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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Jul 13. 2021

사춘기와 갱년기, 내가 졌다.

  한동안 조용했다. 가정의 평화가 지나치게 오래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 이번에는 너무 오래가는데. 왠지 조마조마하군.'


  항상 발단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아들을 학교 앞에 내려 주고 나는 출근을 한다. 회사 가는 길에 아들 학교가 있기 때문이고 고 3이라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아침에 데려다주는 것이다. 아들은 오후 5시에 학교가 끝나고 저녁 6시까지는 학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저녁을 어떻게 하지? 엄마가 시켜주든가 해야겠네. 아들, 일단 끝나고 전화해라"

그리고 사실 아들의 저녁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실 어떤 엄마가 하루 종일 아들의 저녁 식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겠는가. 나는 하루 종일 회사 업무로 바빴고 오후 4시에는 화상회의에 접속하느라 아들의 저녁 식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확히 오후 5시에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며칠 전 모의고사를 망쳤기 때문에 누군가 한 놈만 걸려봐라 하는 듯한 시비조의 목소리였다. 아들은 저녁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배달이 되는 걸로 배달을 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통화를 끊었다.


   배달앱에 들어가서 검색을 해보니 제일 빠른 배달 전문점은 돈가스만 튀겨서 배달을 하는 업체였다. 나는 바로 주문을 넣었고 예상 도착 시간은 5시 35분으로 나왔다. 그러고 나서 아들의 저녁 식사에 대해서 또 잊어버렸다. 갑자기 업무가 몰아쳤고 또 다른 화상회의에 접속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들한테 두 번의 전화가 걸려 왔고 나는 ' 문자를 남겨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송출했는데 메시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불길한 예감이 슬슬 올라온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이런 경우 십중팔구 나의 예감은 들어맞는다. 아니나 다를까. 6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다.

" 돈가스가 5시 45분에 도착을 했어요. 6시까지 가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먹고 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밥솥을 열어 보니까 밥이 두 숟가락밖에 없어요. 어떻게 이걸 먹고 가라는 거예요? 두 숟가락을요. 6시부터 학원에서 국어 모의고사가 시작인데 지금 가면 어차피 늦어요. 그래서 오늘 학원에 안 갈 거예요. "


   아들은 속사포랩을 쏟아 냈다. 아들이 하고 싶은 말은 돈가스 배달이 늦게 왔고 그래서 시간이 빠듯하고 덕분에 학원에 늦었으니 아예 안 가겠다는 얘기였다. 늘 겪는 뻔한 시나리오고 식상한 상황인데도 적응이 안 된다. 그렇게 시간이 빠듯하면 대충 먹고 학원을 가지 그러냐는 말에 아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항의를 한다. 그리고 아들은 더욱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사실 아들이 다니는 학원은 우리 아파트 입구 바로 앞에 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3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밥솥에 있는 밥은 양이 좀 적기는 하지만 두 숟가락은 비약이다. 밥그릇에 담으면 2분의 1 공기는 될 정도의 양이다. 그러나 그런 걸 다 차치하고서 사실 학원시간이 그렇게 빠듯하고 배달이 늦게 도착을 했다면 일단 뛰어가서 학원 시험을 보고 저녁은 나중에 먹는 게 일반적인 고 3 학생의 행동 패턴 아닐까.

 하기는 아들한테 일반적이라느니 상식적이라느니 하는 단어를 제시하면 저항이 강하게 들어온다. 목소리는 더 높아질 거고 말도 빨라질 것이다. 일반적이라는 단어와 상식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누가 규정하는 거냐고 따지면서 싸운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었어야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들은 학원에 가지도 않고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경우가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봤다. 더 얘기를 하면 서로 감정만 상할 것 같아서 일단 내버려 두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수시로 겪는 일인데도 마음이 단련이 되지 않는다.

