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백일장
라이킷 11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 소심한 덕질의 연대기

by 연잎 Jun 24. 2021


 덕질의 역사. 연속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적극적이지도 않았지만, 나도 나름의 역사가 있다.      


 중고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이 있긴 했지만 덕질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고등학교 때 이선희 광팬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팬레터를 보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덕에 나는 이선희를 ‘써니언니’로 기억한다. 고2 때에는 들국화 원조팬인 친구가 있었다. 콘서트 보러 가느라 야자를 째야할 때 내가 기꺼이 책가방을 은폐해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 친구의 팬 활동을 도와주었다. 그 친구는 졸업할 때쯤에는 전인권의 부인과도 친해져서 집에까지 드나들 정도였으니, 요즘 세상에는 상상도 못할 성덕을 이루기도 했다. (나에게도 늘 같이 가자고 했으나 나는 그런 시간 낭비를 내가 왜 하냐며 딱 잘라 거절했다.ㅠㅠ헛똑똑이같으니라고!) 나는 그런 친구들을 지켜보기는 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좋으면 음악이나 감상하면 되지 왜 저 난리일까?      


 그러다가 내 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한 연예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을 하면 편지도 보내고 싶고 집에도 가보고 싶고 멀리서나마 한 번 보고싶어지는 법. 서른이 되어서야 그 친구들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덕질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덕질을 했던 셈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 이름 이.효.리. 


 98년부터 거의 5년 동안은 매일 들었던 것 같다. 데뷔 방송부터 2년 동안의 방송을 녹화한 비디오테잎도 있다. 당시 중학교 교사였던 내가 하이엘프라는 하이텔 핑클 동호회의 어느 중학생 회원한테서 샀다. 하나당 1만 원, 도합 4개 4만 원. 방송 나올 때마다 TV앞에 앉아 일일이 녹화를 딴 그 학생의 수고비로 치면 비싼 것은 아니다. 지금은 유튜브에 다 있지만 그때는 유튜브는커녕 DVD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비디오테잎을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도 거의 반강제로 보여주었다. 미모와 대비되는 효리의 털털한 성격과 놀랍도록 어른스러운 인품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지금도 효리하면 조건 반사처럼 나를 떠올린다. 


 지금도 나는 효리가 좋다. 2000년대 후반쯤 효리가 온갖 기괴한 컨셉으로 활동하고 표절이니 뭐니 말이 많을 때에는 나 혼자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온 국민이 좋아한다. 99년 어느 겨울 내가 효리에게 썼으나 부치지 못한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효리양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겠죠? 효리양은 돈이나 명예보다 효리양과 가장 마음이 맞는 소박하고 인품 있는 사람이랑 결혼할 것 같아요.” 그때 내 느낌이 맞았다는 것을 지금 효리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효리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효리를 너무 잘 아는 느낌이다.     

 

 이후 2009년 장배우. 미남이시네요라는 드라마에서 소위 덕통사고가 났고 이후 나는 1년 동안 ‘장어(장근석을 사랑하는 어른들의 모임)’로서 팬클럽 유료 회원이었다. 돈도 보내고 홈피에 글도 남기고. 하지만 첫사랑 효리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인지 장어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다. 1년이 지난 후에는 돈을 내지 않아 팬클럽 홈피에 접근을 할 수 없었고 돈을 또 내기에는 그 홈피에서 더 얻을 것이 없었다. 그래도 장배우를 응원하는 마음은 지금도 간절하다.       


