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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미 Sep 05. 2021

식탁

삼월의 식탁은 초록의 향연이다. 겨우내 깊은 땅 속에서 탈출을 꿈꾸던 새순들이 약손을 만나 세상 구경을 시작한다. 봄날의 한 순간을 잠시 잡아두고 싶다.

  

어제는 친정에 갔다. 비스듬한 언덕배기에서 봄나물을 뜯는 어머니 허리가 갓 올라오는 고사리보다 더 굽었다. 봄기운 가득한 나물을 우리 집 식탁에 옮겨 놓으려는 욕심으로 득달같이 달려온 내가 부끄러웠다. 하늘은 연신 허리를 펴 보라고 햇살을 데려다 놓지만 반가운 기색이 없다. 가냘픈 어깨만이 덩실덩실 춤사위를 일으키듯 흔들리며 머위를 따 담는다. 초벌은 보약보다 낫다는 신념으로 자식들 입에 건강을 넣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리라. 


한 참을 우두커니 서 있어도 쳐다보기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니 소쿠리가 가득 찼을 때에야 “왔나” 하신다. 새로 돋은 머위처럼 어머니도 허리 펴가며 좀 쉬엄쉬엄 하면 좋으련만. 밭에서도 집에서도 잠시라도 손이 쉬는 법이 없다. 달래와 냉이, 파, 상추도 흙을 털어내고 제 이쁜 색을 찾아가는데 어머니는 오직 자식 걱정뿐이다.

  

연한 잎이라 잘 삶아야 제 맛을 느낀다며 펄펄 끓는 물에 머위를 넣으셨다. 순식간에 채반에 건져 흐르는 물에 담근다. 기능을 잃어버린 굽은 허리도 익숙한 손놀림을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하면 한나절이나 걸릴 것을 삽시간에 끝내셨다. 그리고는 그것을 들려서 빨리 가라 채근하신다.

  

느지막한 일요일 아침을 여는 소리가 유난히 정겹다. 어제 친정에서 가져온 봄나물로 오늘은 제대로 된 식탁을 차려보리라.  ‘냉이와 달래는 된장에도 넣고, 남은 것은 데쳐서 무쳐 먹으면 맛있겠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 없는데 혼자 중얼중얼 신바람이 붙었다. 만찬을 준비하는 서툰 손놀림이 어머니를 그대로 닮아가는 것은 무슨 영문인가.

  

서로 어우러지려고 보글보글 읊어대는 된장 끓는 소리는 희로애락이 담긴 트로트 같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애호박은 양파와 손잡고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고추 곁에 있다 매운맛에 놀라 도망간 팽이버섯이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 있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고추는 노여움으로 더 큰 불을 뿜어대지만, 노여움은 슬픔이 되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냉이가 한달음에 달려와 철썩 달라붙는다. 독특한 향을 내는 냉이는 스스로를 지킨 것이다. 순식간에 외톨이가 된 팽이버섯에게 달래가 슬며시 노크를 했다. 서로 키가 맞아 천생연분이다. 기쁨에 팽이버섯과 고추의 미소가 농염한 봄처럼 환해진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는 발상에 피식 웃음이 난다.

 

 식탁 가득 연초록 잔치가 열렸다. 회사 일에 지친 남편의 건강을 책임질 머위는 보기에도 군침이 돈다. 남편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봄나물이다.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 닿는 순간 전율할 상상에 침이 고인다. 어머니 덕분에 내가 더 대접받은 것 같다. 

 

 “머위는 약손으로 데쳐 와서 색감부터 남다르네. 이 고운 색감으로 한복 한 벌 지어야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과 딸이 똘똘 뭉쳤다.

  “ 쉰 넘은 딸 언제까지 이리 다 해줄 기고 장모님은 쯧쯧......” 

  “ 우리 집 식탁의 반찬은 할머니 정성만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지.”      

  고맙다는 표현을 에둘러하며 아침을 기다리는 남편의 눈길은 자연스레 머위에 멈추었다. 꿈에서 막 돌아와 은근슬쩍 건네는 딸아이의 일침도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고맙기만 하다. 

 

 고기 없으면 야채를 즐기지 않던 아들도 볼이 터져라 상추쌈을 오물오물거린다. 된장에 무친 냉이와 머위에 딸아이는 연신 감탄사를 읊어 대고, 트로트를 열창했던 된장찌개는 입 안에서도 음표를 그려댄다. 국물이 끝내준다며 숟가락질이 멈추질 않는다. 싱싱함이 최고라며 금방이라도 윗몸일으키기를 몇 개나 할 수 있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이 한 끼의 건강식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 어쩌면 식구 모두가 힘든 현실을 이겨내자는 응원의 목소리를 보탠 것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기억들이 번져 나간다. 20대에 가난한 어촌으로 시집와서 하루도 일손을 놓아본 적 없으며 식탁 차릴 걱정이 마른 적 없다. 홍합 양식장 일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겨울에 칼바람을 맞으며 생업에 매달려도 길섶에 숨었던 비바람이 한 번씩 불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가난의 몸부림은 지칠 줄 모르고 툭툭 씨앗을 뿌렸다. 바람 잘날 없는 힘든 인생이었다.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남은 재산 하나 없었으니 허리 펴고 일어서기는 힘들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식탁을 차리는 일이 제일 큰 숙제였지만 쉽지 않았다. 야속한 세월은 그 흔적을 육신에다 고스란히 옮겨다 놓았다. 그러노라니 관절 마디마디가 삐걱거린다. 

  

몇 년 전에는 기간제로 새벽 4시면 일어나 2인 1조로 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이 되었다. 그것도 돈벌이라고 좋아했다. 일머리가 좋아야 능률이 오른다며 어디서 힘이 솟는지 뚝딱뚝딱 청소도구를 만들던 모습이 선연하다. 만능 제조기가 따로 없다. 어머니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 아침이었다. 빗물 흥건한 거리에서 일을 하다 미끄러져 허리를 심하게 다치셨다. 한 달여를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그 후로 허리는 더 굽어지고 강단 있던 몸은 바람만 스쳐도 쓰러질 정도로 앙상하게 변해버렸다. 그 몸으로 일을 또 하기로 계약을 했다니 아픔의 깊이를 짐작만 할 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일을 더 못할까 봐 노심초사 일터만 입에 올렸다. 노후는 당신 스스로 책임진다는 변함없는 일념은 그 무엇으로도 꺾지 못했다. 집에 있으면 몸이 아파도, 일한다고 거리에 나서면 힘이 펄펄 난다는 어머니에게 나는 무능한 자식일 뿐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 생각이 났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마음속 불꽃이 피었다 이울기를 얼마나 거듭했을까. 

  

번다한 일상에 지친 육신을 붙들어 앉혀놓고 지루할 틈 없이 제철 나물로 재주를 부리는 식탁은 어머니를 닮았다. 얽히고설킨 삶을 제대로 읽어 내리지 못해 숨넘어갈 듯 거칠고 차디차도 거짓말처럼 잦아드는 게 어머니 품이 아니던가. 계절마다 다른 모양새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식탁, 온기를 불어넣어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어머니, 이 얼마나 배부르고 든든한가.

  

어머니 삶에 내 삶이 투영된다. 새들은 바람이 강한 날 집을 짓는다고 한다. 태풍에도 끄떡없이 견디어 낼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요즘처럼 우리 가정이 힘든 적이 없었다. 계속되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어머니처럼 인내하며 부지런히 사노라면 좋은 날이 올까.

 

 모처럼 노구의 어머니가 뜯어주신 봄나물로 인해 식탁 그득 웃음이 실렸다. 연초록 향연 속에 포근함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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