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수의대 나와서 왜 사무관이 되었냐?

by 서민혜

수의대 나와서 왜 사무관이 되었냐?

"수의대를 나왔어? 그런데 왜 진로를 이렇게 정했어?"라는 질문은 족히 백번은 받은 것 같다. 지겹도록 받는 그 질문은 사실 초면에 물어보기에 좋은 주제이니 상대방도 예의상 건넨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요상한 경력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꼈다. 들을 때마다 왠지 멋진 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질문이 나오면 상대방이 일일 면접관처럼 느껴진다. 같은 공무원이나 친구, 대학동기라면 그냥 하는 거지 뭐, 하다 보니 이렇게 돼버렸다고 대충 대답하고 말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직종에 계신 분들을 만나거나 좀 손윗사람에게는 정돈된 답을 해야 하니 부담스러웠다.



후속 질문도 있다. 어찌해 볼 만한지? 전문직으로 가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지. 특히나 경제적으로 동물병원 개업이 훨씬 좋지 않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상황에 따라 다른데, 저는 실습만 여기저기서 해봤는데 제게는 이 직장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라던가 공무원으로서 일하면 다루는 분야가 넓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시야가 넓어지는 게 재미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조금 위트를 발휘하고 싶을 때는 가슴속에는 늘 사표와 면허증을 가지고 다닌다고 하거나..



너무 면접 답변 같지만 어쩔 수없다 같은 질문 백번 들으면 아무래도 답변이 좀 다듬어진다. 거의 봇이다. 내 진심은 뭘까? 스스로에게 오랜만에 물어보자면 아무래도 가지 않은 길은 늘 아쉬운 게 사실이다. 임상하는 동기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은 공직자로서의 일이 훨씬 재밌는 것 같다. 물론 다양한 단점들과 난관도 있다.



일을 시작하고 2년 차였다. 내가 담당하는 제도였던 금어기와 금지체장에 헌법소원이 들어왔다. 제도 자체는 작은 물고기들을 잡지 못하게 하거나 산란기의 어미물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하여서 우리 자연과 환경을 보전하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어떤 어업인들의 경우에는 작은 물고기를 주로 잡기도 한다. 아니면 여러 잡어들을 잡아다가 갈아서 사료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우리가 시장에서 국물용으로 사는 조그만 말린 고기들도 새끼인 경우들이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당시 담당하던 이 규제가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공문을 봤을 때 조금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들을 보니 왕왕 어업규제가 너무 불합리하지 않으냐는 헌법소원들이 들어온 전례들이 있었다. 나는 헌법재판소에 우리 의견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이 파도처럼 밀려들던 시기라 사무실에 앉아있을 시간이 많이 없었다. 지역 설명회를 정말 많이 다녔고 국회도 많이 갔다.



법원에 들락거리는 업무나 헌법소원 같은 것들은 신경이 많이 쓰이긴 하는데 급하게 진행되는 다른 업무들에 비해서 텀이 좀 긴 일이라 그 일은 일의 우선순위가 자꾸 밀렸다. 차분히 준비하고 정확하게 의견을 서술해서 제삼자가 잘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업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업무였다만 급하지는 않고...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는 시점에 아침 일찍 나가서 그럼에도 수산자원을 지키기 위한 어업규제는 필요함을 주장하는 의견을 쓰고 있었다. 혼자 앉아서 차분하게 뭘 쓰는 건 오랜만이라 생각하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회사 선배하나가 쓱 지나가다 멈춰 섰다.



"이렇게 일찍 왜?"



"아 출장 있어서.. 뭐 하나 해놓고 가야 할 게 있어서요."



사실 나는 야근파보다는 아침파이기 때문이라 일을 아침으로 미뤄 둔 것이었다. 왜냐면 야근한다고 남아있으면 내 입장에서는 급하지 않은 일인데 남들이 급하다며 재촉하는 일들을 우선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자리에 없으면 내일 받을 자료를 지금 달라고 한다거나. 그러면 정작 내가 남아서 하고자 하는 일은 못하고 시간만 간다. 그때는 초임이라 업무 요령이 없으니 누가 달라는 자료는 정말 급한 것인가 보다! 하고 거기에 집중을 많이 했다.



"바쁘다 바빠. 그만둘 거라면.. 일 년이라도 빨리 개업을 해..!" 선배는 조용히 속삭이고는 사라졌다.



그냥 웃어 넘기기엔 왠지 그 선배도 일이 많아서 아침에 일찍 나온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에게 속삭이고 떠난 그의 뒷자리가 휑하게 느껴졌다. 공유재인 수산자원을 관리하는 것이 어쩌고 저쩌고라고 적혀있는 컴퓨터의 한글 문서와 내가 빈 사무실에 남겨진 것 같아 왠지 으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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