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실습이 거의 마무리될 때 즈음이었다. 실습에 참여한 학생들과 실습을 이끌었던 연구원들이 모였다. 아마도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며칠간 이어진 강행군에 실습생들끼리 정이 들기도 했다. 센터 직원들은 다들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걸 사주시겠다고 했고 나는 뭘 먹으려나 궁금했다. 주변에는 울산 항만청도 있고 수산청도 있고, 해양환경공단, 해경 파출소까지 있다. 직장인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맛집이 많기 마련 이래서 기대가 컸다. 장생포의 고래로에도 당연히 점심 한 끼 먹기 괜찮은 로컬 밥집들이 많았다. 횟집에서 모인다는 말에 왠지 신이 났었다. 회 코스 대신에 회덮밥을 먹은 건 약간 아쉬웠다만 나름 괜찮았다. 해부 실습하고 나서 회를 먹으러 오는 게 약간 비리긴 했지만 말이다.
밥을 먹는 동안 테이블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왜 우리는 이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로 향했다. 살면서 우리나라 앞바다에서 고래나 돌고래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한 번 보기가 힘든 생물들인데 어떻게 겨우 고기 잡는 그물에 걸려 죽는단 말인가? 그런 궁금증을 누가 물어보면 누군가 답을 공유해 주었다. 당시 나는 어업을 잘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어업의 이미지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영상들의 파편이었다. 어업 하면 그물을 쳐서 고기떼를 잡아 올리는 선망이나 흔히 생각하는 낚시가 떠올랐다. 고래가 그물에 들어오면 그물 풀어주면 되는 거 아닌가? 낚시 줄 자르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와중에 해양포유류가 정치망이나 자망에 많이 걸린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그 또한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바다에 미로처럼 쳐놓고 물고기가 들어오는 어법에 고래가 걸린다고? 당시 내가 아는 정치망은 남해안 바다에 마구 꽂혀있는 대나무들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 그 커다란 고래가 걸려 죽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돌고래의 경우 더욱더. 조그마니까 거기에 있다가 풀어주면 그만 아닌가. 정치망도 크기가 다양하고 매일 체크를 하지 않으니 폐로 호흡하는 해양포유류들의 특성상 어구에 감겨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질식사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 설명은 왠지 충격적이었다.
숨을 못 쉬어서 죽는 건 너무 끔찍했다. 수영을 하면서 실수로 코로 물이 한 번들어가도 컥컥 난리가 나는데, 폐에 물이 차서 아예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바다의 주인처럼 날아다니던 애들이 겨우 어구 때문에 죽다니.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고래잡이를 위한 것도 아닌 그물에 걸려 죽다니.
고래를 사냥하던 과거를 생각해 보자. 과거에는 고래 고기를 먹거나 기름과 향수의 원료를 얻기 위해서 고래를 쫓았다. 우리 반구대 암각화에도 고래사냥의 흔적이 있으니 아주 오래된 일이다. 근현대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배를 점점 멋지게 건조할 수 있게 되고 사냥법에 노하우가 생겼다. 고래를 잡기 위한 포경선이 먼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기술을 얻으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고래를 포획했고 그들의 개체수는 급감했다.
국내에서는 관련된 정책들이 계속해서 수정되며, 고래 연구센터에서는 고래가 혼획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들을 시험하거나 개발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는 국제포경위원회가 생기면서 고래 자원의 수의 급감을 막고자 했다. 개체 수가 어느 정도 돌아오지 않는 이상 고래잡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위원회가 제시한 방향이다. 거기에 예외는 전통적으로 고래를 잡는 미국의 알래스카의 원주민에 일부 쿼터를 주고, 아이슬란드에 일부 쿼터를 준다. 일본*은 과학적 포경만을 한다고 하며 우리나라는 포경은 금지되나 전통적으로 고래를 먹어왔기 때문에 비의도적으로 잡힌 고래는 팔 수 있게 했다.
* 당시에는 과학적 목적으로만 포경한다고 밝혀왔으나 이후 상업적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음
연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생소한 분야라 더 신기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물고기는 사료를 잘 맥이고 아프면 집단적으로 치료하며, 심각한 바이러스성 질병은 거의 손쓸 수가 없다던가 물고기가 수술대에 눕는 일은 아주 비싼 드래곤 피시 정도 아니면 어렵다는 배경 지식만을 쌓아왔다. 치료 목적 너머에도 많은 일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 그 무엇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실체가 궁금했다. 해양의 특정 생물종에 대한 국내외의 정책들이 다양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얻었던 실습이 끝나갔다.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래 연구센터의 앞에 있는 고래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그 지역은 한때 고래사냥으로 유명했지만 고래의 고향이나 웨일와칭이 유명한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