 10년이 지난 2019년. 잔나비가 나를 찾아왔다. 잔나비는 분당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공연을 볼 기회도 쉽게 왔고 길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밴드 작업실이 있는 정자동 인근을 자주 산책한 결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딱 마주칠 줄이야. 바로 눈앞, 근접 거리에서 인사를 했다. 너무 작고 어린 청년들이라 당황스러웠다. 서른이 다 되어가도 저렇게 어려보이는구나 싶었다. 6월 15일 분당 파크콘서트는 꾸러기 4총사(공동육아 동지 모임)와 더불어 즐겁고 유쾌한 나들이였다. 정훈이는 또 노래 중간에 울컥했다. 정훈이는 공연 때마다 한 번씩 울컥한다. 2019년은 그들에게 사연 많은 한 해였으니 더 했다. 정훈이가 눈물을 삼킬 때마다 나도 조건 반사로 눈물이 난다. 정훈이는 눈물을 잘 삼키고 무사히 넘어가지만 나는 그가 촉발한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계속 울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잔나비 덕질에서 전에는 몰랐던 이상한 감정을 느꼈었다. 파크콘서트를 즐겁게 마친 다음날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질투가 마구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튜브도 끊고 음악도 끊고 한동안 외면해야했다. 이 이상한 감정이 주체가 안 되어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내가 느끼는 질투가 나 스스로도 창피하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28살 락밴드를 50세 아짐이 질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장르도 성별도 분야도 모두 다른 대상에게 어떤 분모를 기반으로 질투를 느낀단 말인가. 차라리 영국 왕세자비를 질투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질투를 했다. 처음에는 몰랐다. 나의 이 이상한 감정이 궁금하여 둘째에게 털어왔다. 둘째가 아주 명쾌하게 말했다.      


 엄마, 그거 부러워서 그런 거에요. 원래 팬심에는 부러움이 절반이에요. 그러다가 부러움이 질투로 바뀌기도 하고 그 질투가 미움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팬이었다가 안티가 되고 그래요.   

   

 아하! 부러워서 질투한 것이라고? 부러움 맞다. 난 잔나비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것이다. 음악적 재능, 타고난 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자신의 직업으로 결정한 용기, 무대에서 쏟아내는 열정, 폭발할 듯 발산되는 미모까지. 너무나 부러웠던 것이다. 특히 그 용기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끼와 재능과 미모는 타고나는 것이라 부러워한들 소용이 없지만, 좋아하는 것에 삶을 올인하는 그 용기가 나는 부러웠던 것이다.     

 

 나도 한때 그 용기를 낼까말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내 나이 25세 때였다. 간절한 마음이 있었으나 나는 결국 포기했다. 세상에 나 혼자 뛰쳐나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공무원의 삶을 이어가기로,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일상의 변화가 오지 않을 교육공무원의 삶을 선택하며 나는 내 삶을 단순화시켰다. 좋게 말하면 안정시켰다. 그래놓고는 지금 락커의 삶을 질투한다는 것은 순탄하게 살아온 중년 아줌마의 꼴사나운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용기를 더 내볼 것이다. 그때 용기 내어 도전했어도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의외의 행운이 따랐을지도 모른다. 안정을 선택했지만 이후 내 삶이 그렇게 안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삶의 도처에 복병이 있었다. 결국 내몫의 시련과 고통을 겪을만큼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또 어떤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25살 그때 용기 내지 못했던 것. 젊디 젊은 나이에 용기보다 안주를 선택했던 것. 성공 여부를 떠나 내가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2019년 연말에 또 다시 나를 찾아온 한 오빠가 있다. 나와 동갑내기 오빠. 그는 나와는 정말 다르게 살아왔다. 부유한 10대를 지나 나이 스물에 자비로 음반을 내고 무대에 섰다. 음악과 춤, 타고난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살 기회가 그에게는 너무 일찍 와서인지 그는 결국 이른 나이에 삶의 방향을 틀어야했다. 서른 이후부터는 영어 과외를 하며 선생님으로 살았다. 마흔 중반에야 얻은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랑하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서빙을 하며 돈을 벌어야했던 사람. 그가 다시 한국으로 소환되어 팬들 앞에 섰다. 너무 늦게 컴백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아티스트가 아닌 삶을 살았던 그 20년 세월이 지금의 그를 더 멋지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모든 삶을 헛되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오빠다. 그의 어록 중 내가 가장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은,      


 “나는 계획이 없어요. 아무 계획 없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유일한 계획이에요.”     


 앞으로의 삶을 염려하며 걱정을 쌓아가는 것이 습관이 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그래 그냥 오늘을 살자. 계획 따위 개나 줘버리자. 후회 따위도 지나가는 바람에 날려버리자.     

 이제 하루하루 내 마음 가는 대로 살아버리는 거야.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