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연구센터는 울산에 있다. 내 고향 울산. 울산 출신의 지인들은 왠지 모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울부심. 현대의 고장 울산.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울산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 관련자라는 점을 재밌게 얘기했었다. 와중에 나는 현대 관련자가 아니라는 점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었다. 현대자동차 다니는 아버지가 벌어오는 다달이 일정한 월급에 가정주부 엄마, 목재로 된 가구들, 그리고 그걸 덮어 높은 레이스 천들. 뭐 그런 것들을 좀 부러워했었던 것 같다.
고대하던 실습에 가기 위해서 나는 꽤나 분주했다. 장생포에 위치한 고래연구센터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서 바다 쪽으로 쭉 가야 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공단이 줄지어있다. 현대 중공업인지 현대자동차인지 SK에너지인지 S-oil인지 왠지 가까이 가면 철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공장 건물들을 보면서 한참 간다. 가다 보면 나라 사랑 안전제일 뭐 그런 표어도 많이 붙어있다. 날씨 덥고 짠내 나지만 새로운 실습지에 가는 게 설렜다. 그 길이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파란색의 모자 달린 티를 입은 자기가 다 자란 줄 알던 애송이는 늦지 않으려 부지런히 길을 떠나고 있었다.
인구 백만의 도시 울산이지만 동구 쪽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한산했다. 창 밖의 풍경은 계속 공단 같다가 어느 순간 어촌 마을의 고즈넉함을 풍겼다가 관광지의 활기로 가득 찼다. 긴 이동시간 동안 할 일 없이 밖을 보며 멍 때리던 와중 누군가 "저기 혹시 고래연구센터 가세요?"라며 물었다.
버스에서 고래센터에 가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나는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어. 그런데요??"
"저도!" 물어본 쪽도 반가운 듯 말했다.
버스에서 실습에 가는 다른 학생을 만난 듯했다. 해양생물에 관심 있는 수의대 학생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아무래도 수의사의 꽃은 임상, 그중에서도 소동물이라 그런가, 마이너는 마이너를 알아보는 법인지. 우연한 만남이 반가웠다.
"여기 가본 적 있으세요?"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쾌활하게 말했다.
"장생포요? 저는 울산 살아서 몇 번 가봤어요." 내가 대답했고 나는 이야기하는 동안 그분의 쾌활함이 예뻐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 고래실습이요!" 질문을 정정했고,
"실습은 처음이에요." 나는 대답을 정정했다. 통성명을 했던가? 그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저는 세 번째로 왔어요." 나는 여러 번 그곳에 실습하러 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세 번이나 올만한가요?? 다른데도 가볼 데 많은데 왜.. 저는 여기저기 다 가보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대학생의 방학은 시작할 땐 길지만 끝날 때 즈음에는 짧게 느껴진다. 또 학기 중에는 하기 어려운 다양한 실습들을 한 번 하면 방학이 훅 지난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그것도 세 번이나 고래연구센터를 여러 번 오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했다. 나는 소동물 지역병원, 소동물 대학병원, 대동물, 연구실, 백신회사 등등 여러 군데 다 실습을 돌아보고 싶었다. 빨리 졸업은 하고 싶은데, 학년이 올라가고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까웠다. 시간에 쪼들려 산 것에 대한 보상으로 졸업 즈음엔 다양한 곳에서 실습을 했지만 오히려 모든 곳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갈 곳을 잃어버렸다.
"아 저는 석사하고 있어요. 지금은 고래 기생충 좀 보러 온 거예요."
그렇군요. 신기하네요. 기생충실이에요 아니면 어류실인가요?? 석사는 얼마동안하나요. 그런 질문들을 잔뜩 던졌다. 지금 와서는 세세한 대화는 희미해졌지만, K-POP 아이돌 같이 예쁘게 생겼던.. 그 언니가 돌고래의 폐와 간을 쥐고 기생충을 찾겠다고 조직을 짜내고, 찾았다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 선명한 열정에 제법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