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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 A MI Oct 31. 2020

언제나 여행 드로잉

여행 드로잉의 지속

"여행 좋아하세요?" "그럼요."

"여행 자주 하세요?" "1년에 1번이나 2번이죠 뭐."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에 있어 특이점 없는 평범한 여행자 중 하나다. 열심히 여행하기 위해 자금을 조금씩 모아두다 잠깐 다녀오는 여행이기에, 여행지에 다녀온 후에 탕진한 돈은 늘 크게 느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는 설렘과 장면들에 허무했다.

늘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당장의 즐거움을 빼고 남는 건 무엇일까.

일상에서 여행을 꿈꾸거나 여행을 반추하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왜 기를 쓰고 사진을 찍어서 남겨두려고 하는 것일까.

남겨둔 기억과 사진은 앞으로의 일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걸까.

추억과 일상은 분리되는 것일까 아니면 녹아있는 것일까.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추억을 들여다보니까,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은 잘 모를 그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서 여행 드로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쌓여가는 여행 사진 폴더들

드로잉을 스캔받고, 장소에서 순간순간 그렸다는 기록의 사진을 고르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글도 쓰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대한 감상은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여행지마다의 추억은 누구나 다를 테니까, 그렇다면 그때의 추억과 여행지에서 얻은 감정들을 써보자.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진첩처럼 드로잉 모음집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드로잉을 들여다볼수록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때의 감정이 생생히 떠올라 놀랐다. 문득 그림 그리던 장면이 짧은 영상처럼 스치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말을 남기게 되어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여행이 주는 가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답을 찾진 못했다.  


견문이 넓어지는 것도 맞고, 다름을 인정할 줄도 알게 되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여유로움을 느끼며 숨을 돌렸고, 낯선 곳에서의 호기심과 익숙한 곳에 대한 그리움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서있던 곳에서 끙끙 앓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버틸만한 시련이었다는 것도 알았고, 때때로 별 거 아니었구나 하고 작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다음 일을 걱정하며 지내던 자세에서 순간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하며 지내기도 했으며, 지금 눈 앞에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항상 의문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예전보다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크게 달라지는 일없이 다음 여행에서도 또 비슷한 감정들을 느낀다. 지금 느낀 좋은 감정들을 앉고 돌아가면,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마음이 되풀이되면서 여행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항상 마음에 ‘숙제’를 안고 있었구나.

드로잉 속에 느꼈던 감정들이 결국은 비슷했던 것이다.


나는 결국, 여행 중에도 마음속은 치열했고, 펜을 들기 시작했던 것도 추억을 위한 행위라기보다 마음의 정화를 위한 행위에 가까웠던 것이다, 드로잉북을 정리하면서 여행을 다닐 때보다 훨씬 자신의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다고, 그린 그림들을 남들한테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보다 마음 정리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 진심을 알고 나니 결국 에세이북이 되었다.


앞서 대화를 다시 이어보자.

"어디로 여행가요?"

"이번에 서유럽 쪽이요."

"아, 서유럽 좋죠. 어디 가면 좋고, 거기도 맛있고, 쇼핑은 저기죠.."

"저는 패키지로 가서 거긴 못 들려요."

"아.. 그래요.."

패키지여행은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패키지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주 이용하던 사람들이었고 나름의 여행 관도 있어 그 틀 안에서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자유여행에서는 자유여행만의 매력이 있는 것처럼 패키지여행에서도 패키지여행만의 매력이 있다. 자유여행에서는 내가 짜 놓은 동선마다 드로잉이 흔적으로 남고, 여유가 있으면서도 변수가 많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여행사가 짜 놓은 동선 중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흔적이 남고, 여유가 많진 않지만 변수는 적다.  비록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라고 말해지는 패키지여행이지만, 내 나름의 루틴이 존재했고 드로잉과 함께 하며 즐기겠노라 하는 여행관으로 여행은 풍성해질 수 있었다. 이로써 패키지여행에 대한 견해도, 드로잉에 대한 견해도 달라지게 되었다. 빠른 어반 스케치의 중요성과 순간의 감성의 소중함, 그리고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에티켓과 기쁨, 자유가 주어졌을 때의 반복되는 행동들과 행복.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한다. 한 번의 여행이,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고, 여행을 추억하는 것이 단지 과거로 돌아가거나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정해진 일정 속에서 간간히 자유를 느꼈으며, 답답함이 아니라 편안한 여행을 즐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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