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해부 실습을 신청하면서 나는 망설임보다 설렘이 더 컸다. 울산에서 하는 실습이니 집에서 엄마밥 먹으면서 다닐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해부실습 많이 해봤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까짓 거 일 학년 실습 때 지겹도록 해봤지. A를 받지는 못했지만.. 해양포유류라고 다르겠어?' 하는 오만한 생각은 곧 처참히 부서졌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고래센터의 실험동 문을 열었을 때 정말로 험한 것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형체가 없어 잡을 수도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쉰내, 비린내, 썩은 내 콤보가 터져 나왔다. 부비동을 지나 뇌로 냄새가 직통하는 느낌이었다. 에어컨이 고장 났단다. 냉장고가 고장 났다던가.. 우리는 냄새 좀 빠질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당일에 조치가 가능해서 바로 실습할 수 있다는 말이 왠지 못 미더웠지만 냄새가 좀 빠진 실험동으로 우리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래가 터지는 것은 안 봤다는 것 정도였을까. 해외 영상 같은 걸 보면 고래 사체가 뻥하고 터지는데 그건 거의 폭탄이다. 그런 일은 겪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실습은 며칠간 계속되었다. 오전에 와서 일하고 점심 먹고 오후에 일하고 퇴근하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출근하는 식이었다. 고래 실험동에서 반복되는 실습은 여간 지치는 일이 아니었다. '수의사 되려고 했지 동물 잡으려고 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많은 병리학자들이나 해부학자들이나 공중보건 쪽에서 일하는 수의사들도 많이 하는 고민 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죽음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결국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꺼림칙한 생각들을 지우기는 어려웠지만. '그들은 왜 죽어서 여기 누워있을까? 오래오래 살다가 자연사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긴 했다.
무엇이 그들을 죽였을까? 안 죽을 수는 없을까?
고래들은 고기 잡겠다고 쳐놓은 그물에 걸려서 질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또 바다에 버려진 폐기물도 그들을 괴롭힌다. 멋지게 헤엄치기에는 바다에 너무도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식용으로 파는 고래들은 로또라고 불릴 가치 있다. 하지만 부수어획되는 돌고래나 상괭이들은 어디에 갖다 팔 수도 없어서 결국 그들의 죽음은 어부에게도 득보다는 실이 많다. 죽음의 문턱에서 막혀오는 숨에 몸부림쳤을 생명체도, 그 몸짓에 찢어진 그물을 보며 망연자실하는 어부의 모습도 모두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실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버스에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먹는 수산물들도 내가 버리는 쓰레기들도 부끄러움에 한몫했겠지마는. 사실 온 피부에서 진동하는 비린 냄새가 부끄러웠다. 특히 첫날에는 냄새가 더 심했다. 나야 실습 며칠 더하면 이런 냄새들에는 곧 적응되겠지만, 이렇게 냄새가 나서 주변 사람들이 피할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왠지 내 주변에 앉질 았았다. 한산한 노선이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퇴근길 2호선에 탔더라면 정말.. 큰 일이었을 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좋아하던 파란 티셔츠를 봉투에 싸서 버렸다. 아마 바지도 버렸던 것 같다. 늘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하늘색 줄무늬 짧은 반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