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원GONGWON Aug 14. 2021

휴롬같은 사람.

타 직장 동료 A와 B는 왜 날 만날까. #2

어느덧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곰장어가 먹고 싶다고 한 A의 추천으로 오래된 곰장어집을 찾았다. 술에 꽤 진심인 A의 안성맞춤 맛집이다. 


곰장어집에 오기 전 우리는 매운 등갈비찜으로 화끈하게 배를 채웠다. 딸꾹질이 날 정도로 매운 기운이 입안을 감돌 땐 시원한 맥주 한 모금으로 가라앉혔다. 남은 양념엔 코리안 디저트인 치즈 볶음밥으로 마무리했다.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A는 행복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들며 말한다.


"오랜만에 B하구 너 하구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

"나두! 넘 좋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내일 화장실 갈 각오로 전투적으로 먹었다. (다행히도 속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곰장어집에 들어섰다. 요즘은 쉬이 볼 수 없는 오래된 미닫이문을 열자 연탄 내음과 함께 벽에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으레 옛날 술집에 가면 볼 수 있는 알 수 없는 낙서들과 유명인의 사진과 사인들이 있다.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여기 찐 맛집인가 보다!"

"이런 곳이 정말 맛집이지."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곰장어와 함께 A는 소주를, B와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첫 잔은 코리안 칵테일로 시작한다. 한 모금 들이키고 잔을 내려놓았다. 이날 유달리 B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다이어트한다더니 진짜 얼굴 좋아졌다!"

"그러게, 얼굴도 뽀애지고, 턱선도 살아나고."

"그런가?"


B는 다이어트한다고 매일 풀만 먹는다고 했다. 역시 식단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얼굴도 환해지고, 턱선이 살아났다. 새삼 내 뱃살에 손을 대 보지만, 방금 전까지 먹은 음식의 추억과 이제 불판 위에 놓이는 곰장어의 꿀렁임을 보며 다이어트는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불꽃이 일렁이는 불판 위로 곰장어가 익어가고, 우리의 분위기도 제법 무르익어갔다. 나는 맥주잔을 살짝 흔들며 운을 띄었다. 


"내가 얼마 전에 나를 왜 만나는지에 대해 물어봤었잖아.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될까?"

A는 골똘히 생각한 뒤 입을 뗐다.


"일단 너는 휴롬 같은 사람이야. 내가 요즘 휴롬이 꽂혀서 그런지 떠오르는 느낌이 휴롬 같다는 거야."


휴롬 같다라니, 새로운 비유였다.


"휴롬은 사과를 넣으면 사과주스가 나오잖아. 근데 사과를 넣었는데, 당근주스를 원하는 사람이 있어. 나는 사과를 넣어서 사과주스를 내놓은 건데 당근주스가 안 나온다고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그렇게 배배 꼬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래서 어느 순간 나도 그렇게 순수하게 사람 보는 걸 잃어버린 것 같은데, 너를 보면 예전에 일하던 첫 직장 사람들과 하하호호 일하던 때가 떠올랐어."


A는 '중고 신입'이었다.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이전에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고자 지금까지 쌓은 경력을 포기하고 한 중견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였다. 전 직장은 규모가 작고 업무강도는 높았지만, 같이 일한 사람들과 돈독했다. 작년에 전 직장 사람들과 같이 여행도 다녀왔다고 한다.


"그때는 열정 페이란 단어도 모르면서 일을 했지만, 사과를 넣으면 사과주스가 나왔어. 한결같이. 사람들과 순수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 너를 보면 그때가 떠올라."


A는 상기된 얼굴로 비스듬히 고개를 들었다. A의 눈은 그때의 기억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야기하다 보면 순수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아. 나도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참 재밌게 다녔는데, 지금 다니는 직장은 잘 모르겠어. 전보다는 회사 규모가 커지고 월급도 더 받긴 하는데,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데도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고. 그래서인지 이렇게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지."


B도 A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B는 지금의 직장에 경력직으로 일하고 있다. 연봉이나 복리후생 같은 현실적인 부분은 이전 직장보다 나아졌지만, 삶의 질은 낮아진 것 같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만족도가 더 높은 것이었다. 나 역시도 공감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유대감 조차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고, 지금처럼 오랜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가운 사람도 있다. 만나고 싶은 좋은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닐까. 


다만, 좋은 사람이더라도 분명 아쉬운 점이 있으리라. 나는 사람을 만나다가 행여 내가 불편함을 주거나 아쉬움을 줬으면 어쩌나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이 늘 좋은 이야기만 들을 순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게 있지 않아?"


내 질문에 B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사람 앞에 두고 어떻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해."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그렇긴 하지. 근데 그래도 어떻게 좋은 말만 듣고 살아."


나의 말에 B는 골똘히 생각하다 A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배려가 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


B의 말에 A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굉장한 긍정의 표정이었다.


"어, 맞어. 배려가 너무 과해. 과잉 친절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정도의 배려심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베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종의 고마움이자 미안함 같은 것이었다. 오늘 만난 A와 B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내가 지금까지 가져온 그 '믿음'은 사회에 나선 지금, 모든 이에게 통용되지 않는 듯했다.


"지나친 과잉친절이 독이 될 수도 있어. 사람들이 그걸 당연시 여기고 널 우습게 볼 수도 있다니까."

"넌 날 너무 애기로 보는 것 같아."

"어우, 이런 과잉 친절 너무 불편해요. 안 해주셔도 돼요."


몇몇 이들의 말했던 '과잉 친절"이라는 말을 선뜻 납득할 수 없었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배려심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었다. 내가 했던 말에 혹여나 상대방이 불편하진 않았을까, 그때 내가 그 행동을 왜 했을까 나 자신을 자책하고,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사소한 것에도 필요 이상의 배려를 행하기도 했다. 난 이 배려를 자연스럽게 받아주길 바랬다. 하지만 날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 배려가 때론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어느 누구의 말처럼 결국, 내 마음 편하고자 행한 친절이지 않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순수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