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면허시험제도
호주에서 운전면허를 딴다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안전한 운전자’가 되기 위한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선 청소년들이 비교적 일찍 운전대를 잡기 때문에 면허 따기가 꽤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16세가 되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바로 동네 서비스센터(Service NSW)이다. 이곳에서 이들은 첫 단계인 L 플레이트(학습자 면허)를 받기 위한 필기시험을 치른다.
호주의 L 플레이트는 일종의 “나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운전자입니다”라는 겸손한 선언이라고 보면 되겠다. 노란색 혹은 빨간색의 선명한 L플레이트를 차 앞뒤에 부착해야 하며, 이 시기에는 반드시 면허가 있는 성인 동승자가 옆에 타고 있어야 한다. 놀라운 점은, 이 L 단계가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주에서는 100시간 이상, 또 내가 사는 NSW주는 120시간 이상의 운전 기록을 적어야 한다. 낮, 밤, 비 오는 날, 도심과 고속도로 등 다양한 환경에서의 주행이 기록되어야 하기에, 이 단계만 최소 1년에서 2년을 보내는 청소년들도 많다.
대부분 부모들이 옆에 타는 동승자가 되어준다. 120시간을 각각 다양한 환경에서 운전 연수를 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니 참 고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아이가 셋이니 총 360시간을 자녀들의 운전실습에 함께 해야 하니까.
이는 단순한 시간 채우기가 아니라, 실제 도로에서의 경험을 통해 안전 습관을 몸에 익히게 하려는 호주의 교육 철학이니 따를 수밖에.
충분한 시간과 경험을 쌓았다면, 다음은 P1(레드 P)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실기 시험이 기다린다. 이 시험은 결코 가볍지 않다. 면허심사관이 옆에 앉아 실시간으로 운전을 평가하며, 도로 위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운전자가 ‘안전한 선택’을 하는지를 끝까지 지켜본다. 합격한다면 비로소 차량 뒤에 빨간 P 플레이트를 붙이고 독립적인 운전자로 도로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제약이 따른다. 시속 제한이 있어 90km/h를 초과할 수 없고, 밤 11시가 넘는 야간 운전 시엔 동승자 한 명만 태울 수 있다. 친구들과 술 먹고 밤늦게 운전하다 발생하는 사고가 많아서 생긴 규제다. 음주운전은 적발 시 바로 면허취소가 된다.
경험이 더 쌓이면 P2(그린 P) 단계로 진입한다. 이 기간은 2년이다. 도합 3~4년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전 면허, 즉 풀 라이센스에 도달하게 된다. 정말 오래 걸린다. 장거리 마라톤 같은 면허 따기라 할 만하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이 긴 여정이 도로 위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호주는 청소년 운전자 사고율을 낮추기 위해 이런 계단식 면허 제도를 도입했고, 안전 교육이 문화로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느리고 답답하게만 보였던 호주의 운전면허제도였지만 이것은 도로 위의 모든 운전자와 보행자를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라는 점에 이젠 깊이 공감하고 있다.
이런 까다로운 규정이 있음에도 십대들의 운전부주의로 인한 사고나 사망사건에 대한 뉴스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 또한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