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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부터 독립심을 키우는 호주부모들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by 진그림


호주에 살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이 나라가 얼마나 이른 시기부터 아이들의 독립심을 자연스럽게 길러주는지 자주 목격하게 된다. 앉을 수 있는 아기가 되면 베이비체어에 앉혀 떠먹여 주거나, 손에 먹을 것을 쥐여 가족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히는 장면은 일상적이다. 처음에는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진 아기 음식물과 빵조각들이 여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저걸 저렇게 둬도 되나’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 부모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아이가 스스로 먹고, 흘리고, 다시 시도하는 그 과정 자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바로 아이들 방을 부모가 치워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자기 방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그 이후로는 온전히 아이에게 맡긴다. 그 방은 아이만의 공간으로 인정되고, 부모라 해도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다. 정리가 되어 있든, 어질러져 있든 그 책임 또한 아이의 몫이라는 태도가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장 놀랐던 순간은 둘째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선생님은 자신의 아들에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도시락을 스스로 싸는 법을 가르쳤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이민 초기라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던 터라, 그 이야기가 유독 크게 다가왔다.( 이 엄마 아무리 직장인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녀?라고 생각했다. )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아이가 싸는 도시락의 수준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과일 하나, 과자 한 두 개,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 샌드위치 하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놀다 보면 대충 먹기 마련이니, 저녁을 잘 챙겨주면 된다는 말씀에, 도시락에 대한 내 관점이 많이 바뀌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부모들의 태도는 아이가 자라 청소년기가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차를 몰 수 있는 고등학생이 되면 부모의 차를 빌려 아르바이트를 가고, 운동을 하러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대신 많은 부모들은 이렇게 묻는다. “일주일에 기름값이 얼마나 들 것 같니?” 그리고 그 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 차를 써도 좋다고 말한다. 차를 쓰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세차, 간단한 차량 점검 방법까지 같이 하면서 익히게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조금씩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돕는 일’이 아니라 ‘좋은 팀으로 함께 사는 법’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 “얘들아, 세탁기 돌린다!” 하고 말하면 네 살이었던 막내는 온 방을 돌아다니며 베개커버를 벗겨 온다. 몇 번 하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처럼 몸이 먼저 움직인다. 다음 단계로는 설거지도 조금씩 맡겨보았다. 빨래를 널고 걷고 개는 건 여전히 내가 하지만, 각자 옷을 가져가 서랍에 정리하는 일만큼은 아들들의 몫이 되게 했다. 물론 그리 깔끔하지 않다. 옷을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하기보다는 책상 위에 쌓아두고, 과자 봉지에서 하나씩 꺼내 먹듯 필요한 옷만 빼 입는 수준이다. ( 십 년이 되어도 여전히 그렇다)

그 모습이 눈에 엄청 거슬린다. 하지먼 지저분함과 불편함을 스스로 느낄 때까지는 간섭하지도, 대신해주지도 않기로 마음먹었다. 꾹 참고 모른 척하는 연습을 아주 오래 하는 중이다.

교복을 다리는 아들/ photo by Jin

주말과 방학엔 가끔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던지 준비를 돕게 했다. 화장실변기는 둘째가 청소하고 베큠은 큰애가 하고 막내는 욕조를 닦고 나는 세면기와 샤워부스를 닦았다. 주말엔 설거지도 돌아가며 하게 했다. 첨에는 개수대 주변에 물이 철벅거리고 냄비뚜껑이며 수저가 깨끗이 안될뿐더러... 설거지는 그릇만 씻는 게 아니라 주방전체가 다 정리되는 것임을 몇 번이고 가르쳐야 했다. 자기 당번 일 때는 간단하게 먹자고 로비를 하는 녀석도 있고, 컵 쓰고 왜 안 씻어놓냐고 잔소리도 한다.


어느 날 아들들이 말했다. "설거지 차례가 왜 이렇게 자주 돌아와요? 왜 이렇게 그릇이 많아요?" "엄만 이거 매일 하는데? 넌 주말만 하고?" " 양파 못 까겠어요. 매워서 눈물 나요." " 엄마는 양파 매일 까는데?"

이렇게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설겆이하는 둘째/ pgoto by Jin

돌이켜보면 내가 자라던 시절, 집안일은 전적으로 살림을 맡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효도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냈다. 집은 그저 잠을 자고 쉬는 공간에 가까웠다. 고3 때는 도시락을 세 개씩 싸 들고 다닐 만큼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었으니, 집에서 내가 하던 일이라곤 잠자는 것뿐이었던 것 같다.


결혼하면 알아서 다 한다. 이런 거는 안 배워도 되니 공부나 열심히 해라... 하셨던 우리 시대 어른들은 당신들이 너무 고생하셔서 너희들은 고생하는 일 말고 좀 더 편한 삶을 사는 준비를 하라는 뜻이셨겠지만 라이프스킬을 배우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며 살림도 하고 일도 하려니 전부다 첨 하는 것이라 쉽지도 않고 손에 익기도 오래 걸렸다.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틈틈이 시간안배를 잘해서 살림하는 것임을 그걸 잘 몰라 고생도 많이 했다. 손에 익고 몸에 익어야 되는 그래야 지혜든 요령이든 생기는 것임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오랜 시간을 호주에 살면서 느낀 것은, 호주 부모들의 양육 방식이 특별한 교육법이라기보다 삶의 태도에 가깝다는 점이다. 대신해 주기보다 맡기고, 통제하기보다 신뢰한다. 아이를 아직 미숙한 존재로만 보지 않고, 연습 중인 한 사람으로 대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조금 서툴러도,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갈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갈 수 있었다. 내가 호주부모들의 자녀양육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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