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라 쓰고 성장축하파티라고 읽는
Year 10 파티
Year 10(한국의 고1에 해당) 아이들은 인생이라는 계절의 초여름 같다. 어른들이 살짝 옆에서 받쳐주는 축하 같은 파티가 연말에 있다.
Year 10 파티 문화의 뿌리는, 사실 호주의 교육제도에서 시작되었다. 예전엔 호주 학생들은 Year 10까지만 의무교육기간이었다. 그래서 Year 10 시험(흔히 School Certificate라고 불리던 시험)을 마치고 나면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가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Year 10을 마치고 공식졸업파티를 열었던 거다.
호주 법적으로 반드시 다녀야 하는 ‘최소 교육 수준’은 대체로 Year 10까지이다. 내가 살고 있는 NSW에서는 최소 Year 10 또는 만 17세가 될 때까지 의무교육이고, 그 이후엔 원하는 학생만 고등학교 후반 과정(한국의 경우, 고2와 고3에 해당)을 택하거나, 직업훈련이나 일을 시작해도 된다. 이제는 많은 학생이 12학년까지 학교에 적을 두고 다니기에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주최하는 Year 10 졸업파티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된 관습이 여전히 남아 Year 10 파티는 ‘작은 졸업식’, 혹은 그 학년의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런 배경을 알고 난 뒤부터, 딸아이의 Year 10 파티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딸은 1년 전부터 파티를 기대했고, 친구들과 직접 파티장소 섭외와 프로그램, 무대 장식과 광고등을 다 준비했다. 친구들과 드레스를 고르고 당일에 받을 헤어와 메이크업을 예약하는 등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티 당일, 교복과 안경을 벗어버리고 근사한 파티복과 정장을 입고 나타난 아이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 같았다.
덩치만 컸지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던 아이들이 짠~ 하고 변신해서 " 보세요! 우리가 이만큼 자랐다고요!" 하며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고, 미래라는 말은 멀게만 느껴지는 시기. 아이도 어른도 아닌 이 청소년들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주의 부모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더 이상 품 안에만 머물던 자녀가 아니라 성인의 세계로 걸음을 내딛는 존재로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는 게 Year 10 파티 같다.
Year 12 — 화끈하고 대담한 열기와 ‘그다음’을 향한 떨림
서툴고 상큼했던 10학년에 비하면 Year 12는 완전히 다르다. 10월의 졸업식과 11월의 대학수능시험 및 졸업시험, 포멀(Formal)이라 부르는 졸업파티, 애프터파티, 그리고 일종의 의식처럼 여겨지는 ‘Schoolies’를 치르는 이 시기엔 청소년의 앳됨은 벗어지고 의젓함이 한결 더 묻어있다. 다 컸네 다 컸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호주에는 Schoolies라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데, 호주 청소년들에게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다. Year 12 시험을 마친 열여덟 살 무렵의 아이들이 해변과 도시, 리조트와 작은 마을들로 무리 지어 여행을 떠난다. 해외여행을 자기들끼리 계획해서 떠나기도 한다. 부모와 집을 떠나 잠시 동안 청춘의 자유를 만끽해 보는 시간이다.
종종 광란의 파티가 곳곳에서 열리고 사건과 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휴양지는 초긴장에 돌입한다, 뉴스에서도 이 기간에 벌어지는 이벤트들을 전국에서 생중계를 하기도 한다. 이때엔 12학년 들이 정말 고삐가 플린 망아지들처럼 싸돌아 다닌다. 오죽하면 지역사회, 경찰,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Safer Schoolie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 Schoolies는 청소년기를 마무리하고 성인기로 접어든 자신들을 자축하는 요란한 신고식인 것이다.
둘째가 몇 년 전 schoolies로 졸업 후 친구들과 캠핑여행을 다녀왔다. 술을 몇 상자를 사서는 밤낮 들이붓듯이 마셔대는 친구들을 보며 경악하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자기 스타일은 아니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아들.
3. 졸업 후 일 년 — Yearly, 삶의 리듬을 익히는 1년
Year 12를 지나면 꽤 많은 아이들은 1년을 ‘자기 실험의 시간’으로 보낸다. 갭이어(Gap year)라고도 불리는 독특한 호주의 문화이다. 겉으로 보기엔 , 그저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가지며 신중히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직업학교나 대힉을 진학하지 않고, 어떤 아이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어떤 아이는 유럽으로, 또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농장 일을 하며 체력을 단련한다. 독립적으로 자기의 선택에 의해 살아보는 경험을 하면서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며 조금씩 더 단단해져 가는 시간인 것이다.
4. 각자의 속도로 피어나는 삶
호주에서 아이들 셋을 키우다 보니, 학교공부 잘 따라가고, 좋은 대학 가고, ‘빨리빨리’ 사회에서 자리 잡고 살라고 재촉하기보다는, ‘너만의 시간표가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시험과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호주의 부모들은 대게 자녀들이 서둘러 뭔가가 되라고 몰아붙이지 않는 게 확연히 보인다.
그렇다 이곳에서 Year 10과 Year 12를 지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삶이란 각자의 리듬으로 피어나는 것임을 다시 배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갑자기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자기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일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