간에 한 팀정도는 일찍 보내주기도 했고. 괴롭다. 가끔씩은 이미 발골해 놓았던 소뼈와 돼지뼈를 주며 개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괴로운 과정이었다.



  첫 번째 실습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끝나지 않았다. 해부는 원래 그렇게 힘들게 배워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에 당시엔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약간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다. 그나마 교수님은 기숙사 통금시간인 새벽 한 시 이전에 수업을 마쳐 주긴 했다. 포르말린 냄새가 옷에 마구 배어 있었고 실습했던 기억들이 기숙사로 가는 길 내내 뒤엉켰다. 그때 나는 기숙사 중에서도 제일 구석진 곳에 있는 곳에 살아서 집에 가는 길이 제법 길었다. 겨우 들어간 기숙사의 공용 샤워실에서 늘어선 샤워 부스를 보며 한숨 쉬었으리라. 어찌어찌 씻고 방에 들어왔는데 인중에서 계속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신입생이었던 룸메이트는 놀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생활패턴이 정 반대였는데 혼자 있고 싶은 밤에 나가 주는 건 왠지 고맙기도 했다. 걔는 가끔 자기가 흡연자인 게 미안했는지 왕왕 내게 담뱃갑을 내밀며 '언니, 필래?'라고 말했다. 역시 그날도 언니? 하며 내미는 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더 독한 냄새로 실험실의 냄새를 지웠다.



  그때는 몰랐다. 몇 년 뒤 고래 해부센터에서는 진짜 지독한 냄새를 맡게 될 거라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는 아무도 내 옆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건 오래 남아서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를 그냥 버리게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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