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한테만 스타벅스 기프트콘 안 보내셨나요?
# 사람 관계
오늘은 스타벅스 기프트콘에 얽힌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사실 더 들어가 보면 기프트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우선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구조에 대해서 설명할게요.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A팀과 B팀이 근무를 하고 있고 기획팀인 저도 그 사무실에서 일해요. 저희 팀은 서울에도 사무실이 있기 때문에 경기도에 있는 이 사무실에는 공교롭게도 저희 팀은 저 혼자예요.
A팀과 B팀은 업무 성격이 비슷하고 근무표도 같이 공유하는 사이예요. 거의 한 팀처럼 움직인다고 보면 될 거예요. 저도 그들과 같은 사무실을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이제 거의 한 팀처럼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요.
저는 애사에는 꼭 참석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람이 황망한 일을 겪거나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사람만큼 위로가 되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장례식장이 서울이나 경기도면 직접 가서 조문을 드리고 와요. 가끔은 제가 운전해서 제 차에 직원들을 싣고 가기도 하고요. 사무실을 같이 쓰는 A팀과 B팀의 직원분들이 연령대가 높다 보니 애사가 많아요. 그때마다 잊지 않고 부의금을 내고 직접 찾아가고 그렇게 하면서 그분들과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어요.
지난주에 A팀 팀장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장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병원이었어요. 퇴근시간을 피해서 갔는데도 차가 막혀서 1시간 넘게 걸렸어요. 그날따라 날씨까지 더워서 고생을 많이 했죠. 그래도 가서 부의금 전달하고 얼굴을 비추고 오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장례식장이 썰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스타벅스에 갔어요. 커피를 주문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A팀장님에게 스타벅스 기프트콘을 받았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부의금에 대한 답례로 보낸 거라는 거죠. 커피 두 잔과 샌드위치가 포함된 만 이천 원쯤 하는 쿠폰이었어요. 저는 당황했어요. 쿠폰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저만 빼고 다 쿠폰을 받았더라고요. 심지어 장례식장에 가지 않고 부의금만 전달한 사람까지도요. 사람들은 혹시나 문자나 카톡을 확인해 보라고 했어요. 저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뒤져 보았죠. 그러나 어디에도 스타벅스 기프트콘이 수신된 내역이 없었어요.
저는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생각에 잠겼어요. 혹시 그 팀장님이 실수로 나를 빠트렸나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그 팀장님은 아주 치밀하고 샤프한 사람이에요. 실수를 덤벙덤벙 저지를 타입이 아니죠. 그렇다면 일부러 안 보낸 걸까. 우리 사무실에 사람이 스무 명 정도 되는데 혹시라도 내가 A팀도 B팀도 아니니까 나만 빼고 보낸 걸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한 사무실에서 일한 게 벌써 몇 년 째고 간식도 나눠 먹는 사인데 설마 사무실에서 소속이 다르다고 나만 빼고 다 기프트콘을 돌렸나 생각하니까 기분이 점점 나빠졌어요.
그러나 그 팀장한테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어요. 제가 소심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오후에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그 팀장님이 바로 앞에 걸어가는 거예요. 절호의 찬스다 싶었죠. 저는 용기를 내서 물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어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요.
" 팀장님, 오늘 낮에 스타벅스에 갔었는데 왜 저만 스타벅스 기프트콘을 안 보내셨어요?
그 팀장님은 바로 대답을 하시더군요.
" A팀 하고 B팀에만 보낸 거예요. 그리고 팀장들한테 보냈고요. "
그 팀장님이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하니까 정작 제가 당황을 했어요.
" 아, 저는 A팀, B팀 하고 한 팀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다음에 할 적당한 말은 미처 찾지 못했어요. 잠깐이지만 팀장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리고 우리 둘은 사무실로 들어왔죠.
오후 내내 기분이 나빴는데 막상 질문이라도 던지고 나니 후련하더군요. 사실 제 성격에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사실 제가 한 말은 왜 나한테 기프트콘을 주지 않았냐고 항의하거나 따지는 거잖아요. 상대방 앞에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방법도 서투르고 그렇다고 우회적으로 뼈 있는 말을 날리는 것도 저는 서툴러요. 그래서 그 팀장님한테 질문을 던지기까지 저에게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사실 오후 내내 기분이 안 좋았어요. 같은 사무실에서 매일 얼굴 보며 살고 있으니 팀원처럼 생각했거든요. 직원들 애사가 있을 때는 내 일처럼 달려갔고요.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제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어요. 스스로 화가 나더라고요. 가끔 덮어놓고 감상적인 제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고 똑 부러지지 않는 저의 우유부단함도 원망스러웠어요. 겨우 이런 취급을 당하려고 만사를 제쳐놓고 그렇게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기분이었어요.
사람의 감정은 사소한 것에도 큰 상처를 받는 것 같아요. 스타벅스 기프트콘 별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나에게만 기프트콘을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무시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왠지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울적해지더군요.
집에 와서 어제 끓여 놓은 카레를 두 그릇이나 먹었어요.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허기가 지네요. 밥을 먹고 나서 호박 고구마까지 먹었어요. 스트레스는 다이어트의 적이 맞나봐요.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좀 달래 지더라고요. 이래서 집이 좋은가 봐요. 집에 와서 생각하니까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느긋해져서 회사에서처럼 울컥하는 심정은 사라졌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도 저보다 훨씬 많으시고 능력도 뛰어난데다가 팀장을 하고 있는 분의 인격과 사람됨이 그 정도인가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한참 대선배인 그 분이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어요. 내일이면 오늘의 꿀꿀하고 칙칙했던 기분은 다시 좋아지겠죠. 다시 세상의 좋은 것들에게 눈을 돌릴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A팀장 같지는 않으니까요. 너무 오래 우울해 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사람은 어리나 나이가 드나 똑같아요. 나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죠. 나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한테는 상처를 받아요.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 상처에 둔감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배웠어요.
오늘처럼 사람 때문에 힘들고 기분 나쁠 때는 속으로 실컷 욕하고 다음날 잊어버리는 게 상책인 것 같아요. 제가 감정 회복력이 좋거든요.
얼마 전에 TV에서 어느 대학교수의 강의를 들었는데 사람의 감정은 결국 리셋이 된대요.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모두 마찬가지래요.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의 감정이 리셋되어야 다시 감정을 추스르고 일어설 수 있잖아요. 기쁨이나 행복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기쁘고 계속 행복하면 그것도 이상하잖아요. 기쁨과 행복의 감정이 사그라들어야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찾기 위해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하게 된다고 하네요.
저의 감정도 리셋되겠죠. 내일이면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