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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May 09. 2022

일이 집까지 따라올 때

열정적으로 일을 하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딱 회사에서 퇴근하기 전에 그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좋다. 일에 대한 열정이 대야를 흘러넘쳐서 지하철까지 따라오면 곤란해진다. 그렇게 될 경우 지하철에서 애써 넷플릭스를 보면서 열정을 잊어 보려고 하지만, 영상에 쉽게 집중되지 않고 자꾸 일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지하철에서 이어진 일에 대한 생각은 집에 와서도 다시 생각날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일이 생각날 때는 내가 스스로 부려본 열정이라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는 도취감과 오묘한 성취에 빠져서 기분이 좋기도 하다. 


그런데 타의에 의한 열정이 집까지 따라오는 경우에는 무척이나 기분이 나쁘다. 나는 집에서 그 열정을 발휘할 의사가 없는데도 열정을 보이라고 한다. 지하철에서 넷플릭스를 볼 때도 카톡이 오고, 내 개인 카톡을 할 때도 일이 섞여 있다. 카톡에 답변을 하고 싶지 않지만, 답변을 하지 않으면 내일 더 커다란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답변을 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퇴근길이 더 이상 가볍지 않다. 등에 일이 달라붙어서 머릿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일을 하고 있다. 이럴 때는 스스로 부려본 열정과 다른 열정이라 기분이 나쁘다. 집에서도 일이 달라붙어 있어서 텔레비전을 봐도, 샤워를 해도 일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아무리 다른 것을 해도 일이 떨어져 나가지 않으니, 다음날 아침까지도 피곤해진다. 그 상태로 다시 출근을 하면 회사는 여전히 어제의 연속이다. 퇴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일이 집까지 따라올 때는 회사에서 밤을 새웠을 때보다 기분이 더 나쁘다. 회사에서 밤을 새워서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집은 여전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지만, 집에서 일을 생각하면 집은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아니다. 업무와 분리되어 있던 나의 개인 공간이 침범당하면 집에 있어도 안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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