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 실습과 그곳에서의 대화는 나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살다 보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오래 떠오를 때가 있지 않는가? 고래고기 집 딸내미가 고래고기 파는 게 나쁘냐고 물어봤다는 그 순간이 내게는 오래도록 남았다. 하지만 어떤 게 정답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또 고래를 만났던 몇 번의 순간들도 내게는 소중하다. 한국에 살면서 바다에 자주 가면 고래를 볼 기회가 왕왕 생긴다. 나는 제주도의 석양을 배경으로 윈드서핑을 하며 돌고래 떼를 봤고 (제법 멋지게 들리지만 제주대학교의 계절학기 수업이었다.), 사천 앞바다의 수산시장에 회를 먹으러 갔다가 웃는 고래 상괭이들도 먼발치에서 만났다. 살아서 움직이고 숨을 쉬는 것이 우주에서는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고 하지만 왠지 그들은 헤엄치며 뛰노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이 예쁜 동물을 해부실에서 만나는 게 못내 아쉬웠다.
고래 실습 때도 그랬고 수의대를 다니면서 해부 실습을 할 때면 이런 일련의 과정과 여기서 배우는 것들이 결국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의술을 배우기 위함이라도 이들의 죽음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많은 개체들에 실험을 해서 익숙해질 수도 없다. 수의대 학생 때는 정말 다양하게 개, 소, 돼지, 닭 정도 해부 실습을 해볼 수 있었다. 농장에서 병에 걸려서 왔다던 돼지도, 더 이상 승마용으로 일하기도 어렵게 늙어버렸다는 말도. 학교를 다니면서 접해볼 수 있었다.
가장 본격적으로 해부학 실습에 들어갔던 때는 본과 일 학년 때였다. 개 해부 실습 첫날에는 잠도 안 왔다. 그러다가 한 학기 정도 실습하니 적응이 되었다. 소름 돋게도 우리는 해부하면서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상의했다. 처음에는 역하게 느껴졌던 해부 실습이 익숙해지는 모습이 어색했고 무뎌지는 것도 왠지 싫었다. 하지만 나는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래해부 실습생 모집 공고가 올라왔을 때 나는 기꺼이 참여하고 싶었다. 흔하지 않은 경험이고, 왠지 새로운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해양생물들과 부대끼는 경험이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테지만.
먼 길을 돌아 고래연구센터에 도착했을 때 고래 박사님들은 해부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 브리핑을 했다. 강연을 했던 분은 열정적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모여 앉아서 저 미지의 생명체를 어떻게 해부하는지 배웠다. 해부 진행과정에 따라서 서류에 정확한 내용을 기입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임무였다. 사실상 부검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돌고래나 상괭이들의 경우에는 의도적인 어획이 아니라 어업을 하는 과정에 부수적으로 혼획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식용이 가능한 종류의 고래들은 불법으로 포획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검 과정에서 사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했고, 그 방법을 실습 때 배웠다. 신기했다. 혼획된 고래가 있으면 고래 박사님들은 출장을 가서 확인하기도 한단다.
지침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나를 포함한 실습생들은 흰색의 비닐 소재로 된 옷을 입었다. 모자를 써서 머리도 감싸고 마스크도 꼈다. 긴바지의 밑단은 고무로 발목 부분을 잘 감싸주었다. 거기에 장화까지 신었다. 마치 전투복으로 갈아입는 느낌이었다. 옷 안에 갇힌 공기가 더웠다. 옷을 갈아입고는 부검을 진행할 해부실로 이동했다. 실험동은 외부로 이동해야 했다. 바깥공기 역시 더웠다. 우리가 해부를 진행하는 곳은 밖에서 보기에 규모가 좀 있는 공간이었다. 안에는 해부의 대상이 될 돌고래들과 상괭이들이 있겠거니 예상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문 앞에 실습생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고래 연구소 옆에는 박물관이 있기 때문에 관광을 온 사람들도 왕왕 보였다. 고래 모양의 조형물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짠내 나는 바다를 앞에 두고 실험동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밀려 나왔다. 밀려 나온 냄새는 초짜 실습생도 뭔가 잘못되었다 싶은 역한 냄새였다. 그리고 이 냄새는 이 전에도 맡았던 적이 있었다. 죽어 부패하는 냄새였다. 보통 해부학 실습 때 동물 한 마리의 사체로 한 학기 정도 실습을 한다. 아무리 포르말린 전처리를 잘해도 학기 말쯤에는 뭔가 상해 가는 그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저온처리를 했다 꺼냈다 하는 과정에서 부패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편한 느낌을 애써 지워보려 했지만 냄새는 너무 독했다. '해양생물이라 그런가. 비린내가 너무 심하네.. 이거 실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