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우울장애
‘기분’이란 '기쁘다, 즐겁다, 행복하다, 가슴 아프다, 부끄럽다.'라고 말하는 지속적인 내적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기분, 짜증스럽거나 불쾌한 기분, 우울하고 슬픈 기분 등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감정'이란 정신, 신체, 행동의 요소를 포괄하는 복합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며, '정동’이란 감정이 드러나는 외적 표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바라보는 환자의 표정, 신체 움직임, 행동의 속도 등의 외적 기분 상태는 정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통념상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지나치게 기분이 들뜨거나 우울해한다면 기분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주요우울장애가 대표적인 기분장애의 한 종류입니다.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들 중 가장 흔한 게 호소하는 증상입니다.
우울한 기분은 하루 중 대부분 존재하며 불면증이나 피로를 호소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우울증은 초반에는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나, 표정, 태도, 신체적 증상을 통해 그 우울한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피로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어떨 때는 “요즘 기억이 잘 안 나요,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어요.”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고력이나 집중력이 감소하고 결정을 잘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요우울장애로 진단을 하기 위해서는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이 되거나 의욕 저하, 무기력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식욕의 변화, 이로 인한 체중의 변화, 수면 불량, 집중력 저하, 기억력 저하, 피곤함,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무력감, 죄책감, 우유부단함, 죽음에 대한 생각 또는 자살 생각, 자살 시도의 증상 중에서 4가지 이상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기분은 하루 종일 우울하고 슬프며 희망이 없고, 만사 귀찮아집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스럽고 의기소침해집니다. 불안한 기분을 느낄 때에는 얼굴, 신체 모습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불편한 것은 없어요. 단지 가슴이 아프고, 별일 아닌데 짜증이 나고 화가 납니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가 봐요.”라고 대답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의욕 저하, 무기력감,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이 거의 대부분 나타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엇을 해도 전혀 즐겁지가 않습니다.
“요즘 다시 심해지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출근을 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하기 싫습니다. 좋지 않은 감정을 적거나 드러내면 그 속에 갇히고 나쁜 생각에 대한 확신이 듭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지 못하니 내 마음속은 종기처럼 곪아 터져 버린 것 같습니다.
가끔 누군가는 저의 밝은 미래에 대해 말하곤 하는데, 저에게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미래가 올까요? 저는 그런 기대를 할 힘도 남아있지 않아요. 그냥 누워만 있고 싶어요. 눈 감고 가만히… 내 인생의 피로가 누적되어 자리에 앉았다 하면 이내 잠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출근 시간을 놓지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짜증보다는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 화가 납니다. 직장 생활에서 당신들은 내게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하곤 하는데 저는 참 이기적인 사람 같습니다. 내가 힘들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은데, 정작 당신들이 힘들다고 하니 도망치고 싶을 뿐입니다. 생각보다 세상은 미안함과 감사함에 무관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 덜 미안하고 덜 고마운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소용돌이치다 저를 잠식시킵니다. 당신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날카롭게 날아와 저를 갈기갈기 찢습니다. 저에게 잘해주는 당신에게도 화가 나고 원망스럽습니다.
좀 더 여유롭고 자신 있게 삶을 살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쉽게 바뀌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저는 나아질 수 있을 겁니다. 제발 맞다고 해주세요. 나의 마음을 당신들에게 드러내면 저 또한 그 늪에 빠질까 봐 항상 슬픈 생각과 걱정을 숨기고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참 지독하게도 저를 아주 좁은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틀은 위태로운 울타리가 되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안에서 어떻게든 안락함을 느끼려 하고 그러한 저 자신이 너무도 우습습니다.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듯한 느낌입니다. 미래를 그리다 보면 한 치 앞도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이 나를 두렵게 합니다. 알 수 없는 곳을 나아가기보다는 여기 지금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안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곳이 절대로 편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그냥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누워있고 싶어요.”
우울감을 느낄 때에는 식욕의 변화가 있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과다하게 음식들을 먹기도 하지만, 아무런 에너지가 없어 먹는 것 또한 힘들기도 합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잠이 들기까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다가 해가 뜨는 것을 보고 간신히 잠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낮 동안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 또한 죄책감으로 다가오게 되지요. 너무 힘이 없어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누워만 있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또는 죄책감으로 인해 별 것 아닌 일에도 모두 내 탓만 같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원망하는 느낌입니다. 이는 비현실적인 부정적 평가 또는 과거 실패했던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음에 반복적인 생각, 자해, 자살 시도가 흔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소극적인 바람이나 자신이 죽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부터 반복적인 자살 시도에 대한 생각, 자살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합니다.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자기 주변의 것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자살에 필요한 물건들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기도 합니다.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포기하고 싶고 극심한 고통스러운 기분 상태를 끝내고자 하는 강렬한 바람이 자살 시도의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나의 손목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공허함 속에 어둠으로 채워지는 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나의 몸과 마음이 심연으로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온전치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이제는 너무 지쳐요. 계속해서 죽고 싶단 생각만 들고 숨을 참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나를 감싸는 어둠과 우울이 한데 뭉쳐져 나를 집어삼키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려는 사실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자살을 통해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복수의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우울하며 상처 받기 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신은 나를 너무 심할 정도로 잔혹하게 취급했어요.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끝낼 수밖에 없어요. ”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 과거의 기억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일에 실패하여 낙담한 사람은 그 이전에 경험했던 패배를 쉽게 떠올리게 됩니다. 그가 우울하다면 그의 기억도 대부분 우울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기분이 좋고 일상에서 용기로 가득 차있을 때에는 전혀 다른 기억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내용은 즐겁고 희망적일 것입니다. 만약 그가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느낀다면 그는 그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억을 불러 모으게 됩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즐거웠던 과거 순간이나 성공했던 일들을 기억해 낸다면,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나는 평생 동안 우울하고 불행하기만 했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건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