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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Hun Oct 11. 2020

당신 덕분이에요.

상대의 눈으로 보고, 상대의 귀로 듣고 상대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 


우울증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된 느낌을 주게 됩니다. 우울증은 자신에 대해 무력감,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심하게는 자신을 증오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내게는 소용이 없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최악이야. 다 망했어.’ 그리고 그 마음 안에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 자신에게 서운하게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감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관심이나 동정심을 얻기 위해 자신의 무력감, 죄책감에 실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 사실이 지독하게도 외롭고, 두려워서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나 하나 속할 곳 없는 무수한 집합 속에서 있는 힘껏 괴로워했습니다. 모든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지쳤다는 말이 맞겠군요. 나만의 세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짙고 묽게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혼자가 되는 것이 낫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껏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삶의 끈을 놓기를 바랍니다. 나만 못 견디는 거라는 생각과 죽고 싶은 생각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나는 과연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요? 세상이 진정 나를 필요로 하고 있을까요? 세상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나는 필요한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버겁게 옥죄어 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할 때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왜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하나요? 다른 사람은 전혀 나를 도와주지 않는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자기중심적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툭 치고 가거나, 운전을 할 때 답답하다고 경적을 과하게 울리거나, 감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편안함과 즐거움, 개인적인 우월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인생은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서로 협력하여 유익한 일들을 한다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상대적인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편안하게 느끼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삶의 어려움에 맞서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없으면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고, 직장의 인간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앞선 두 관계에 필요한 조건을 더욱 높은 수준에서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회라는 곳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큰 힘이 되었어요.”라고 응원을 하면 상대방은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한다는 느낌과 용기 모두는 상대방을 도와주고 베풀면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용기를 잃은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식사는 잘하셨어요?”, 고마워요.”,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바래요.”, “당신 덕분에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어요.”라고 상대에게 용기를 주면 상대방은 또다시 다른 사람을 돕고 내면에서 ‘감사함’를 느낄 것입니다. 

상대방의 실패나 미숙함을 지적하고 일을 대신해주게 되면, 그 사람은 용기를 잃게 되고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상대방의 행동이 미숙하고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지적하고 윽박지른다면 상대는 용기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 지적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빼앗는 행동은 상대의 문제점들을 찾아 이를 지적하거나, 원인을 찾기 위해 실패를 끄집어 몰아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과제로부터 도망치려 할 것입니다. 상대방이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일이 익숙하지 않거나 아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능력 부족과 그 사람의 가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것은 현재 상황일 뿐,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상대를 지적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의 가치를 좀 더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격려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집중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용기를 짓밟기보다는 잘하는 부분에 집중을 해서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두운 것이 아니라 얌전한 것이다. 느려 터진 것이 아니라 꼼꼼한 것이다. 성질이 급한 것이 아니라 순발력이 빠른 것이다.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한 것이다. 실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정적인 말을 정반대로 표현해보는 것이 서로에게 용기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려고 하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평등한 시선으로, 칭찬보다는 감사함을 전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용기를 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과 공감하는 것입니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눈으로 보고, 상대방의 귀로 듣고 상대방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는지를 늘 살펴보면 그들과 공감했다고 착각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명령을 하는 듯한 말투보다는 부탁하는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는데 힘이 될 것입니다. ‘나 전달법(I message)’ 를 사용하는 것은 “이것 좀 복사해줘.”를 “이 서류를 복사해주면 나는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와 같이 ‘나’가 주어로 사용하는 말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 전달법’을 사용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되어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투가 따뜻하고 상대방에게 선택의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원인 규명이라는 포장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해봅시다. 그러면 상대는 더욱 힘을 얻고 성장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일을 망쳐서 잘못을 하게 되었다면 상대방을 지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너 왜 그랬어?.”, “앞으로는 잘해!”라고 강압적인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지적하는 말은 상대방의 용기를 꺾어 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부하 직원이 보고서를 엉망으로 썼을 때 직원의 보고서를 지적하고 야단을 치는 것보다는 보고서를 쓰려고 한 긍정적인 동기에 용기를 부여하면 어떨까요? 문제 지적이나 원인 분석을 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다루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잘못된 원인을 찾고 상대방의 실수를 탓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실수가 안 생길까요?”하고 의견을 물은 뒤 “앞으로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 상대방은 존중받는 느낌을 가지고 앞으로의 과제에 용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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