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남편은 일터로, 아이 셋은 학교로 향하고 나면
긴 육아기간 동안 오매불망 기다리던 ‘나 혼자만의 시간’이 드디어 찾아옵니다.
'대한독립만세! 라도 외쳐야 할 상황인데. 왜 이리 내 마음이 가라앉지?'
납덩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끌어올리려고 애써도 자꾸 아래로만 가라앉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반갑지 않은 변화들
언제부터인지 작은 상처가 나면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얼마 전 피검사로 생긴 멍도 아직도 퍼렇게 남아있어요.
"이제 피부 재생 능력이 떨어질 나이야."
팔뚝의 멍을 보여주자,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남편.
(어휴, 나도 알고 있거든요!)
아, 그리고 흰머리, 이제 손으로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을 지나버렸어요. 염색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몸무게는 어떤가요. 숫자가 야금야금 올라가고 있고, 이대로 그냥 두면 앞자리가 바뀌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남편의 배도 점점 앞으로 나오는 게 보여서 걱정스럽고요. 우리 부부에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건강경고등이 켜진 것도 불안합니다. 남편의 지인들 중엔 백혈병, 뇌출혈, 심장질환, 간암으로 벌써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심장이 쿵.
말도 안 돼. 겨우 50대 초에?
'왜? 다들 열심히 살아왔는데, 건강하지 않은 몸만 남은 걸까?' 속상함과 허탈함이 밀려옵니다.
이렇게 잽잽! 을 수시로 날리며 달려드는 헛헛함을 그냥 두다간 갱년기 우울이 훅! 하고 덮칠 것 같아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낯선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데다, 외곽으로의 이사와 팬데믹이 연달아 겹치며 사람들과의 연결도 끊기고, 본의 아니게 일을 쉰 시간도 일 년을 넘어가자 자신감도 덩달아 고공낙하 중입니다.
'나,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써줄까?'
이런 질문이 자꾸 마음속을 맴을 돕니다.
비타민 B, D, 유산균… 안 먹던 건강 보조제도 하나둘 늘었어요. 별일 안 했는데도 쉽게 지치고, 가끔은 며칠씩 소화가 안 되기도, 가까운 글씨가 흐려져 보이고, 바늘귀에 실 넣기도 어려워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녁 운전은 더 이상 편하지 않고요. 기억력도 눈에 띄게 나빠져서, '가만, 내가 이층에 왜 올라왔더라?' 스스로에게 묻는 내가 무서울 때도 있어요. 뇌가 너무 빨리 퇴화하는 중인가 싶어서요.
제게 일어나는 이 변화들이 너무 낯설고,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든가 봅니다.
게다가, 덜컥 실직한 가장이 되어 도서관에 출근 중인 친척소식,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는 하던 가게를 접었다고 하고, "공황장애와 불안증이 생겨서 약을 먹어야 기차를 탈 수 있었어." 라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간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려줍니다.
다들 살아내느라 아슬아슬한 이런저런 현실들도 저에게 자꾸 겁을 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다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며, 저를 일으키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우울해하고 움츠려있기엔 저에게 주어진 이 한 번의 삶이,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니까요.
몸도 마음도 전보다 느려졌지만, 그 속도를 인정하며 저에게 맞는 방식으로 중년의 시간대를 지혜롭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중년의 삶은 끝이 아니라, 우리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작이기에—
이 글이 당신이 자신만의 속도로 후반전을 준비해 나가는 데 작은 동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표지 그림은 시골출신의 늦깎이 풍경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시골소녀]입니다. 그가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는 것, 오랜 무명생활을 견디면서도 자기만의 길, 화풍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했던 그의 삶이 제게 다시 시작할 용기와 함께 깊은 울림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