 

   고 3이라서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 거겠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못하는 학생이 더 스트레스가 많을 수도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아들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나는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새벽부터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갑자기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를 가지 않겠다니 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들은 선생님께는 코감기가 걸린 걸로 해 달라고 했다. 정말 코감기가 걸렸니? 아들은 약간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코로나 검사를 받아 봐야 되지 않겠니. 그럼 배가 아픈 걸로 해 주세요. 배가 아픈 걸로 해 달라니. 정말로 배가 아프니? 조금 아픈 것도 같아요. 그 대목에서 나도 그만 열을 받고 말았다.

 

   라테는이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나 때는 정말로 학교를 빠진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마가 심하게 와서 학교 가는 다리가 끊어졌다든가 학교가 물에 잠겼다든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든가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들은 태연히 침대에 누워서 눈도 뜨지 않고 귀찮다는 듯이 대충 이유를 만들어서 학교를 안 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활화산이 폭발하듯이 아들과 나는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돈가스를 빨리 먹고 가든가 아니면 학원 갔다 와서 먹는 게 맞지 않냐는 엄마와 배가 고픈데 어떻게 굶고 학원을 가라고 하냐는 아들의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싸워 봤지만(?) 사실 가족 간에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이다. 그걸 알면서 또 아침부터 그러고 있다니. 결국 남편이 출동을 해서 그만 하라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우리의 논쟁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바로 출근을 해 버렸다.


   회사에서 오후가 되자 다시 아들과의 일이 떠올라서 기분이 침울해졌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일이 걱정이었다. 집에 들어가자 아들은 학원에 가고 없었다. 남편이 재택이어서 다행히 아들과 저녁을 챙겨 먹은 모양이었다. 아들의 상태가 어떻냐는 나의 말에 남편은 나쁘지 않다고 대답했다. 남편이 나에게 맥주를 내밀었다.

" 사춘기 아들과 잘 지내는 법이 뭔지 알아?"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냐는 표정으로 남편을 보자 남편은 말을 이었다.

" 엇나갈 때,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 더 잘해 주는 거야. 미안한 생각이 들도록 더 잘해 주고 더 따뜻하게 해 주면 아들도 미안한 생각이 들겠지"

남편이 얼마나 잘해 줬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밤에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은 표정이나 행동이 확연히 달라졌다. 어제 돈가스가 늦게 왔다고 따지고 들던 모습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렇다. 사실 아들의 별난 사춘기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것 같던 시간을 이겨낸 비결 중의 하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궤변을 늘어놓고 떼를 쓰는 아이를 더 사랑하고 더 챙겨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실제로 해 보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고 한숨이 비어져 나오고 가끔은 세상에서 나만 힘든 것처럼 막막할 때도 많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유독 사춘기를 힘들게 지나가는 아이들은 상처가 많은 아이들일 가능성이 많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안 좋은 경험이 있거나 괴롭힘을 당했다거나 선생님한테 심하게 상처 받은 기억이 있거나 하는 경우들 말이다. 육체적으로 생기는 변화도 두려운데 자기가 감내하기 힘든 상처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트라우마가 아이를 더 방어적으로 만들고 그러면서 점점 가족과 소통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키가 180이 다 되어가고 덩치가 어른 같아도 아직 아이는 아이다. 아직은 엄마와 아빠라는 존재가 필요한 나이고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른이 한 발 물러서서 이해해 주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아들과 나의 오랜만의 전쟁은 생각보다 쉽게 평화를 되찾았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란 놈은 참 대단하다. 참고 기다리면서 사랑을 주면 꽁꽁 닫혀 있던 마음을 슬그머니 열게 하니까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참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가끔은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민낯을 들여다 보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런 시간들이 하나하나 다 연결이 되어서 현재가 만들어지고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게 참 신기한 일이다. 아이도 가족들과의 좋은 경험을 통해서 어른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오늘도 조금 참고 조금 더 심호흡을 들이마셔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인간이고 모순적인 인간인지 직면할 때도 많다. 결국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성장하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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