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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호주 청소년들

14세에 자기 용돈 벌어 쓰는 아이들

by 진그림

호주에서는 일반적으로 13세부터 가벼운 아르바이트가 가능하고, 주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신문 배달, 베이비시팅, 카페나 베이커리의 간단한 보조 업무 등은 이 나이 전후부터 허용된다.

15세가 되면 고용 형태가 더 넓어져 패스트푸드점, 소매점, 슈퍼마켓 등에서 정식 캐주얼 직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생활과 병행해야 하므로 근무시간은 엄격히 제한되며, 특히 야간 근무나 위험한 업무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아이들의 학습권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용돈을 버는 활동’을 넘어 더 큰 의미가 있다. 처음으로 세금을 뗀 급여 명세서를 받아보며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또한 익숙한 가정과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연령대와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고, 협업의 기쁨과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호주는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직급과 업무경력에 따라 나이가 많아도 어린 매니저에게 깍듯하게 대한다.( 모두가 직함이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일하니 여기서부터 이미 평등이 시작되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존중·평등 중심의 직장 분위기는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노동관을 심어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자 이제 호주에 사는 우리 아이들이 경험한 첫 알바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땀을 흘리는 노동이 무엇인지를 방학 동안 톡톡히 맛보고 온 14살 그리고 10살 무렵의 아들들 이야기다.


방학이었던 어느 주말, 스튜어트 목사님네서 두어 시간 베지가든 만드는 일을 도와드리고 $25불씩 받았다. 아마도 이 일이 아이들의 첫 공식적인 알바였던 걸로 기억한다. 에구... 기특한 것들... 이란 맘이 절로 들었는데, 며칠 뒤엔 오이랑 캡시칸 농장을 하는 친구네 집에서 이틀간 일하고, 놀고 잠도자는 슬립오버를 하기로 했다며 신나게 짐을 챙겨 아들들이 떠났다. 매일 8시간씩 장장 16 시간 농장일을 했다며, 정말 피곤하고 초췌해진 몰골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농장 경험담을 들려줄 땐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쉴 새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세상에나! 풀타임 일하는 농장 성인들과 똑같이 일을 했다니! 아침 일곱 시에 일을 시작해서 모닝티 30분, 점심 30분, 이렇게 다른 어른들과 똑같이 쉬고, 일곱 시간을 내내 캡시칸 모종을 오이 옆에다 심는 일을 했단다. 한여름 온실 안은 찌는 듯이 더웠고, 벌레들은 사방에서 귀찮게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물어서 가려웠고, 까칠까칠한 오이잎에 얼굴이며 팔이 많이 긁혔다며 보여주는데, 아들들의 매끈했던 얼굴들이, 오마나! 벌겋게 익고 긁힌 완숙 토마토들 같이 되어버렸다.


농장집엔 자식이 자그마치 일곱, 아들이 여섯에 막내가 딸이다. 그중 넷이 우리 아들들의 친구들이라 농장일 마치고 수영도하고 영화도 보고 텐트에서도 잠도 자기로 이야기되었던 거다.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슬립오버였는데, 농장일이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아서 잊지 못할 알바가 되어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첫 거금150불을 번 아들/ photo by Jin

고생스러웠지만 땀 흘려서 직접 돈을 벌어보니 좋았던지, 이번에 모종을 심었으니 11월에 수확을 할 때, 그때도 또 불러달라고 예약하고 왔다며, 이틀간 일해서 번 $150불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어떻게 번 돈인지 아니까 마음이 찡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서 울컥해졌다."아고... 아까워서 어째 쓴데..."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큰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한다. " 엄마, 행크 있죠.( 아들친구, 농장집 큰아들이다). 걔가 글쎄, 초등학생 때부터 농장일 도와서 모은 돈으로 이번에 중고이지만 새것 같은 BMW, MINI를 사서 운전연수중인 거 있죠! 헐, 행크 오이 따서 돈 모을 때, 나는 탱탱~놀고 있었네요. 쩝...". 친구의 차를 보고 현타가 오신 우리 큰 아드님, 자기보다 한 살 많긴 해도, 같은 학년인 친구가 차곡차곡 돈을 모아 자기 힘으로 자가용을 사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그래, 충격이었겠다.


옆에서 듣고 있던 둘째가 끼어든다. "엄마, 배고파요. 흐잉~ 시간이 정말 너무너무~ 천천히 가더라고요. 돈 생기면 이걸로 중국요리 사 먹어야지~ 하면서 겨우 참았어요." 둘째의 말에 모두가 깔깔깔 넘어갔다. " 엄마, 그리고 이거 받아요. 이 오이는 모양이 반듯하지 않아서 못 파는 건데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챙겨주셨어요."



어머~ 너무 고마워.. 우리 아들들 너무 기특한데! 저녁 뭐 해줄까?" 둘이 동시에 외친다."라면이요!!"한동안 우리는 오이와 캡시칸을 먹을 때마다, 아들들의 농장 경험담을 들어야 했고, 식탁에선 진심으로 농부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먹어야 된다고 직접 말하곤 했다. 그 후로도 아들들은 친구의 농장집을 종종 왕래했고, 새롭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 후로 아이들은 14세 무렵부터 자기 용돈을 벌어서 쓰기 시작했다. 현재 고1인 막내도 방과 후에 일주일에 한 번 4시간씩 슈퍼에서 알바를 한다. 새로운 휴대폰이 필요하다며 열심히 돈을 모으는 걸 보니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땀, 수고, 보람, 노동의 대가 그리고 우정과 성실한 삶의 자세들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 아들들을 사랑하고, 초대하고, 삶으로 보여준 행크네 아홉 식구들이 더욱 생각이 난다. 이 자리를 빌려 마음 깊은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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