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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경험한 따뜻한 인심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by 진그림

호주에서의 삶, 특히 사람들의 인심은 어떨까? 궁금한 분들을 위해 우리 가족이 경험한 이야기를 나눌까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 역시 도시와 시골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오늘은 우리 가족이 몇 년간 머물렀던 호주의 작은 소도시, 리스모어(Lismore)에서 겪었던 시골인심에 대한 경험담이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벌써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대만 출신의 피비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곧 대만에 사는 언니들이 여행을 오는데, 그중 한 명인 언니가 헤어디자이너라는 것이다.

“진, 너 다음 달 생일이지? 내가 룰루 언니한테 부탁했어. 너한테 생일선물로 머리 해주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오케이 했어. 꼭 와야 해, 알았지?”

갑작스럽고,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그 초대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과 더 가까워지게 하는 계기가 될 줄이야. 약속한 날에 피비네에 갔더니 우리 집 아이들까지 보태져 온 집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남편 데이빗은 머리 하면서 마시라고 커피도 직접 내려주고, 뒷마당에서 기른 채소도 한아름 잘라서 가져가라며 갈 때 담아주었다.

데이빗의 텃밭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헤어롤을 돌돌 말고 앉아 있으려니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웠지만, 피비가 날 위해 특별히 마련한 선물이라 생각하니 그 낯뜨거움도 견딜만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 자주 왕래하며 좋은 추억을 쌓았고, 이웃의 정이란 게 이렇게 스며드는 것임을 경험했다.


데이빗이 종종 나눠준 산더미 야채

작은 타운이라 한인이라곤 손꼽을 정도였는데, 다들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어느 날에는 언덕 아래 이웃인 서연 씨가 향 좋고 맛 좋은 차를 샀다며 먹어보라고 주고, 어느 날은 또 다른 이웃인 영경 씨가 상추가 많이 자랐다고 나눠먹자며 주고, 어떤 날은 미란 씨와 지숙 씨가 부추를 샀다며 갖다 주었다.

참석하던 교회 커뮤니티도 동양인인 우리 가족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챙겨주시곤 했다. 가까이 사는 교우인 파스칼네는 우리가 매운 음식 잘 먹는 걸 알고는 수학한 타이칠리를 종종 가져다주기도 했는데, 시드니로 다시 이사를 오고 나서도 그 가족은 안부편지와 함께 칠리소스를 우편으로 보내준 적도 있다.

나무공예를 배우려고 간 곳에서는 종종 회원들이 집에서 기른 과일이나 레몬을 가져오셔서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나눔을 하곤 하셨다.

파스칼네 타이칠리와 야채들

지금 돌이켜보면 리스모어 사람들의 인심은 참으로 넉넉하고 따뜻했다. 호주는 한국에 비해 삶의 속도가 조금 느리고 여유롭다고들 하지만, 대도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그리고 시골로 들어가면 그 여유가 한층 더 깊어진다. 서로 챙겨주고, 필요한 것을 나누고, 마음을 덜어주는 일이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곳.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살아간다면 굶어 죽을 사람, 외로워 쓰러질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곳의 온기는 오래도록 우리 가족 안에 남아 있다.

아마도 리스모어에서의 그 잊지 못할 추억들,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기에, 우리는 대도시 생활을 벗어나 자연이 가까운 외곽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경험한 ‘사람 사는 맛’을 잊지 않고, 이곳에서도 이웃들과 교우들과 정을 나누며 살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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