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로 탐색기

by 서민혜

이번 글에서는 내가 왜 이 직장을 택했는지? 에 대한 질문에 듣기 좋은 대답 대신 진솔한 의사선택 과정을 써보고자 한다. 고민의 기로에 서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생각보다 내게는 거창한 이유가 없었지만 어떤 삶의 경로로 나는 우당탕탕 굴러가고 있다. 나 자신도 예전을 한번 떠올려보고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보통의 대학생들과 같이 나의 대학 시절은 자유가 주는 즐거움과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 사이를 자주 오갔다. 예과 2년, 본과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예과 때는 다양하게 동아리도 해보고 놀 수 있는 만큼 논다. 그러다 본과 일 학년, 이학년 때는 지옥 같은 시험 스케줄에 치이고, 삼사 학년 때는 조금 할랑해졌다가 국시 준비할 때 바빠졌다. 적고 보니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내게는 저게 세상의 전부였다.



학교를 다니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민은 깊어졌다. 나중에 무엇을 할까?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는 나의 미래 모습은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수의사였다. 혼자든 선후배 동기와 같이든 개업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어딘가 좋은 동물병원에 취직을 하면 어떨지도 고민했다. 다른 동기들을 봐도 보통 20대 초중반의 친구들이 개업을 바로 하기는 어려우니 선배들 있다는 곳 아니면 유명한 곳들에서 일을 좀 배우고 이후에 개업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동물병원이 아니라면 동물원, 야생동물 수의사, 수의직 공무원, 연구, 해외 수의사 등등 다양한 선택지도 많았다.



동물을 진료하는 임상이 아니라면 면허를 딴 이후에 수의직 공무원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연구 쪽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의료나 보건계통은 보이는 전형적인 직업의 이미지가 강렬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길이 있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동물병원 관련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제약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수의사 신문을 만들거나 수의사회에서 일하는 경우 등등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조차 생각해보지 않은 곳들로 사람들은 힘차게 뻗어나갔다.



그 시절의 나는 빨리 독립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요즘 경제적 독립은 빨리 벌어서 회사에 종속되지 않고 빠르게 퇴사하고 자유롭게 살자는 뜻이다만 그때 나는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경제적 독립이 우선이었다. 그런 내게 학창 시절 6년은 조금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도 마음속에 못난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수의사로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임상이든 공무원이든 국시를 보고 면허증이 있어야 할 수 있어서 시간은 꼼짝없이 내게 제약 조건이었다. 학생 신분으로는 도전해 볼 수 없는 많은 일들은 내게 그림의 떡이었다. 나는 미래를 졸업 후로 미뤄야 하는 게 답답했다.



어느 날 한 교수님이 수업 중에 별안간 연구 예산을 담당하는 사무관들의 기개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학생들도 공직에 진출하면 개인적인 성취감도 있고 사회적인 공헌도 할 수 있으니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그 후로도 교수님은 수업 시간마다 열변을 토했던 것 같다. 다양한 곳으로 진출해야지 이놈의 학생들..! 잔소리가 엄청났지만 직접 겪어본 직장이 아니고 우리 선배들 중에 거기서 일한다는 분도 없으니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날 교수님께서 직접 사무관 한 분을 학교로 초빙했을 때 마냥 멀게만 느껴졌던 공직이 어쩌면 졸업 전에 유일하게 시도해 볼 만한 일이구나 싶었다. 한국인이고, 일정 나이 이하이고, 토익과 한국사를 미리 준비한다면 면허라던가 다른 조건은 필요 없다니!



그때부터 미래 진로의 유력한 후보는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할 열정은 잘 생기질 않았다. 이유는 자신감과 추진력의 부족이었다. 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일을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보험을 핑계 삼아 스스로의 게으름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양한 실습을 해보면서 안 맞는 것들을 룰아웃해 나갔다. 소동물 임상과 공무원 두 가지 정도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 같았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봐야겠다 생각한 이후에도 계속 미뤘다. 본 1, 본 2는 바쁘니까 3, 4학년 때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해야겠다거나 3학년 때 본시험에는 수산직이 안 떴으니까 하는 변명들로 준비를 계속 미뤘다.



하필 시험준비를 이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학과 일정이 여유로워진 3학년때는 수산직을 뽑지 않아서, 시험에 응시할 수가 없었다. 벌써 책도 몇 권 샀는데 안되려나 싶었다. 사이버 국가고시센터라는 공무원 채용 등과 관련된 자료들이 올라오는 사이트를 참새방앗간 마냥 들락날락했다. 다른 직렬들도 찬찬히 살펴보면서, 비록 이번에 수산직으로 응시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직렬을 선택하면 어떨지 고민했다. 특히, 서술형이었던 이차 과목들의 문제들을 쭉 뽑아놓고 고민했다.



행정직 과목들은 살펴보니 택도 없었다. 관련 수업들을 하나도 듣지 않은 나는 모든 과목들을 새로 공부해야 했는데 시간 상 어려워 보였다. 기술직도 다양한 직렬이 있으니 2차 과목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면서 공부할만한지 아닌 지를 고민했다. 내가 접근할 만한 직렬은 환경직과 수산직 두 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수산직 2차 과목은 생물학과 해양학을 포함하니 좀 더 접근하기 쉬워 보였다. 그럼에도 커뮤니티가 없다 보니 공부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에 시험이 됐다는 사람이 없으니 감도 영 없었다.



그래서 수산직 선발이 없던 2015년 시험에는 1차 시험이었던 PSAT를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당시 제일 많이 뽑는 직렬로 우선 시험을 봤고 1차 시험에 덜컥 붙었다. 한번 1차 시험장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응시한 시험이었지만 결과가 좋으니 다음 해에는 잘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차 고사장에도 가볼까 생각했지만 토목직을 이제 와서 공부할 수 없었기에 2차 시험은 보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시험을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을 텐데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거기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1차도 괜히 봤다 싶었다. 제대로 하지도 않을 거면서 누군가의 자리를 뺏은 것처럼 느껴졌다. 지쳐 보이는 공시생들 사이에서 진지해 보이지 않는 내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이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이유였다. 면접 때나 가끔 대학교 멘토링 같은 데서 불러서 왜 준비했냐 어떻게 준비했냐 물어보면 나름 의미를 부여해서 설명했다. 실상은.. 별게 없는 것 같다. 청운의 꿈같은 걸 꾸기에는 직업에 대해 잘 몰랐고 무작정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시험에 응시할 조건이 되고 시험을 준비할 여유가 좀 있는 시기가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밥줄을 찾아버렸다만 즐겁게 좋아할 만한 일을 찾은 건 어쩌면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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